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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Mar 26. 2024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모 프로야구팀의 열렬한 팬이었다. 직장도 없고 돈도 없어서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놓고 한참을 저울질하며 무엇을 먹어야 배가 덜 고플지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던 취업준비생 시절, 그라운드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뒹굴고 공을 담장 너머로 시원하게 날려 보내는 선수들을 응원할 때만큼은 백수 생활의 팍팍함을 조금 잊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공수 양면에서 탁월한 기량을 겸비한 모 선수를 무척 사랑했다. 내가 응원하던 팀은 전통의 강호라든지 그 비슷한 수식어와는 무척 거리가 멀었는데, 그 선수는 꼭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았다. 그 선수의 허슬 플레이를 볼 때면 나도 언젠가 연꽃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레옥잠 꽃 정도는 피울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겼다. 50만 원 남짓하던 아르바이트 월급을 조금씩 쪼개서 모았다가 등판에 이름이 박힌 유니폼도 샀다.


    그 선수가 잇따른 범죄 혐의로 사회면을 장식했을 때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음주운전에 성범죄까지, 아주 가지가지하고 자빠졌다는 것이 첫 감상이었다. 나와 같은 야구팀을 응원하던 동생과 나는 시시각각으로 쏟아지는 기사를 얼빠진 채로 보고 또 봤다. 한참 입을 열지 못하던 동생은 "이런 말하면 안 되는 건 너무 잘 아는데, 무슨 생각까지 들었는지 알아? 꽃뱀한테 걸렸다거나……."라고 말하다가 그냥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 입만 안 열었을 뿐이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도 내 머리를 왕복으로 열 번쯤 후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어설프게 웃었다. 그 뒤로 몇 번의 설화가 더 있었고, 전부 꼴도 보기 싫어져서 야구를 끊었다. 매일 저녁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던 때가 전생의 일 같았다.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라는 말이 신물과 함께 올라와서 목젖을 툭 건드리던 그 순간, 1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선수의 흉행을 믿고 싶지 않아서, 평소 신념과 배치되는 것도 모자라 올바른 윤리관을 지닌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될 생각을 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건번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심지어 형이 확정된 지도 오래였다.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존경받았으나 스스로의 잘못으로 그간 충실히 쌓아 올렸던 치적과 명예를 깎아먹은 수많은 인사들의 측근들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목 놓아 외치던 때의 심정을 하마터면 이해할 뻔했다. 알량한 친분과 정 때문에 바르지 못한 쪽으로 기우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인지. 그 뒤로 그 사람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언젠가 또다시 원치 않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일이 생길까 겁이 나서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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