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Jul 01. 2024

골 때리는 여성 기자들

2017년, 2019년, 그리고 2024년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부쳐

    한국기자협회는 1972년부터 매년 축구대회를 열어 왔다. 기자협회 홈페이지에서는 대회의 목적을 회원 간 친목 도모라고 설명하고 있다. 엄혹하던 군사독재정권 시절, 누군가에게는 눈엣가시같았을 기자들이 한데 뭉칠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기 때문에 그 명맥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도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나이 지긋한 선배로부터 들은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그저 기자들 사이의 친목 도모를 비롯한 자존심 대결의 장일 뿐이다. 회사 어르신들이 축구대회 순위를 특히 중히 여기긴 하지만, 투덜대면서 훈련에 동원되는 평기자들도 막상 경기에 투입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낌없이 몸을 날린다.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에 몸을 맡기다가 가볍게는 염좌, 중하게는 골절에 이르는 부상을 입는 기자들도 숱하고, 분에 못 이겨 상대 선수의 '싸대기를 날리는' 등 폭력 사태(?)가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당연히 축구를 잘 하는 기자들은 사랑받는다. 모 언론사의 최종면접에 들어갔던 한 남성 기자는, 가벼운 질의가 오가던 중 자신의 축구 실력과 주된 포지션에 대한 질문에 답하자 임원들이 눈을 번쩍번쩍 빛내더라는 후기를 들려 주었다.


    그런 와중에 축구대회에 여성 기자들이 낄 자리가 없다는 문제제기도 꾸준히 제기됐다. 나만 해도 수습기자 시절 단 한 번을 제외하면, 그 뒤로 한 번도 축구대회에 간 적이 없었다. 경기장 벤치에 병풍처럼 앉아 때때로 소리를 지르고 응원 막대나 흔드는 것이 지루해서였다. 물론 나는 유년기부터 모든 종류의 구기 종목, 팀 스포츠와는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회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팀 스포츠 대항전이 있었더라도 나서서 참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고, 발야구가 됐든 뭐가 됐든 여성 회원을 위한 대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하는 편이었다.


    그런 문제제기를 양분으로 삼아 지난해 제1회 여성 회원 풋살대회가 처음 치러졌다. 처음 열리는 대회에 기꺼이 이름을 올린 참가자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대회에 임했으며 그 덕에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올해는 작년보다도 참가사 수가 훨씬 더 늘었다. 회사를 막론하고 여성 기자들의 SNS에서 유니폼을 맞춰 입은 단체 사진, 훈련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 투지를 다지는 게시물 등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대회 기간 즈음해서는 기자들이 모인 자리마다 어느 회사의 누가 에이스라느니, 어느 회사는 선수 출신 누구를 초빙해 훈련을 하고 있다느니, 어느 회사는 거의 매주 사기업 동호회들과 맞붙으며 경험을 쌓고 있다느니, 어느 회사는 우승을 노리며 칼을 갈고 있다느니 하며 대회에 대한 화제가 끊이는 날이 없었다.


    고작 취미나 놀이의 영역이라고는 해도 배제되지 않는 경험, 주체로 참여하는 경험은 무척 귀하고 소중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주어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풋살 대회에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여성 기자들은 물론,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어 대충 관망하는 여성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로 벌써 세 번째 일어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의 내막을 보고 맥이 빠졌던 것은,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단순히 저질스러운 대화에 가져다 붙이기 위한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는 한겨레 여성 풋살팀 '공좀하니'의 입장문 일부를 빌리는 편이 내가 느꼈던 참담함을 좀 더 잘 드러낼 수 있을 것 같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신체는 원치 않는 상황에서조차 성적 대상화됩니다. 여성 기자에게도 이런 현실은 낯설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료 기자가, 그것도 필드에서 최선을 다해 땀 흘려 뛰는 동료 기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저열한 생각을 하고 말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입니다. 
혹여라도 이번 일로 내년 대회에 참가하려는 기자들 마음에 조금이라도 저어하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을지도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앞서 수면 위로 드러났던 두 번의 사건은 흐지부지돼 그 누구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는 일 없이 멀쩡하게 기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당사자 회사들은 단톡방 구성원들을 업무에서 곧장 배제하고 발빠르게 조치를 취하고 있다. 대화 지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파악되는 기자의 경우 해임 조치됐다. 단톡방 구성원들이 추후에 행정소송이나 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의 조치를 취할 지 어떨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지난 목요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언론계 전체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으니 이번 조치가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행을 먹는 자의 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