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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13. 2024

중년 혹사를 그만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기자도 차장도 부장도 다 힘들다, 누구 때문에

    나는 기사를 아주 많이 쓰면 그 여파가 신체에까지 미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심지어 그때 나는 어리기까지 했다. 취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돈도 별로 없었고, 가진 것이라고는 젊고 건강한 몸뚱아리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기자 일을 시작하고 난 뒤 손에 꼽게 힘들었던 날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수습 기간을 제외하면 가장 먼저 그날이 생각난다. 토요일이라 근무자가 나 하나뿐이었는데, 별다른 큰일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랬다면 분명히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내가 했던 일은 그저 끝없이, 정말 끝없이 집배신 기사 작성 창에 기사를 써서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밤늦은 퇴근길, 평소처럼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유독 길었다.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귓가에서 이명이 윙윙 울렸다.


    사실관계와 쟁점이 좀 복잡한 기사를 써서 올려놨더니 데스크한테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유달리 힘이 없었다. 통화 서두에는 "내가 지금 정상적인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라 미안하다"며 양해를 구하기까지 했다. 열흘 동안 부서 집배신 탭에 올라온 기사를 속보 포함해서 다 세어 보니 하루에 50개씩은 우습게 넘어간다. 어리고 팔팔한 보현이 고작 하루 동안 하고 나서 학을 뗐던 짓의 심화편쯤 되는 일을 중년의 데스크들이 며칠이나 나누어 하고 있는 셈이다. 휴일도 없이. 편집국 기조에 불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편집회의에서 말이 되든 안 되든 바이라인을 달기 부끄럽든 말든 어떻게든 기사를 만들어내라는 압박이 기자들에게 하달될 때마다 새롭게 화가 나고, 쿠션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지르는 일을 실제로 행동에 옮겨 본 적도 있는데(목이 많이 아파서 앞으로 안 하기로 했다),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 나니 마음이 약해진다.


    이게 다 공화국의 적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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