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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Dec 24. 2023

학문의 유일한 원동력

과학, 더 나아가 학문적 호기심은 인간이 날 때부터 주어진 광막한 미지의 영토를 기지의 것으로 수복하려는 욕망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예로, 서양 철학사의 한 대목을 차지하는 ‘계몽’은 이성(로고스)의 빛으로 어두운 미지의 자연을 비춰 드러내겠다는 인간의 욕망이 심화된 패러다임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 욕망이 절대로 충족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연과 우주를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자연과 우주에 대한 사실들이 새로이 발견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생각보다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인간의 앎이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이처럼 학문적 탐구가 인도하는 곳은 끝없이 넓은 무지의 황무지다. 인간이 앎을 통한 권역의 확장을 목적으로 일궈낸 과학적 성과들은 역설적이게도 무지의 황무지를 더 넓은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점차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니체는 이렇게 쓴다. “학문은 알려진 것을 점점 더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해체한다.”


그래서 학문을 포기하는 게 이로울까? 아마도 정신 건강엔 그럴 것이다. 무지에서 출발한 학문이 일궈내는 유일한 성과가 또 다른 무지에 불과하다는 가혹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문이 산출하는 무지는 ‘주권적’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무지와 다르다. 즉, 학문은 무지에서 출발해 무지로 돌아오는 것을 끝없이 반복하는 원환운동이지만, 그 종착지가 ’주권적 무지‘라는 점에서 아주 약간 다르다.  


‘주권적 무지’에 현명함이 있다는 역설이 뒤따른다. 현명함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기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의 유일한 원동력은 무지에서 비롯되는 기쁨이다.


孫潤祭,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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