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 덧붙임
개인적인 생각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핵심은 예술가(바질) - 예술작품(도리언) - 비평가(헨리)의 삼각 구도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를 그려 준 화가 바질 홀워드는 예술가이며, 그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은 초상화의 모델인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비평가다(비평가는 예로부터 예술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 소설의 흥미로운 컨셉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도리언 자신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반면, 초상화는 그의 타락과 몰락을 거울처럼 반영하듯 추한 모습으로 변해간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변하지 않는 예술작품과 끊임없이 변모하는 삶(현실)의 관계는 소설 내에서 뒤바뀐 셈이다.
이는 예술, 즉 미적 가상에서 사실과 당위가 무용지물이 되는 특징과 연관된다. 예술에서 지배적인 논거는 ’사실(A이다)’, ‘당위(A이어야만 한다)’가 아니라 ‘해석(A일 수 있다)‘이기 때문이다. 해석은 무언가에 대해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범적인 주석‘ 정도는 될 수 있을지언정, 유일하고 절대적인 ’참‘이 되지 못한다(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유명한 영화평론가의 한줄평을 우리가 그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메시지라고 말하지 않듯이. 따라서 해석에서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은 딱 떨어져서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또다른 이유는 예술이 인간의 삶에 기초하며(와일드에 따르면, 문학은 “삶의 완벽한 표현”이다), 그 삶은 평가 불가능성에 토대를 두기 때문이다. 즉,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논의의 당사자이고 심지어 논의의 대상이지 논의의 심판자가 아니“다(니체, 『우상의 황혼』 중).
만약 도리언의 삶이 예술이었다고 가정한다면 그의 삶에 사실과 당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가 시간의 경과와 도덕적 타락에도 불구하고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해명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에서 도리언이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준 화가 바질을 죽임으로써 예술의 삼각 구도에 균열이 생긴다. 이 균열은 예술의 허구의 가능성을 말소하는데, 예술에 현실이 개입할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달리말해, 도리언이 만들어낸 균열 사이로 사실(도리언이 사람을 죽였다)과 당위(살인은 하면 안 된다)가 개입할 여지가 발생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도리언이 스스로 자신의 초상화를 (바질을 죽인 그) 칼로 찢은 행위 인해 예술과 삶의 경계선은 전적으로 붕괴된다.
”그 직후, 밖으로 비명소리가 들리고 하인들이 경찰관을 데리고 도리언의 방에 찾아온다. 방 안에는 젊고 아름다운 초상화와 늙고 추악한 남자의 시체만이 남겨져 있었고, 하인들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로 시체가 도리언 그레이였음을 확인한다.“
孫潤祭, 2023.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