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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Jan 21. 2024

운명은 어떻게 작동하고 기능하는가?

’운명‘은 어떻게 작동하고 기능하는가?


예로부터 운명은 사건의 불가피한 진행을 가리키며, 신비하고 불가해한 힘으로 여겨져 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운명은 우연이 제거된, 순수하고 단순한 필연성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그것은 우연성과 필연성의 상보적 관계를 통해 작동한다.


우연성은 일종의 ’현재(지금, 여기)‘를 생산하는 ‘기계‘다. ‘우연성 기계’는 우리가 알 수도, 셀 수도 없는 다양한 조건과 흐름을 질료로 삼아 ‘현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저 기계는 종종 다른 이름들로 불린다: ’불확정성‘, ’불연속성‘, ’가능하지만 필연적이지도 않은 것‘ 등. 왜냐하면 우연성 기계를 통해 만들어진 이 ‘현재‘는 지나감과 동시에 또 다른 조건과 흐름으로 바뀌어 다시 ’우연성 기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즉, ’현재‘는 또다시 ‘아직 오지 않은 것’, 즉 미래 혹은 도래를 위한 질료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재단되며, 단속된다.


반대로 필연성은 연속적인 하나의 선 혹은 흐름을 생산한다. 즉, 그것은 우연이 잘라낸 조각들을 이어 하나의 ‘패치워크’로 만드는 기계다. 파편화된 조각들은 ’필연성 기계‘를 통해 연속적인 흐름 속에 하나로 정렬됨으로써 어떠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 의미는 해석(해독)을 가능케 할뿐더러, 때로는 패턴이 되어 ‘보편적인 법칙’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그래서 운명은 옛 그리스인과 로마인에게 ‘클로토’라는 이름의 ‘베 짜는 여인’으로 표상되어 왔다. 그녀는 인간의 운명을 실처럼 자아내고, 커다란 하나의 직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쉼 없이 수레바퀴를 돌린다.


운명은 저 수레바퀴가 원운동함으로써 만들어지는 힘으로써 기능한다. 즉, 불가항력적이다. 필연성은 원운동의 원심력을 이룬다. 그것은 수레바퀴의 중심점으로써 움직이는 사물들을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반대로 우연성은 구심력이 된다. 그것이 가진 고유한 관성에 의해 끊임없이 원운동을 벗어나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운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돌이켜보는 시선(Rückblick)을 통해서다. 뒤를 돌아본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를 잃었다.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들의 운명은 돌아봄으로써 비극이 되었다. 또한 회상(Rückblick)을 통해서다. 인간에게 고유한 비극적 가치는 언제나 ‘너무 늦었어’와 ‘일이 터진 후’(키냐르), 즉 운명이 작동한 후에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파울 첼란이 아주 힘겹게, 그리고 말을 더듬어가며 노래하는 다음의 가사는 운명에 대한 보다 심오한 정체를 드러내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갔던 길은, 굽어 있었네, 굽은 길이었네. 그래, 왜냐하면, 그래, 길은 곧았으니까.”


‘굽은 길’은 인생의 여정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예측 불가능한 우여곡절을 가리킨다. 반대로 ’곧은길‘은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 행해진 모든 경험과 선택이 우리를 하나의 목적지로 이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정면에서 보면 굽은 길이었던 것이, 돌이켜보면 곧은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운명이다.


孫潤祭, 2024.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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