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
남자친구가 없다. 오랫동안 없었는데 요새 새로운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사람 볼 때 기준으로 생각하는게 있어?” 일상에서 고민하던 질문은 아니라 한참을 생각하다 “없어!” 두 글자로 답한다. “술, 담배 다 괜찮아?” 걱정어린 대답이 내 귀로 꽂힌다. 난 괜찮은데! “그럼 기준이 없는거야? 다 열려있어?” 다음 질문에 “응” 이라고 대답해 두고 한참이나 고민에 빠졌다.
나는 정말로 기준으로 두는게 없나? 이건 정말 아니다! 안된다 하는게 아예 없나?
그렇지 않은가, 나를 때리면서 폭력적이고 진짜 못된 사람 행동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그건 아니지. 무시하고 할퀴고 물어뜯는 사람을 남자친구로 삼겠다는 건 아니다. 술을 마시고 진상이 되어서 나를 못살게 구는 것도 정말이지 괜찮다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살인자를 수용하겠다는 게 아니다.
말고는 없을까,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해서 걸리는게 없냐고 자꾸만 묻는다. 분명 내가 보는게 있을텐데 기준이라 했을 때, 딱 아닌거라 했을 때는, 없다.
어떻게 없을 수가 있는가? 내 생각은 이렇다. 사람은 경험하기 전에 나에게 그 사람이 어떨지 아무도 모른다. 알 수가 없다. 담배를 피던, 술을 마시던 지금 읊어댄 요소 말고 누군가가 가진 특징이 또 있지 않은가? 알려면 내가 경험을 해야하고 특징이라고 판단하려면 내가 보고 알아가 봐야 한다. 나와 그의 만남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그 사람을 만난 나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만나서 어떤 사람인지 보고 겪기 전에 사람을 막아두는 울타리를 치고 싶지 않다. 나한테 접근도 못하게 막아놓고 싶지는 않은 것. 내가 펼쳐놓은 너른 마당에서 이건 뭐지? 하고 사람들이 들여다보아도 괜찮다. 보고나서 내가 어떤 마음이 들지언정. 미리부터 기준을 두고 이거 싫고 저거 싫네 하기 싫다. 나에게서는 어떤 의미일지 모르니.
좋아하는 건 있다. 다정한 사람이면 좋겠다. 부담스럽지는 않게! 내가 생각하는 다정하다는 포인트는, 자동차 문을 열어주고 이런 것보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귀엽게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나를 좀 귀여워 해 줄 수 있는 사람. 더불어 이건 내 욕심일 수 있고 누군가가 이렇다 해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한결같은 마음.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나와 함께 할 때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꾸준한 마음이 있으면 된다. 하나 더 하면 적극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주는 것도! 그 외에 외적인 부분은, 물론 키가 크면 클 수록 좋겠다. 적고 보니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싫어하는 건 없다 해놓고 좋아하는 걸 적으니 내가 왜 이제까지 오랫동안 남자친구를 사귀지 못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예전에는 조금 더 명확하게 재미나고 리더십이 뛰어난 사람을 좋아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를 이끌어주고 다가와 주면 엄청난 설렘을 느꼈다. 지금도 아닌 건 아니지만. 지금의 내가 달라진 점은 이제 그 사람이 재미가 없다면 내가 재미나게 해 주면 된다는 생각이고! 나는 그 사람이 좋은데 다가오지 않으면, 뭐 나에게 너무 관심이 없으면 해당사항이 되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눈치가 있는데 나에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다가가 접근해 볼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더욱 열린거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거꾸로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꼭 받지 않아도 내가 줌으로써 관계가 생성될 수도 있지 않은가. 2025년 겨울은 나에게 하나씩 형체를 그려가는 연필을 쥐는 시작이 된다. 그림이 다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