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굿즈, 잊지 못할 교훈

by 이피디

몇 해 전, 나는 아주 적은 예산으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품은 좋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런 상황에서 ‘MD를 만들어보자’는 말이 나왔다. 처음엔 웃었다. 우리가 무슨 MD냐고. 하지만 공연이 올라가면 다회 관람하는 몇 명은 반드시 굿즈를 찾는다.


“배우 얼굴 넣어서 만들 수 있는 거 뭐 없을까요?”


그 말에 다시 진지해졌고, 결국 나는 ‘비용도 안 들고, 팬심을 자극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오른 ‘한 사람’이 있었다.


예전 공연을 통해 알게 된 한 ‘공연 덕후’ 친구가 있었다. 좋아하는 배우 얼굴을 직접 그려 굿즈를 만들고, 팬들끼리 나눠주는 정성스러운 아이였다. 그림을 보는 순간, ‘이 정도 퀄리티면 우리도 써도 되겠다’ 싶었다. 그 아이는 기꺼이 응했고, 우리는 그 아이가 그린 배우 얼굴을 넣은 작은 기념상품을 제작했다.


사실, 그 기념상품은 예쁘게 잘 나왔다. 배우들도 만족했고, 관객들의 반응도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만큼 판매되진 않아, 결국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재고가 많이 남았다. 이 사실을 배우들이 알면 속상해할까 봐, 공연 막바지에 완판 된 것처럼 공지를 했다. 순전히 배우들의 입장을 생각한 '착한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SNS에서 누군가가 문제를 제기했다.

“이건 저작권 침해야, OOO 캐릭터랑 그림체가 똑같은데?”


음지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맡긴 친구에게 연락했다.

“이거, 진짜 순수 창작 맞아요?”


그 친구는 말했다.

“맞아요! 제가 다 직접 그린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믿어야 했다. 내가 먼저 신뢰해야 할 사람은 그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SNS 안에서의 의심이 이어졌다. 더 이상 나는 이 문제를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제작사 전체의 명예에 관련된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 공연의 명예를 지키는 게 우선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공연의 명예와 기념상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 법적인 자문을 구했다. “이 디자인이 정말 저작권을 침해한 것인가?”


변리사와 상담을 했고, 그들은 말했다.

“이 디자인이 법적으로 문제 되진 않지만,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싶은 나는 결국, 우리가 실수한 게 있다면 배상하겠다는 각오로 직접 그 OOO 회사에 연락 했다. 문제가 있다면 신속하게 법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차분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이 디자인은 저희가 100% 저작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중략)...저희가 주력하는 분야가 아니기도 해서 저희는 공론화 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추후에 이런 작업을 하시게 되면 그때는 미리 연락 한번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구두로 이 일을 마무리했다. 그 일이 법적으로도 문제없다는 결론이 나올 때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건, 저작권 문제는 단순히 법적 책임만이 아닌, 그것이 작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과 관련된 기념상품 디자인은 더 철저한 검토가 필요했다.


그 아이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고의도 없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길 바랐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책임을 묻기보다는 내가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여 작은 실수가 그 아이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까 봐, 나는 그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분명한 건, 내가 이 일을 처음부터 더욱 세심하게 살피지 않았던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림체라는 무형의 습관을 배경에 깔고 작업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몰랐던 것이다. 그것을 걸러내지 못한 건, 사회 경험 많은 나의 몫이었다. 내가 더 세심하게 확인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저 하나의 작은 기념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SNS에서 한 사람이 던진 말 한마디가 우리 작품에 대한 명예를 위협했다. 잊고 싶을 만큼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 기념상품을 통해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제작비 회수가 어려웠고, 재고만 쌓였다. 반면에 그 일을 수습하는 데 들인 시간, 감정, 신뢰의 무게는 아주 컸다. 무엇보다 괴로웠던 건, 작품 자체의 명예에 흠이 갈까 봐 노심초사했던 시간이었다. ‘이 작은 상품 하나가 이토록 많은 마음을 소모하게 할 줄이야.’


“호의에 기대는 선택”이 때로는 얼마나 큰 책임을 동반하는가. 저작권은 단순히 법적인 보호를 넘어서, 누군가의 창작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


이 경험을 통해, 앞으로 모든 기념상품 기획을 할 때마다,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 작은 기념상품이 던진 교훈은 앞으로도 공연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나에게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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