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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결국 뭐가 된 노홍철 이야기

방송인 노홍철

by all or review Jan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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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


'너 커서 뭐 될래?'란 질문을 받아본 사람은 안다. 이 질문엔 답할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드디어 답을 하는 사람이 생겼다. 노홍철이다.


누군가에겐 "좋아~ 가는 거야~", "럭키 가이", "돌+I" 등으로 불리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 석자로 우뚝 서기까지 그의 인생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방송계에서 사실상 퇴출됐다가 책방, 빵집, 유튜브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노홍철은 모두에게 '부지런함'을 강조했다.


"아무 것도 안 하지만 마세요."


부정어 세 번(아무 것, 안 하다, 말다)으로 압축되는 강연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강연 시작 전부터 한 사람 사람 모두 사진을 찍어주고,  QnA 시간엔 관객석으로 내려와 질문을 받아주는 서비스는 덤이다.


부모님이 반대하고,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난잡하게 교차할 때, 노홍철을 떠올린다. '내 눈 앞에 노홍철이 있었으면..'이라고 말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그저 해나가면 될 뿐이라는 것. 그것이 정답이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브런치 글 이미지 1

오늘 내용의 제목이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입니다.     


이건 뭐, 제 짧은 인생 47년간 어릴 적부터 듣던 이야기입니다. 제 사업자명도 이겁니다. 오늘은 방송인이 되어 수많은 상을 받고 큰 잘못을 하고 난 이후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작은 몸부림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유홍준 교수님, 송길영 작가님 이야기를 제가 어제 들었는데, 하나로 관통하는 게 ‘어마어마한 변혁의 시대다’라는 거였어요. ‘AI가 쳐들어온다. 우리는 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어떤 것에도 부합하지 않는 제가 어떻게 사는지 말해보겠습니다.     


그... 제가 말하는 걸 병적으로 좋아해요(웃음). 저도 저를 모르겠어요. 어디로 흘러갈지요. 저는 학자들처럼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고요. 대신 저는 다양한 경험이 있어요. 방송인, 여행업을 하고 있고요. 서점도 운영하고 있고, 빵집도 운영하고 있고, 아이스크림도 수입해서 판매하고 있고, 카페도 하고, 패션업도 하고, 운 좋게 잘 돼서 강남에 건물 하나 갖고 있습니다(웃음). 용산구에 마당이 있는 저택을 갖고 있습니다. 그 밖에 몇 개가 있는데..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재수 없잖아요?(웃음)     


즉흥적으로 질문을 받고 질의응답으로 해도 좋고요. 그전까지는 준비한(솔직히 말하면 준비하지 않은) 이야기를 해보죠. 저는 많이 부족한 상태로 살아요. 여기 뭐 부족하지 않은 채로 사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저처럼 부족한 분들도 있을 거라 생각해서 한번 말해볼게요.     


일단 첫 번째로 제가 작은 서점을 하다가 좀 커졌는데, 그 계기를 말씀드릴게요. 전 어려서부터 주위가 산만하고 늘 말이 많았어요. 초등학교 때도 제 나름의 철학이 있었어요. 저는 떠들어도 선생님한테 예쁨 받고 싶었는데, 고민하다가 그럼 선생님들도 웃기자. 이건 ‘합리적인 분위기 메이커’라고 생각해서 신나게 떠들었어요.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고 선생님도 웃었습니다. 매년 선생님이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웃음).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부모님을 보면서, ‘신이 계시다면, 제가 떠드는 걸로 업을 하게 해 주시고, 그러면 정말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나서까지도 저는 늘 주위에서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너 커서 뭐 될래. 그러다 뭐 먹고살래.’     


그러다가 어느 날 TV에 나왔고, 많은 돈을 벌더라고요. 사람 욕심이 끝이 없잖아요. ‘이게 되네?’ 싶더라고요. 만약에 내가 노는 걸 좋아하는데 노는데 돈을 벌 수 있으면 정말 착하게 살 수 있겠다. ‘(신이 계시다면) 신이시여, 노는데 돈을 벌게 해 주세요.’ 저 여기 놀러 왔죠? 돈 내고 오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 네. 하하하(웃음)     


이런 삶을 살다가 남들이 안 된다고 해도,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마음속에서 꿈틀대는 걸 실행에 옮기면 ‘벽은 높지만 꼭 안 되는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살 수 있어요. 늘 잘 될 수는 없잖아요?


크게 사고를 쳤죠. 이름은 알려져 있는데 모든 게 멈추니까.. 와.. 익명성을 잃어서 엄청나게 불편하더라고요. 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히고, 저는 원래 웃는상인데 사람들 욕이 욕이.. ‘죄지은 놈이 웃고 앉아있다’고. 자전거를 타면 ‘운전하다가 실수 한 놈이 자전거 운전한다’고.. 고민하다가 제가 주위에 자문을 구했더니, 책을 읽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때가 한 10년 전인데,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전 단 1권의 책도 완주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웃음). 주의산만, 집중력의 부재. 예.    

 

그래서 책을 읽으라는데 엄두가 안 났고, 그냥 큰 서점을 다녀봤는데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서점의 분위기 자체는 너무 좋더라고요. 표지 디자인이 너무 이쁘고, 많이 들어본 제목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근데 읽고 싶진 않아. 그냥 보고 싶은 거예요. 예쁘니까(희번덕). 내가 책방을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주위에 ‘나 책방을 만들 거야’라고 했어요. 모두가 말렸어요. 10에 9 정도?     


‘야, 대형서점이 문을 닫고, 책 경쟁력이 떨어지고, 사람들이 전자책을 보는데, 너처럼 책을 모르는 애가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이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사람이 반발력이 생기잖아요. 너무 하고 싶었어요. 책방을 할 터를 막 알아보러 다니는데, 그간 모아놓은 돈을 사고 친 걸로 갚느라 돈이 없었어요. 부동산을 뒤졌는데 제가 원하는 자리는 너무 비싸요. 권리금도 있고요.      


그나마 터를 하나 구해서 처음 가보니까 그냥 벽이에요. 있는 건 무단 투기 경고문과 쓰레기었죠. 이 벽이 건물이고, 여기 터에 계셨던 분이 망해서 기분이 상한 거예요. 그래서 그냥 돌로 벽을 만들어서 막아버린 거예요. 건물이 아니라 그냥 벽이었죠. 일단 여기를 다 청소하고 다듬기 시작했죠. 문이 썩어 있었어요. 이건 쓰레기죠? 다 청소합니다. 주방 청소를 했고, 문을 닫았는데 웃풍이 불어서 너무 추워요. 비싸니까 달동네로 갔으니까요.      


여기가 해방촌이라는 곳인데. 지금은 핫하지만, 그때는 남산타워가 보이는 달동네였어요. 옥상, 지하, 1층, 2층 서점을 저렴하게 만들어서 청소했고요. 돈이 없으니까 테이블을 손 보고, 의자를 만들고, 다 철거해서 노출 콘크리트를 만들고.. 그리고 이 자리에 책을 깔아야 하는데 어떤 책을 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베스트셀러는 뭐 당연히 모르고.     


제 주변을 찾아봤더니 오상진 아나운서, 정재승 교수님 두 분이 엄청난 다독가에요. 그냥 집이 도서관이에요. 친구들을 모셨죠. 저는 책들을 띄엄띄엄 놓으니까 그분들이 한숨만 쉬더라고요. 한 층에선 제가 떠들고, 또 다른 한 층에서는 뇌과학자 정재승 교수가 떠들고. 제가 시간이 안 되면 온 사람들이 알아서 떠들고. 이 안의 콘텐츠는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거’에요. 그때는 인문학 강의나 TV 쇼가 없을 땐데, 보시다시피 책이 거의 없죠? 3권 겨우 채워 넣은 겁니다.      


그렇게 오픈했는데, 이제 문을 열면 초반에 한 100m 정도 줄을 서다가 나중엔 1km 정도 줄이 생겼어요. 동네가 마비될 정도로요. 하루하루가 지나갔더니 성공한 도시재생사업과 서점의 사례로 구청에서 찾아왔어요. 저는 유명해지려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방송들은 고사했고, 서울시 시장님이 찾아와서 방송 한번 찍자고 하셨는데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요.      


여기서 맛을 한번 보고 조용히 다음 스텝을 향해 갑니다. 사람이 많이 오는 걸 원치 않았고요. 다음 스텝은 달동네를 지나 아예 상가가 전혀 없는 주택가로 들어가자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굉장히 오래된 집을 하나 찾았어요. 화장실, 문고리 뭐, 거의 기본 60년이죠?(웃음) 떨어질까 봐 뭐 하나 건들기가 무서웠어요. 다음 스텝을 하겠다고 하니까 ‘또 정신 못 차렸구나, 방송해라, 시간 죽이지 마라.’ 하지만 너무 재밌었어요. 책을 여전히 모르는 제가 운영하는 책방이 굉장히 흥하고, 감사하게도 경제적인 수치로도 달콤한 보답을 줬고요. 학자나 인플루언서나 방송인 가수, 배우 다 너무 좋아했고요. 무엇보다 고객분들이 좋아하셔서 너무너무 믿기지가 않았죠.      


그래서 두 번째 스텝이 될 공간을 제가 하나하나 정리합니다. 직접 책을 전시하고요. 오래된 집이었어요. 적산가옥이라고 하죠. 일본식으로 지은 집이요. 나무로 된 벽장을 살려서 저 붙박이장에 책을 전시하고 오픈했어요. 정체성은 필요하니까 이름은 홍철책방. 제 얼굴을 2m 정도 되게 걸었죠. 이렇게 제 스타일의 공간을 만들었더니 추종자들이 생겼어요.(웃음) 저한테 막 기운을 달라고 하기도 하고, 기도를 해달라고도 하고. 저는 얼마 전까지 자숙해야 하는 사고 친 방송인이었는데요.     


사람들이 외국에서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계속 찾아오고, 또 찾아오고, 오지 말라고 해도 찾아오고. 그러니까 제가 당이 떨어지더라고요. 맛있는 빵을 먹다가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까. 직접 만들어서 갓 구운 빵을 더 달게 더 바삭하게 만들자. 이 공간에 방이 여러 개 있으니까 빵을 직접 만들어서 먹었는데요. 손님이 너무 많이 오셔서 ‘제발 팔라’고 하더라고요. 파세요 파세요 그래서 빵을 팔았죠. 빵을 만드는 족족 솔드 아웃이 되는 거예요.      


제가 빵을 병적으로 좋아하고 빵을 많이 먹어본 사람의 퀄리티는 다르잖아요. 그래서 이름을 ‘홍철책빵’으로 이름을 바꿉니다.(웃음)     


방을 책이 아니라 빵으로 채웠고요. 보니까 책 보다 빵의 부가가치가 더 높더라고요. 재미도 중요하지만 돈도 무시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대 놓고 하자. 세상을 바꿔보자. 아예 벽화를 그리자! 세상을 바꾸자는 마음으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제 SNS에 올렸는데, 다음날 눈을 뜨고 밖에 나가면 매일 모르는 사람들이 저러고 있어요.


브런치 글 이미지 2

거기에 택배 사업까지 했더니 전국구가 됐고. 빵도 제 스타일로 만들어요. 알록달록하죠? 이걸 누가 사 먹을까 싶죠?(웃음)      


‘이게 어떻게 이렇게 되지?’ 싶었어요. 제게 ‘방송을 해라’라고 했던 사람들, ‘너 어떻게 할래’라고 했던 분들은 더 이상 안 보이고 제가 더 재밌게 살더라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재밌는 방법이 뭘까? 싶었어요.

   

정용진 형님. 너무 멋진 분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걸 듣다가 스타벅스 얘기를 들어서 제가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디저트를 대량생산 할 수 있었어요. 전국 스타벅스 디저트를 보면서, 대기업만 스타벅스를 멋지게 운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자극하더라고요. 나도 드라이브 스루 노홍철 책빵을 만들 순 없을까? 싶었죠. 근데 돈이 많이 들더라고요. 규모가 크니까 그 땅을 찾아야 해서, 지방을 타겟팅 했죠. 그리고 손님을 모객하기 위해서 드라이브 스루를 시도했어요. 아무것도 모르지만 외주를 맡겼어요. 5억이 필요하대요. 드라이브 스루 입구를 만드는 데에만요. 제 얼굴이 그려진 드라이브 스루에 ‘누구나 와라’는 메시지 하나 가격이 좀 되더라고요. 아주 그림을 잘 그리는데 노는 친구를 찾아가서 5억이 아니라 500 줄게 해서 꼬셨습니다. 드라이브 스루 차 들어가는 곳을 제 입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그대로 두고요.     


굿즈도 만들어요. 저렇게 굿즈를 만들 때마다 족족 터졌습니다. 정말 변두리 중에서도 변두리인 경남 김해에 있거든요. 부산이나 경주는 비싸니까, 젊은 분들이 출퇴근을 하되 가성비가 좋은 아파트 주거지역만 있는 곳을 골랐어요. 여기는 아파트 인프라가 좋은데, 저처럼 개인 브랜드는 없고 전국구 프랜차이즈만 있더라고요. 파리바게트 뚜레쥬르 이런 거요.     


그래서 ‘내가 조금 특색 있게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정말 오는 게 쉽지 않아요. 사람을 막 불러 모아야 하는데, 급하니까 막 별의 벌걸 다 해요. 옥상을 막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요. 옥상 방수 페인트는 초록색밖에 없습니다. 노루 페인트에 연락했습니다. 그러니까 없던 페인트 색깔을 만들어주셨어요. 공간이 크지 않지만, 죽은 공간을 살려서 썼고요. 아 물론 책도 당연히 있어야죠. 책방이니까. 오픈을 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날이 지나도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너무 놀랍더라고요.      


드라이브 스루로 차를 넘어 이제는 바이크까지 와요. 제가 바이크라는 문화를 터치했더니, 바이크를 타는 분들이 막 오세요. 제가 치마를 입던 저런 모자를 쓰던 그냥 빵 자체가 특이하니까 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시고요. 음료에 장난을 쳐봤어요. ‘노홍철 천재’,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고 쓰여 있죠? 저걸 돈 주고 사 먹더라고요. 이런 모자를 파는데 이걸 왜 사는지 모르겠어요. 늘 솔드아웃이 됩니다.      


와인도 만들었어요. 솔드아웃이 됩니다. 저 와인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 옵니다. 저는 저기에 쓰여 있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릅니다(웃음).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게 ‘고민’과 ‘긍정’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이 와인의 이름은 ‘고민과 긍정’입니다.     


지금은 쿠키부터 빵, 쿠션, 모자 없어서 못 팔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일련의 과정을 거치니까 어떤 일들이 들어오냐면, ‘대기업 브랜드 컨설팅’이 들어와요. 저는 그럴 자격이 없죠. 정중히 고사했는데, 자꾸 거절하는 게 믿음이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이후로 무조건 3회 이상 거절합니다. 이건 제 영업 노하우인데 ‘무조건 거절’해요. 옥상을 꾸미는데 도와주셨던 노루 홀딩스라는 그룹이 밀라노에도 지사가 있대요. 글로벌로 굉장히 지사가 많은데요. 밀라노에서는 매년 디자인 위크라는 페어가 열려요. 에르메스, 구글 등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2주간 굉장히 크게 참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들의 가장 진보된 기술력을 보여주는 거죠. 제 작업 성공사례를 보고 밀라노에서 전시를 하고 싶다고 그래서 제가 3번 거절했고, 수락했죠.      


전시회를 했는데,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저는 한국에서야 조금 매스컴에 노출된 사람이니까 친근하게 와주실 수 있는데, 외국은 아무도 저를 모르잖아요. 외국어로 어필도 안 되는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전시를 준비하는 데 한 10억 정도 필요하대요. 어마어마한 돈인데 내가 할 수 있을까. 근데 밀라노 거리에 제 전시 포스터가 걸렸고요. 이 전시회 주제는 ‘어메이징 & 원더’에요. 그래서 이름을 ‘홍철 원더’라고 했어요. 불안 반 기대 반으로 열었는데, 이럴 수가요. 전 세계에서 오신 분들이 줄을 5시간씩 서서 들어오는 전시가 됐어요. 현지 매스컴이 와서 대서특필되고 1등을 해서 대상을 받았어요.     


놀라운 건 뭔지 아세요? 전 아직도 현지어를 할 줄 몰라요(웃음). 1등 상이라는 것만 압니다. 네. 어제 제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수업은 송길영 작가의 핵개인의 시대예요. 그 분과 얘기를 하면 한 7시간 얘기해요. 저는 그분처럼 데이터로 통계로 책으로 여러분에게 전달력 있게 말할 순 없어요. 반대로 그분이 책을 읽을 시간에 저는 가만히 있지 않고 돌아다녔더니 간접경험처럼 직접 경험이 쌓이니까 되더라고요.     

 

‘너 자신이 되어라. 네가 원하는 걸 해라. 이럴수록 내 것을 찾아라.’ 송길영 작가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저도 결국은 똑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여행에서 정말 온전히 즐기는 것도 좋고, 때로는 ‘벽’도 느껴보세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구나.’ 여기 한 끼 한 끼가 다 뷔페더라고요. 어떤 사람과 얘기할 때 더 좋은지 느껴보시고, 그런 데이터 위주로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드셔보세요. 그러다가 저처럼 살아보세요.      

되더라고요. 본업보다 부업이 더 커져서 여기에 열정을 더 쏟고 있고요. 여기 오기 3일 전에 새해맞이 기념으로 히말라야 여행도 다녀왔고, 이 배에서 내리면 전 스위스로 여행을 가요(웃음).   

  

‘아니, 돈이 어디서 나서? 평생 2-40대는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그렇게 놀아도 돼?’ 싶죠? 정말 급변하는 이 세상이요, 뭐라도 하니까 수익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이젠 여행을 떠날 때 전 다른 걸 준비하지 않아요.     

여러분들, 저는 비싸서 이 배에서 와이파이를 신청하지 않았어요. 비행기 모드입니다. 비행기모드여도 그냥 원 터치로 이 공간을 다 촬영할 수 있어요. 24시간 스탠바이죠. 저는 TV쇼 레거시 미디어의 녹을 먹고살았던 사람이지만, 지금은 여기에 더 집중합니다.


단적인 예로, 스위스에서 집을 하나 빌려서 여러분 같은 불특정 다수를 무료로 초대했어요. 그게 한 4-5천만 원 들거든요. 스위스는 물가도 비싸요. 거기서 제 생활을 기록하고 업로드했더니, 수익이 한 달 놀았는데 3억 정도 발생하더라고요. 이제는 남은 여생은 놀면서 기록해야겠다.      

송길영 작가님이 말씀하셨죠. ‘기록하라’라고. 그 기록이 중요한 건 본인의 서사와 진정성이라고요.  

    

저는 어려서부터 ‘너 커서 뭐 될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학교에 소환되셨을 때, 체벌을 당할 때, 군대에서 등등등 일련의 과정들을 겪었지만요. 끝까지 진정성 있게 유지했더니 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고 계세요. 사업자 등록을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로 했더니, 이것 역시도 ‘노홍철이니까 그럴 수 있지.’ 하시더라고요.      


제 아버지는 평생 삼성전자를 다니셨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셨고요. 여느 부모님처럼 ‘홍철아, 너도 대기업에 갔으면 좋겠다’ 하셨어요. 그런데 제 형은 부모님 바람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해서 카이스트 학사 석사 박사, 캐나다 대학 박사, 지금은 교수가 됐고요. 부모님은 그 교수가 된 형을 좋아하시지만, 뒤에서 제게 몰래 말씀하세요. “홍철아 나는 니가 더 좋다.(웃음)” 예전에는 용돈을 드리면 안 쓰셨는데요. 요즘은 “홍철아 카드를 쓰면 세금 공제가 되더라.”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마음껏 쓰십니다.     

 

저도, 형도,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고요. 여러분도 이 자리에 오는 게 대부분 자발적으로 오셨을 텐데요. 마음에 드는 것도, 안 드는 것도 있으시겠지만요. 뭐라도 경험하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실행력 중요합니다. 제가 내려가도 사진 찍어주실 분은 응당 한분도 빼놓지 않고 찍어드릴 마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궁금하신 게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네, 이상입니다.      




QnA

브런치 글 이미지 3

- 도전할 때 두렵지 않나요?

= 뻔한 얘기인데요. 저도 정규 교육과정을 똑같이 밟은 사람으로서 두려움이 없을 순 없죠.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이 커요. 그런데 저는 그 정규교육과정 동안 집중을 전혀 못해서 일반적인 친구들보다 기본적인 소양이나 지식이 뒤처져 있어서요. 스마트한 친구들도 실패하기 부지기수잖아요. 저도 두려워요.

    

음 제가 20살 때 잃을 게 없었어요. 그래서 노점상을 시작했는데요. 약수역 4번 출구에서 노점상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지 말고 뭐라도 하면, 잃은 돈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얻게 될 겁니다. 이만하다고 생각했던 게 고작 요만한 거예요. 이제는 새로운 일에 대한 저항 자체가 없어요. 그냥 하면 해요.     

 

제가 유튜브를 하는데, 그걸 시작한 게 작년이에요. 46살 때죠. 저는 아직도 휴대폰을 잘 다루지 못해요. 메시지, 촬영 그게 다 에요. ‘내가 하면 되겠어? 핸드폰 화질 보면 장비도 너무너무 훌륭한데..’ 그래서 저는 ‘모르는 게 약’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했어요. 제 채널에 며칠 전에 다녀온 히말라야 영상이 아마 오늘 올라갔을 거예요. 이걸로(핸드폰)만 찍으니까 편집 시간이 오래 안 걸려요. 먹을 때 콧구멍만 나와. 막 더러워(웃음).      

근데 이게 경쟁력이에요. 요즘은 이렇게 다른 걸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이제는 그런 경험을 많이 했더니 두려움보다 모를 때 막 하는 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더라고요.      


물론 실패한 경우도 많지만, 이렇게 실패해도 모든 과정이 버려지지 않더라고요. 무조건 쓰이더라고요. 책방, 빵집 그동안 단 거 먹던 습관까지도요. ‘그만 먹어 이 썩어!’ 했던 게 도움이 됐고, 책은 안 읽었는데 표지 이쁜 건 귀신 같이 찾아요. 내용과 전-혀 상관없어요. 그런 시장을 하나씩 개척해 나가는 것 같아요. 레드오션이 아니라 블루오션이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저를 믿고 뭐라도 해보면 다른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 제 꿈이 부모님과 달라요.

= 제가 하는 모든 건 부모님이 원치 않았던 길이었어요(웃음). 그리고 저희 형 한 집안에서 자란 제 혈육은 모든 게 부모님이 원했던 코스를 따랐어요. 저희 형도 굉장히 만족스러워해요. 그게 왜 좋냐면요. 여행 와서 노는데 돈을 버는 저처럼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니까,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논문 발표하고 그 하루하루가 너무 좋은 거예요. 장손이라는 무거운 짐 때문에 제게 자유를 나눠주고 본인은 해야 하는 걸 했는데요. 서로 다 행복해해요. 그렇지만 제 마음은 솔직히 이쪽이에요. 조심스럽지 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걸 무슨 질문이라고! 하고 싶은 걸 해야죠!’(박장대소)     


부모님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 달라요.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들은 제가 사는 세상과도 다를 거예요. 저는 70명이 한 반에 살던 사람이고요. 병 팔아서 학교가 돈을 착복하고. 신문 모아가면 학교가 막 착복하던 시대였어요(웃음). 지금 세상처럼 불투명하고 불분명한 사회에서는 하고 싶은 걸 해야 해요.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너무 좋았어요. 말을 너무 많이 했었는데, 병원에서 막 놀라요. 말하다가 피가 난 사람 처음 봤다고요. 제 옛날 방송 보세요(웃음). 아~ 너무 시끄러웠어요. 원활한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게 얼마 안 됐어요(웃음).      


짧은 시간에 말할 건 아니지만, 무조건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는 걸 전제로요, 정말 ‘일반적인 사람보다 훨씬 좋아해야’ 해요. 깊은 마음도 필요하고요. 그게 아니라면 부모님 말씀 들어야죠.      


저희 형도 아무리 형이지만 제100분의 1법니다(웃음). 아닌가 1000분의 1인가(웃음). 저희 가정의 임상실험을 통해서는, 무조건 하고 싶은 걸 해야 한다가 결론이에요. 하지만 진짜 좋아야 해요. 피가 날 정도로요. 잠을 자지 않고도 할 정도로요.      


저는 그게 당황스럽거나 힘들지 않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저는 여기서 만난 분들과 밤에 계속 얘기하고 있거든요. 또 새로운 걸 보고요. 저는 지금 47살이 됐지만 앞으로 또 뭘 할지 모르겠어요. ‘뭐가 된 노홍철’인데 뭐가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는 하고 싶은 걸 하라에 한 표입니다. 어머니가 우셨지만, 하고 싶은 걸 했습니다. 파이팅!!     


- 안녕하세요, 저는 매스홀릭 대표이사입니다. 아이들이 수학공부를 싫어하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게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에게 조언을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 솔직한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의 상태와 이 시대 수학의 필요성과 이런 것들을요(웃음).    

  

제가 홍대 기계공학과 나왔어요. 이쪽 길을 오는데 그게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는데요. 어쨌든 뭘 했다는 건 굉장한 자산인 것 같아요. 요즘은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펼쳐질 상황을 장밋빛으로 그리는 것보다 적재적소에 딱딱 얘기해 주는 거요. 제가 뭐 감히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대표님이 굉장히 스마트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스타트업도 몇 개 했다가 접었어요. 제가 학자분들과 식사하고 얘기할 때, 수학이 됐든 인문학이 됐든 옛날에는 다수가 그 길을 대부분이 갔다면 이제는 어떤 분야를 소수가 가더라도, 마니아층은 확실히 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말씀해 주시고, 흥미로운 친구들을 끌어오시고. 과감하게 놔주거나 다른 길을 설명해 주셔야 하지 않을까(웃음) 싶습니다.   

  

- 저 홍철책빵 가봐도 돼요?

= 저랑 지금 사진 찍고요, 그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주면 빵을 공짜로 줄 거예요. 이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주세요. 그러면 빵 공짜로 줄 겁니다. 놀러 와~(웃음) 야.. 이렇게 실리를 챙기는 질문이라니. 굉장히 수학적이지 않나요?(웃음)     


- 제가 원래 수학이나 물리를 좋아했는데, 본격적으로 수능 준비를 하다 보니까 성적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풀이가 안 풀리니까 불안해져요. 이렇게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추락하면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궁금해요.

=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이공계 출신이에요. 저는 음..‘잘 풀리고 안 풀리고’라는 표현이 안 맞을 정도로 수학을 아예 모르겠더라고요, 아예(웃음). 아버지가 영문과를 전공하셨는데, 일을 하시다 보니까 기술 전공자에게 기회가 더 많았대요. 그래서 아들은 이공계를 전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저는 예체능계 적성이었는데 이공계를 갔어요.     


가자마자 막히더라고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랬더니 어땠냐면, 대학 입학 후에 너무 많은 기회가 있더라고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대학 서열이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알바나 보조적으로 생활비를 벌 수 있는 게 0이었어요. 아예 방법이 없었어요. 너무 막막했어요. 내가 하려는 의지는 있는데, 현실은 너무 답답하니까요. 대부분 저랑 같이 놀았던 친구들은 그냥 포기해버리더라고요.      


대신 고민을 엄청했어요. 와인 보셨잖아요.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은 의대에 진학하거나 어떤 NGO 기구에서 알바를 하거나 인턴을 하더라고요. 근데 ‘난 마음은 저 친구 못지않은데 왜 안 되지?’ 싶었거든요? 근데 저 친구가 공부할 때 전 놀았잖아요. 저 친구는 기본을 꾸준히 했더니 그런 좋은 상황이 온 거죠.   

   

대신 저는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계속 놀고, 또 놀았어요. ‘이렇게까지 놀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놀았어요. 저는 놀았으니까 그걸로 돈을 벌면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2학년 때였나요. 취업도 창업도 안 되고, 그 어떤 걸로 안 됐어요. 세뱃돈 받은 걸로 8천 원 명함을 팠어요. 플레이 매니저 노홍철이라고 써서 뿌리고 다녔어요. 놀 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어땠을까요?      


아무도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웃음). 그동안 놀아서 신뢰도가 없었어요. 대신 제가 형을 만나러 갔을 때요, 카이스트에 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형, 혹시나 이 연구실에서 여행 간다고 하면 나한테 연락하라고 해줘. 핏줄이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받았는데요. 카이스트 랩실에서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MT를 가는데 2박 3일 일정을 짜달라고 하는 거예요. 당시 고액 과외가 20만 원이었는데, 저한테 15만 원을 준다는 거예요. 연락을 받고 해결책을 못 주는 제 자신이 놀랐어요(웃음).  

    

그래도 사람이 닥치면 한다고, 안 되니까 계속 막 움직였어요. 일단 문방구를 갔는데, 문방구에 ‘자석 낚시’가 있어요. 입을 계속 벌리면서 움직이는 거고요. 막 무선으로 조종하는 자동차가 너무 안 팔려서 땡처리로 헐값에 샀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석학들의 MT에 그걸 보냈어요. 그랬더니 진짜 나이 예순의 교수님이 낚시를(웃음).. 빈병으로 레일을 만들어서 절대 하면 안 될 ‘음주운전을 해보세요.’ 조종해서 레이싱카로 경주하는 거예요. 이런 거를 한 3개 제안했는데, 카이스트에서 60건 했어요. 서울대, 연대, 고대까지 넓혀서 한 매거진에 소개된 적도 있어요. 그때 돈 많이 벌었습니다(웃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지만 마세요. 새로운 걸 막 해보세요. 가만히 있지만 않으면 나중에 ‘걔 거짓말 아니었구나’라는 걸 200% 느낄 거예요. 막혀서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불꽃이고 씨앗이에요. 파이팅입니다.     


- 김해에서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노홍철 님이 오신다고? 왜 오실까? 분명 바쁘실 텐데’ 했어요. 그린보트를 수락해서 이 자리에 올 때까지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온 이유는 명쾌했어요. 지난번에 왔을 땐 저랑 친한 정재승 교수님이 환경재단 이사회에 속해 계세요. 홍철 책방을 도와주셔서 그 부채 의식으로 왔어요.      


명사분들과 얘기하는데 수업 시간 외에 사적인 영역까지 얘기를 하게 되면 서로가 굉장히 큰 영감을 받어요. 그래서 협업도 하고, 창업도 했고요. 그 수혜가 너무 커서 실은 그 기대감 때문에 온 거였고요.    


하지만 스케줄을 체크해 봤더니 스위스로 나가려면 오늘 제가 이 배를 떠나야 합니다.

     

제가 서울로 돌아가면 지금 서울 빵집 공사를 마저 해야 해요. 방 하나에 CGV를 그대로 옮겨올 거고요. 김초희 감독님의 영화를 상영하고, GV도 할 거예요. 휴대폰으로 찍은 게 많으니까 업로드본 외에 감독판도 거기서 상영할 거고요. 또 재밌는 콘텐츠가 발생할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 부모님이 반대해도 하고 싶은 걸 하는 22살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너무 많은 걸 하다 보니까 진짜 하고 싶은 걸 모르겠더라고요. 영상 드라마 촬영이 아니라 춤도 추고, 주인공도 되고 싶고요. 정답이 뭔지 모르겠어요

= 부모님이 반대를 그냥 하시지는 않을 텐데요. 음.. 저는 대학교 때 동아리가 23개에 가입돼 있었어요(웃음). 저랑 너무 친한 다이나믹듀오라는 동생들이 있어요. 동네 동생이어서 초중고 동문인데, 대학까지 같이 갔어요. 개코가 힙합을 하고 싶은데, 대학에 힙합동아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그래요. “형 동아리를 만들고 싶은데, 형이 회장을 해주면 안 돼?” 생각해 보니까 23개나 24개나 뭐(웃음). 그 동아리가 지금도 홍대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그때는 우리가 힙합을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빵이, 여행이, 아프리카, 스위스, 남극, 북극, 히말라야 그게 너무 좋아요. 지금 47살인 저도 이렇게 살아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어요. 저는 그 나이 땐, 한 분야의 관심사를 알지 못했어요. 찾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보다 더 빠르잖아요. 저는 20대 30대 때 제일 재밌었던 걸 40대 때 압축적으로 하고 있어요. 근데 이런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여행을 하는 데도 여행을 가요. 물론 큰 사고를 쳤는데도 섭외가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안 하고 다른 걸 하는 건 내가 다른 걸 하려고 자발적으로 찾는 거예요. 여기 형님 누님들 보면서 제가 사실 나이 먹으면 꺾일 줄 알았는데요. 전혀요. 계속 에너지도 나오고 똑같더라고요. 지금도 똑같이 찾아 헤매고 있어요. 이만큼 했는데? 더 가봐야 해요. 이만큼에서 고르는 베스트와 저만큼까지 해서 고르는 베스트는 달라요. 제가 지금 지구마블 세계여행 3을 하는데 그건 여행이어서 하는 거지 방송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혹시 안 가본 데 갈 수 있을까 봐 하는 거예요. 생으로 막 야생에 들어가서 막대기 하나 들고 야생 호랑이 만나는 거예요(희번덕). 죽는 줄 알았어요, 정말. 도파민 하이!(웃음)      


지금처럼 앞으로도 지금 마음 가지고 더 해보세요. 모든 것엔 대가가 따라요. 에너지도 더 필요하고, 걱정도 많을 거예요. 그건 계속 가보시면 돼요. 훗날 훨씬 더 재밌게 살고 있을 거예요. 전 무척 재밌어요.


제가 한 친구에게 ‘같이 가자!’라고 했는데, ‘우리 나이에 골프밖에 할게 더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그게 재밌는 줄 아는데, 거기까지밖에 안 해봤으니까 그런 거죠. 지금처럼 계속 경험과 견문을 넓혀가면 그게 킬링 타임이 아니라 힐링 타임을 넘어 발전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될 겁니다. 파이팅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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