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주량이 세지는 않지만 술자리도 좋아하고, 집에서 맛있는 안주에 혼술 하는 것도 좋아한다. 늦은 밤 아이들이 잠든 시간, TV앞에 조그맣고 알록달록한 밥상을 펴놓고 치킨을 올려놓은 뒤에 슬그머니 소주병을 꺼낼 때 행복함을 느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술을 처음 먹었던 날부터 질리지도 않고 술이 좋았던 것 같다.
남들은 첫 술에 이걸 왜 먹냐며 맛없다고 하는 반응들도 많다고 하던데, 나는 이상하게도 '쓰지만 나쁘진 않은데?' 라며 주량을 알지도 못한 주제에 홀짝홀짝 너무 많이 집어넣어 쓰라린 숙취에 시달렸었다. 그래놓고도 며칠 만에 또 먹으러 가자고 친구를 졸라댔었고, 대학생 때는 한 달을 꼬박 쉬지 않고 먹기도 했다.
광산은 남초회사다.
아무래도 여성근로를 법적으로 제한하기도 하고, 분야자체가 여성들이 기피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사무직직원이나 몇 있는 정도다. 안 그래도 남자들 판에서 광산일까지 하는 분들과 회식을 하게 되니 항상 거나하게 취하고, 그런 자리가 생기기도 자주 생겨 주 5일을 꼬박 채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결혼하기 전 총각시절.
광산현장의 열악한 컨테이너 숙소에서 지내면서 술과 함께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술을 쳐다도 보기 싫을 법도 하건만. 나는 본가에 올라가 아버지와 기어코 또 먹었다.
나는 간단한 안줏거리를 하나 놓고,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와 마주 앉아 술을 먹는 게 특히나 좋았다.
지금은 나이가 있으셔서 술을 못 이기겠다며 드시지 않을 때도 많고 드시더라도 한 병 정도만 드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시지만, 여전히 나는 본가에 올라갈 때면 아버지 앞에 앉아 소주병을 꺼내든다. 옛날이랑 다른 점은 매제가 같이 앉아 있다는 정도랄까.
내가 술을 좋아하고 아버지랑 먹는 술을 특히나 좋아하기 때문일까.
나는 첫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나중에 아들이랑 술 먹어야지!'하고 기대하며 그날이 얼른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이제는 둘째 아들도 있으니 셋이서 먹어야겠다고 더 부푼 기대를 갖고 있다.
어느날 회사선배와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나의 부푼 기대를 대화주제로 꺼내게 되었다.
그분도 아들이 하나 있는데 술을 일찍부터 먹였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술을 가르쳐야겠다고 계획했던 게 아니라 아는 지인과 저녁식사 자리에서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는 대화주제가 나왔고, 한 모금 먹여본다는 것이 두 모금이 되고 종래엔 다섯 잔까지 되며 그렇게 첫 술을 먹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선배는 이후 집에서 가끔 아들과 같이 한두 잔 한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한편으로는 아들과 같이 한잔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이 있는 반면, 일찍부터 먹이면 안 될 텐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과연 언제부터 먹는 게 좋을까. 가장 좋은 건 역시 성년이 된 이후겠지만 미성년일 때부터 친구들과 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한 세상이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한참 생각하다 도달한 결론은 '그냥 지내다 보면 적당하다는 때가 느껴지지 않을까'였다.
아빠가 된다는 건 참 힘들다. 아들 음주까지 걱정해야 된다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아들 덕분에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