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교수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리즈 12번째 이야기
이하의 내용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기업용 발표를 위한 장표에 대해 한 장 한 장의 설명에 해당하기에 장표의 구성에 따라 1페이지에서 3페이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주기적으로 배포, 연결되며 시리즈로 구성.
1. 신당동의 떡볶이 플랫폼의 역사
떡볶이의 대명사가 된 신당동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지고, 마복림 할머니가의 "며느리도 몰라 아무도 몰라"하는 오랜 전통의 떡볶이 타운이다. 마복림 할머니의 아들, 손자, 며느리 등등 할머니 이후에 자자 손손이 떡볶이에 3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까지 플랫폼화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찾는 명소가 된 것은 아니었다. 처음 1970년대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프랜차이즈의 햄버거에 밀리고, 해외 피자에 밀리고, 수많은 즉석 떡볶이 경쟁 가게에 밀리고 또 밀리고 하면서 오늘날까지 버티면서 변함없는 맛으로 지치지 않는 고집으로 오늘날까지 성장해 온 것이다.
원조라는 이름과 변함없는 맛과 전통으로 부침은 있었지만 존버(존재하며 버팀)하며 고정 고객을 기반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마복림 할머니가의 떡볶이 타운과는 달리 반대쪽의 수많은 작은 떡볶이 가게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에 밀리고 매출 절벽으로 대부분 문을 닫거나 근근이 버텨 나가던 시절의 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것이 벌써 30여 년 전의 일이다.
2. 플랫폼의 변신의 대명사, 아이러브 신당동의 출현
시대가 변하면서 수세에 몰린 떡볶이 집들은 마복림 할머니 쪽보다는 반대쪽에 위치하고 있는 조그만 가게들이었다. 아직도 나는 '조박사 떡볶이'라던지 '이가 떡볶이' 등등 몇 개의 좌석이 있던 소규모 가게들을 기억한다. 아무튼 피자나 햄버거의 여파는 이들에게 집중되어 매출은 바닥인데 고정비는 계속 나가는 상태가 계속되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처지가 계속되었다. 또한 그 끝도 보이지 않는 상태라서 그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자그만 떡볶이 집들은 터널의 시작은 있을 뿐 끝이 없는 암울한 나날들 뿐이었다.
이때에 7개의 작은 점포의 사장들께서 모여서 회의를 하다가 나온 것이 "합칩시다"였다라고 한다. 7개의 점포를 하나로 터서 넓게 자리 잡고, 생음악을 틀고, 떡볶이 이외에 맥주도 팔고, 24시간 운영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유명한 "꿂어 죽을래, 아니면 싸우다 죽을래?"였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결국 영세한 점포 7개가 합쳐서 대형 '아이러브 신당동'을 만들고 마복림 할머니가의 떡볶이 타운과 차별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는 어떻게 보면 플랫폼의 변신이고 차별화이며, 플랫포의 성공 원칙인 연결인 것으로 성공의 계기가 되었다.
3. 플랫폼 철학의 작동, 생태계의 형성
여기서 중요한 몇 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아이러브 신당동은 자신들의 막바지에 플랫폼의 대형화와 변신을 통하여 살아났다. 작은 연결이 큰 플랫폼을 형성하여 차별화를 통하여 떡볶이만큼이나 젊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를 가지고 변신을 꾀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는 대단히 귀중한 플랫폼 변신의 사례가 될 수 있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아이러브 신당동 보다는 마복림 할머니의 대처였다. 누구도 마복림가에서 술을 팔거나, 순대나 닭발을 팔지 않는다. 11시면 문을 닫고 24시간을 운영하는 아이러브 신당동과 경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같은 시장이지만 마복림가는 떡볶이 마니아들의 단골 장소가 되었고, 아이러브 신당동은 젊은 이들의 떡볶이는 일부인 문화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형태로 모두가 공존하는 떡볶이 타운이 신당동에 오늘날 지금 이순간까지 불야성을 이루게 된 계기가 된 것이며 이에 따른 각자의 역할로 건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아이러브 신당동의 변화의 몸부림을 보았고, 마복림가의 공생과 공존의 플랫폼 원칙을 보았다. 만일 어떠한 것도 양쪽에서 빠져있었더라면 지금의 신당동은 존재하지 않고, 상호 경쟁만을 하며 치킨게임만을 하다가 모두가 사라져 버리는 나쁜 사례로 남았을 것이다.
4. 12번째 이야기를 마치면서...
아이러브 신당동의 변신은 무죄이다. 살기 위한 마지막 절규였으며,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결정이었다. 그들은 선택이 없었다. 그러나 선택의 폭이 훨씬 넓고 슈퍼갑의 위치에 있던 마복림 할머니가의 결정은 참으로 탁월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이 공생하는 다른 영역의 차별화에 발을 들이밀며 경쟁을 했더라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혹자는 마복림 할머니가에서도 24시간 개방과 떡볶이 이외에 순대나 튀김까지 팔아야 시대에 맞는 젊은 이들을 위한 신새대 떡볶이 타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에 맞는 변신과 공생, 공존을 위한 배려는 결국 모두를 살리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더 큰 이유가 되었다는 것에 누구도 의심을 가지지 않는 멋진 예가 여기 있다고 크게 이야기하고 싶다.
다음장에는 13번째 이야기로 플랫폼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 정의로 부터 플랫폼의 철학을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 1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