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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li N Jun 11. 2021

매너리즘,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쩌면 매너리즘의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태, 관성, 습관, 그리고 목적의 상실. 


이는 모두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를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기계적으로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한다. 그러한 태도는 특별한 개혁이 필요하지 않다는 오만함에서 비롯할 수도, 혹은 바꿀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이 낳을 수도 있다. 불변과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나쁘다 말할 수는 없지만, 앞선 방식으로 풀이하면 어느 쪽이든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과도기에서,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 나타난 미술 사조를 지칭하는 매너리즘은 그러한 부정적 시선을 함의하고 있었다. 어원 역시 ‘수법, 양식’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마니에라(maniera)’로, 17세기 고전주의 지향 비평가인 벨로리가 이를 ‘자연’의 대치어로 정의하고 유명 화가의 작풍을 그대로 모방한 16세기 예술가들을 비난하며 쓰이게 되었다⑴. 즉, 이렇게 매너리즘이 거장들의 작품으로 완성된 르네상스 미술을 그저 답습하고 기교적으로 과장하며 겪게 된 쇠퇴기일 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던 게 불과 19세기 말미에서 20세기 초 무렵이다.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매너리즘 미술을 근대 초현실주의와 닮은 선진적인 예술적 시도로 재평가하니 줄곧 전성기의 르네상스 미술과 비교되며 폄하되었던 시기와 매우 상반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매너리즘이 매너리즘으로 이름 붙여진 게 실상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물론 바로크 미술이 보여준 역동성과 인간미, 다양한 양식 표현과 비교했을 때 매너리즘 미술이 과도기에 있는 한 수준에 못 미치는 듯 보일 수는 있으나, 당시의 미술가는 그들 나름의 이야기를 역설하고 고전적인 성격에서 제법 벗어나 다변적인 시도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고전 양식으로의 복고와 선 원근법의 개발로 작품에 얼마나 현실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지 주가 되었던 르네상스와 달리 매너리즘 시대의 미술가는 비가시적인 가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전자의 미술 양식을 기괴하게 변형하였다. 후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미술의 경계는 모호할 수 있지만 ― 한때 이를 같다고 보았을 정도로 ― 본래 미술사뿐 아니라 모든 역사적 흐름이 그렇듯 시대적 특성을 정의하는 단어로 그를 구분하는 일시를 칼질하듯 가르기는 힘든 법이다.


엘 그레코, 〈요한 묵시록의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 1608–1614년경, 캔버스에 유채, 224.8 cm×199.4 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지만 르네상스 전성기 이후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게 된 이유를 생각하면 매너리즘이란 이름에 관한 의문이 일정 해소된다. 이전까지 기술자나 장인 정도로 취급되었던 예술가가 이른바 천재라 불리게 되며 예술의 가치는 대폭 상승하게 되었다. 삼대 거장인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는 각자의 화풍으로 유명세를 타며 이들의 화파는 예술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로서는 명성을 착실히 쌓아 후원을 받고 제자를 두는 것이 미술가의 사명을 차치한,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천재는 더 탄생하지 않았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탄생할 수 없었음이 맞다. 이미 르네상스 회화의 지향점이었던 현실의 재현을 이룩하기 위한 시도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화풍의 장점을 결합한 듯한 라파엘로의 것으로 더 이상 발전하기 힘들었다. 이는 각 거장이 저들만의 진리와 미의 기준을 내세워도 결과적으로 시대적 양식의 틀이 가지는 한계가 존재했던 탓이다.


이에 더해 ‘천재’가 가졌던 명성은 후세 예술가들이 그 뒤꿈치라도 밟기 위해 작품을 모의하기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미 거장들의 브랜드가 입증된 가운데 그것을 따라하기 급급한 그림은 공급 과잉과 더불어 작품성을 인정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플라톤주의가 야기한 내면의 미에 관한 열망은 가시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한 르네상스 미술에 조금씩 변화를 가하기 시작했고, 예술을 향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은 기교적이고, 과장적이며 관람자에게 새 충격을 주고자 하는 표현 양식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매너리즘 미술 작품의 양식적 변화가 먼저인가, 그 내용의 심도와 상징성의 발현이 먼저인가 하는 것은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만큼이나 소모적인 논쟁 같다. 그러나 본 미술 사조를 ‘매너리즘’이라 명명한 이는 분명 그들의 작품이 예술의 ‘진정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여겼으리라.


그렇다면 어떤 경위로 매너리즘이 하나의 고유한 미술 양식으로서 평가될 수 있었을까?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매너리즘은 근대에 들어서 초현실주의를 예보하였고 비고전적으로 르네상스의 시대적 양식을 해체하려는 시도였다며 다시금 조명되었다. 여기에서는 매너리즘이 나타난 시대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르네상스 전성기의 이탈리아는 예술, 문화적 풍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을 함께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16세기 후기부터 17세기 초의 유럽은 봉건 제도의 붕괴 및 반 종교 개혁 운동 등으로 인해 매우 혼란했기 때문에 풍요와 조화를 설파하는 르네상스 문화는 더 이상 명맥을 잇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교회는 교리를 순종적으로 따를 것을 강요하였으며 이는 예술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미술가들에게 외부 세계를 탐구하고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표현 양식에 다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 것도 마땅해 보인다⑵.


이러한 시대적 양상은 20세기의 것과 비슷한데, 특히 매너리즘을 주목하게 된 시점이 거진 제1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점을 보면 더욱 그렇다. 혼잡한 시기에 이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자연주의의 향수 따위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내면의 연구는 초현실주의라는 모더니즘의 한 양식으로 나타났다. 이때 주세페 아르침볼도, 엘 그레코와 같은 매너리스트의 작품성이 긍정적으로 논의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이 보여준 초현실주의 회화는 그들과 어딘가 닮은 인상을 준다.


매너리즘과 초현실주의가 내비치던 불안정하고 다원론적인, 불확정성의 특질은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연계, 심화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여 그 둘을 단지 극적인 대조점에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이렇게 매너리즘부터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까지의 연결 고리를 이어 기술한 이유는 매너리즘이 ‘상투적인 기교의 반복이자 쇠퇴기’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단어의 본래 의미와 달리 고유의 양식으로 인정하는 것이 지금에 이르러 지배적인 견해가 되기까지, 우리는 그 당시와 유사한 경험을 하였다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여태 논쟁적이라는 점을 고려해 지금 이 시대를 ‘네오 매너리즘’이라 일컫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⑶.


그렇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실상 예술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전반의 미래가 어떠할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앞에서는 가볍게 한 말이지만 지금의 우리야말로 매너리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게 아닌지 회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문화이론가 프레데릭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으로 미래의 실패를 언급하며 혼성 모방과 복고주의의 팽배를 지목하였는데⑷, 뉴트로, 레트로라 불리는 작금의 지배적 트렌드가 곧장 떠오르도록 한다. 이게 비단 한국만의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는 것은 SNS의 해외 피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상기에 논한 바와 같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각각 지닌 지향성과 성질을 통해 서로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의 의의를 결코 무시할 수 없는데, 모더니즘은 다른 미술 사조와 마찬가지로 진작에 종결된 과거의 것으로 여겨지며 그것이 지향했던 엘리트주의와 단일 가치는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고 ― 혹은 인지조차 되지 못한 채 미학적 가치로만 소비된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진 다원주의와 복수성의 이름 아래 패배했다 여겨지는 모더니즘은 모순적이게도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에 편입해 반복적으로 내도하고 있다.


이른바 ‘옛 것’이라 낙인찍힌 가치들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합성, 변형 등을 통해 즐기려는 태도, 혹은 그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행위를 옳지 않다고 힐난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다음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응당 나와야 할 대안으로서의 답변이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매년 과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신기술이 쇄도하는 가운데 이를 문화 전반에 적용하는 과정은 더디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놓여있다는 디자인 필드 또한 국제적 규모의 콘퍼런스에서 신선한 미래지향적 제품, 공간 등을 내보인다고 해도 이는 결코 상용화될 수 없음을 암시하고, 비평가들은 기성 디자인이 가진 ‘진부함’을 비판하면서도 그 소비를 적극 장려한다. ‘4차 산업 혁명 시대’는 다가올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리지만, 실제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전쟁과 탄압, 기후 변화, 그리고 기아 문제 등에 대해서는 쉽게 손 쓸 도리가 없다는 변명이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는 과거에 낙관적으로 그리던 미래와 다르다. 이를 모두가 알고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 놓치는 게 무엇인지, 왜 알 수 없는 공허와 고독을 느끼는지 고찰하며 자본주의 사회가 보장하지 못하는 ‘진정성’을 찾기 위해 헤맨다. 가령 화려하고 바쁜 도시에서 벗어나 귀농하기를 바라는 일이나, 돈 잘 버는 법을 제시하는 자기계발서보다 작가 자신의 일상과 감정을 가장 솔직하게 담은 에세이로 향하는 선호가 그렇다. 이는 다시 제주도 한 달 살기 패키지를 비싸게 팔아치우는 여행사처럼, 우울한 글귀를 쓰는 작가의 행복한 이면을 보고 분노하는 네티즌처럼 어딘가 초점이 나간 듯한 진정성을 사고, 팔고, 요구하는 방식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매너리즘에 갇힌 것은 아닌지 감히 고한다. 그러니까, 16세기의 이탈리아 매너리즘 미술 사조가 아닌 그 어원과 본래 의미로서의 매너리즘 말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미래를 예상하는 일이 아주 쉬워진 동시에 거의 불가능하게 된 것을 고려하면, 먼 훗날의 인류가 ― 이조차 상당히 관념적인 말이지만 ― 요즈음의 미술 사조와 문화를 어떻게 평가할지는 더욱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요인의 개입이나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지금과는 180도 다른 미래가 펼쳐질지 누가 알겠는가? 부디 미래가 도달할 때까지 인류가 끝내 파멸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각주

⑴ 한국사전연구사,『미술대사전(용어편)』

⑵ 최경숙, 2000

⑶ 실제로 미술 비평가 제리 샬츠가 진즉 현대 미술을 비판하며 ‘네오 매너리즘’을 언급한 전적이 있었다.

⑷ Jameson, 1990


참고 서적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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