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속한 단과 대학에서 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 (DEI) 커미티에 속해 있다. 한국에서도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른바 DEI) 개념을 기업과 조직에서 어떻게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활용해 조직 성과에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은퇴를 앞둔 한 교수님이 나에게 토스하면서 (?) 커미티에 들어가게 되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커미티 체어까지 맡게 되었다. 한 학기에 한두 번씩 DEI 관련 스피커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고, ADHD나 학습 장애를 가진 신경다양성 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도할 수 있을지와 같은 DEI 주제들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 내 연구 분야 중 하나가 DEI이기도 하고 테뉴어 포트폴리오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당시 선배 교수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나처럼 나이 많은 백인 남자가 DEI 커미티에 있으면 좀 이상하지 않겠어?”
실제로, 내가 속한 단과 대학의 커미티는 나를 포함해 모두 유색 인종이나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 전체 DEI 커미티가 모여 각자 추진하는 일들을 공유하고 미팅을 할 때가 있는데, 대부분 여성, 특히 유색 인종이 많다. 백인 남자는 한두 명 정도에 불과하다.
앞서 동료 교수가 한 말과 비슷하게, 학회에서도 DEI 관련 커미티나 서브 그룹 미팅에서는 백인 남자 교수나 연구자를 보기가 힘들다. 어떤 여자 교수는 “우리는 백인 남자 동료들을 이런 미팅에 더 많이 참여시켜야 해.”라고 농담 섞인 말을 한 적도 있다. 많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그렇듯, 내 전공에서도 DEI 프레임을 사용하는 연구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백인 남자 연구자들도 많다. 하지만 이런 미팅과 커미티에서는 백인 남자가 과소대표되고 있다고 느낀다.
많은 연구에서 DEI 프로그램이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진 백인 남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계나 산업계의 DEI 관련 포지션이나 커미티에서 백인 남자를 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Tim Wise라는 백인 남자가 쓴 Whites Like Me 책과 영상이 주목받은 것을 보면, 백인 남자가 DEI를 추구하는 데 선봉에 서는 것이 흔하지 않은 현상임을 알 수 있다.
DEI에서 다루는 주제가 결국 역사적으로 힘이 약한 소수 집단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유색 인종과 여성이 더 관심을 가지고 관련 포지션을 맡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왜 백인 남자들은 이런 프로그램에 포지션을 맡기를 꺼려할까? 몇 가지 이유가 짐작된다. 그동안 유색 인종과 여성이 주로 맡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맡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시선이 자리 잡혔기 때문일까? DEI 이슈를 논의할 때 백인 남자의 기득권에 대한 비판이나 때로는 그들을 죄인으로 만드는 시선에 반발이 느껴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