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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숲 Dec 02. 2022

이런 내 인생도 기획의도는 있을거야.

#1.빨간 머리 앤을 정주행하세요.

 요즘 <빨간 머리 앤>에 빠져 있다. 넷플릭스의 알고리즘이 잊고 있던 내 유년시절 기억 저 편까지 꿰뚫어 보고 있단 말인가. 무서운 세상이다. 아무튼 초등학생 6학년 여름 방학 때 내가 사랑했던 건 빨간 머리 앤이 아니라 제인 에어였다. 내가 좋아하기엔 앤은 너무나 밝았다. 주근깨에 빼빼 말라서 놀림받아도 밝다. 고아인데도 밝다. 그럼에도 가족처럼 생각해주는 머릴라 아줌마와 매슈 아저씨도 있다. 그런 것 마저 질투가 날 만큼 어린 날의 나는 너무 마음이 고단했나 보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이 맞았다. 요즘은 '가정 폭력'에 대한 인식과 시선이 많이 달라져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지만 내가 자랐던 바닷가 어느 마을에서는 사실 심심치 않게 있었던 일들이다. 아빠는 주폭이 심한 편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놈의 술을 너무 사랑하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아이가 생겨 첫째 아이를 낳고 군대에 입대한 사이 아내는 아이를 두고 집을 나갔다. 그렇게 언니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열아홉 살이었던 우리 엄마를 만났다고 한다. 그렇게 만나 태어난 게 나. 그리고 내 밑으로 동생들이 둘 있다.


 언니와 나는 특히 사 남매 중 많이 맞았는데 언니의 경우는 재혼 가정에 대한 비관으로 엇나갈까 봐 걱정이 지나쳐서라면 나는 그냥 자주 대들어서, 싹수가 없어서, 이기적이라서, 분위기를 망쳐서 등의 이유였다. 여동생의 생일이었으니 추운 겨울이었다. 한 평 남짓한 방에서 사 남매가 꼬깃꼬깃 (그 와중에 서열은 지켜가며) 잠들어 있었다. 어김없이 만취한 아빠가 들어오셨고 손에는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늦은 밤 귀가길이 고단함에도 딸아이 생일을 챙겨주려는 아름다운 가장의 이야기가 맞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야말로 이게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싶었다. 있는 대로 고함을 지르며 사 남매를 깨운 아빠는 '혼자만 즐거운 생일 파티'를 강행했다. 어린 나이에 잠투정이었는지, 정말로 반항이었는지 사실 정확하게 기억은 없다.


 어느샌가 언니와 나는 맞고 있었다. 이유는 기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였다. 나는 아직까지도 동생 생일이 되면 그날을 떠올린다. 가끔은 우스갯소리로 그날을 추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 한 조각은 강렬했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타당하지도 않은 이유들로 맞았는지에 (그럼에도 어떤 이유에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잊지 말자) 대한 여러 기억의 파편들이 들러붙어 점점 더 견고해졌고 견고해지는 만큼 나 스스로를 아프게 찔렀다. 원망과 증오가 쌓여갈수록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파편들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가정을 꾸리고 또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어린 날의 내가 제인 에어는 흠모했지만 빨간 머리 앤은 질투했던 것도 분명 나를 향해 있던 상처의 파편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상황에서든 초긍정의 명언들을 꺼내 주인공 시점으로 모든 상황을 거슬러 버리는 듯한 앤의 태도는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내게 공감보다는 박탈감을 안겨준다. 내가 조금이라도 그 모습에 공감을 했다면 나를 향해 고함을 치고 손을 치켜드는 아빠에게 동생의 생일날 이 밤의 별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동생의 생일 케이크는 얼마나 달콤하고 황홀한 맛일지 입을 놀리며 그 순간을 모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깡다구는 있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 수 있는 성격이 못됐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그 상처를 감히 누가 마음대로 들어와 깊이를 잴 수도, 넓이를 잴 수도 없는 것이다. 상처는 그냥 나와 함께 살아가고 늙어간다. 어느 날은 우스갯소리였다가 어느 날은 가슴을 바늘 하나로 콕콕콕 같은 곳만 계속 쪼아대듯 아픈 것이었다가. 또 어느 날은 아무 생각도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날도 있다. 매일 아프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런 일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를 괜찮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내 나이는 오만한 나이이다.




빨간 머리 앤을 정주행 하세요.


 그 상처들이 머리를 들이미는 날에는 이제 나도 잠자코 당하지는 않는다. 이번에는 그게 <빨간 머리 앤>이었다. 지나치리만큼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가는 앤을 보고 있으면 지금 나 역시 어느 성장드라마(막장 주말연속극이려나)에 주인공처럼 당연하게 올 시련이었다-라고 상상이라도 하게 된다. 내 의견 따위는 안 물어보고 작가가 그렇게 써 준 거다. 그래, 나는 여주인공이니까. 그렇게 암시 아닌 암시를 걸며 살아가다 보면 결국 최종화에서는 작가의 기획의도를 알 수 있겠지. 최종화 전에 알아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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