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가구를 옮겨보세요.
어렸을 때 여동생이 참 미웠다. (지금은 아니다.라는 걸 살며시 강조하고 싶다)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가족들 그리고 친인척들까지도 늘 성격 좋은 동생과 까칠한 나를 비교했다. 하지만 동생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는 성격이 아니다. 동생의 진짜 성격을 나는 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그게 더 분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속을 뒤집어 놓았던 몇몇 사건들이 있지만 모두에게 그 사건들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 오늘날 이때까지 우리를 명명하는 건 지랄 맞은 둘째 딸과 수더분한 막내딸만 있을 뿐이다.
동생은 속내를 겉으로 잘 드러내지 못하는 반면 나는 얼굴에, 표정에, 목소리에 다 드러난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코딱지만 한) 우리 집에 손님이 오는 게 너무 싫었었다. 동생과 나는 둘이서 한참이나 모난 마음들을 나누며 이래서 싫다, 저래서 싫다, 맞다 맞아를 나눈다. 그러다가 막상 손님이 오면 나는 싫은 내색이 금세 사라지지 않아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런데 그렇게 방금 전까지 나의 다정하던 뒷담화 메이트는 손님들 사이에서 미소를 날려주고, 맞장구도 쳐주고, 분위기가 맞는 날엔 한자리 꿰차고 앉아 노가리도 깐다. 방에서 깔깔 거리는 동생의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영혼이 그 웃음소리에 팔려 나간 듯 어이없고 허망했다. 손님이 다 가고 나면 배배 꼬인 심술을 동생에게 쏟아 냈다. 욕도 퍼붓고 근처도 못 오게 했다. (속으로는 이 배신자야!)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악하고 더 지랄 맞은 둘째 딸이 되어갔다.
집안일을 할 때는 더 약이 올랐다. 부모님이 일하러 가신 사이 쓸고 닦고 한 건 나와 언니인데 막상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쯤에는 동생이 나서서 청소를 했다. 왜 엄마는 하필 그때 들어오는 것인가. 타이밍을 늘 잘 잡는 동생이 능력자인가, 쓸모없는 타이밍에 청소하는 우리가 무능한 건가. 결국 엔딩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아니던가. 우리는 동생 부려먹는 못된 아나스탸사와 드리젤라이고 동생은 한없이 가여운 신데렐라가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 언젠가 동생에게 취조 아닌 취조를 했더니 순순히 불었다. 타이밍을 맞춘 것이라고. 역시 능력자는 능력자였다.) 이와 유사한 여러 일련의 사건들이 겹치고 겹쳐 우리는 각자의 이미지로 굳혀졌다. 남편은 처음 인사드리러 우리 집에 오던 날, '성격 못된 우리 딸'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내뱉던 아빠를 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듯 하지만)
가구를 옮겨보세요.
정말 성격이 지랄 맞은 탓인지 나는 집안에 있는 가구를 자주 옮기는 편인데 가끔은 그것이 병에 가깝다고 느낄 때도 있다. 몸이 쑤시고 허리가 아파도 마음이 심란하면 소파부터, 식탁부터 옮기고 본다. 구상이 안되어 있으면 책장에 책부터 꺼내놓고 본다. 정리의 고수이냐, 정리의 둔재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몸을 노동시키고 환경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이다. 분위기가 전환되면 그제야 내 마음속에 챕터도 다음으로 넘어가 있는 기분이 든다. 실제로 (우울증을 앓고 있지는 않지만) 신체적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마음에 쓰일 에너지가 없게 몸을 움직여 그 에너지를 바닥내 버리고 털썩 앉으면 그래도 그 에너지를 생산적인 곳에 썼구나-싶은 일종의 실낱같은 자위이기도 하다.
작년 출산을 한 동생이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 요즘 주변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딸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겪지 않았다. 생리증후군으로 우울의 '언저리' 정도만 겪은 나이기에 내가 하는 위로들이 동생에게 어떤 위로가 되기나 할지, 그 위로가 힘은 있을지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요즘이다. 얼마 전, 동생과 얘기를 나누면서 깨달았다. 지랄 맞은 나는 그 타이틀에 맞게 살아오느라 자의든 타의든 분노를 배설하며 살았다. 하지만 동생은 그러지 못했다. 수더분하고 털털하고 성격 좋은 막내딸의 신분으로 사느라 마음속에 싫은 말들을 차곡차곡 상처인지도 모르고 쌓고 살았던 것이다. 그 이름으로 살아온 너의 어린 시절도 참 고되었겠구나-싶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 나를 배신하고 손님들과 깔깔거리고 방으로 들어온 동생을 꼭 안아주고 싶다. 내 몫까지 수고했노라고. 사실은 용기 없고 속이 좁은 나 자신을 마주하기 겁나 동생에게 그 탓을 떠밀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동생에게 말했다.
"다 찢어진 그 소파 좀 버려봐라! 아무도 안 앉는데 그거라도 치우면 마음이 좀 시원할걸?"
며칠 후, 동생은 다 해졌지만 버리지 못했던 소파를 시원하게 버렸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한다. 버려진 소파와 함께 속 좋은 막내딸도 까칠한 둘째 딸의 타이틀도, 그 이름들에 꽁꽁 묶여 있던 우리의 묵은 상처들도 다 함께 버리고 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