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가르쳐야 할까, 한국어를 하고 나서 영어를 가르쳐야 할까 많이 부모들이 고민을 하고 있고 나 또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봤다.
그 고민을 하는 대부분 부모들의 이유는, 두 가지 언어를 함께 가르치면 아이가 헷갈려한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 확실한 답변을 얘기할 수가 없었기에 다양한 논문들을 살펴보았다.
일단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모국어 이외의 다른 언어를 하는 아이들이 헷갈려한다고 생각을 할까?'이다. 바로 코드 스위칭과 한 언어에서만 국한해서 보는 어휘력 판단 때문이 아닐까.
코드 스위칭
"엄마, slide 탈래.", "I want to eat 고기." 이렇게 두 가지 언어를 섞어서 얘기하는 것을 코드 스위칭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이중언어를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서 보인다. 사실 필자는 한 번도 이걸 문제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이것을 아이들이 헷갈려해서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그게 새로웠다.
이걸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미국 한인타운에 사는 어른들도 코드 스위칭을 하기 때문이다. 그냥 누구나 하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 어른들이 헷갈려서 코드 스위칭을 하는 것일까? 아니다. 그 언어로 아예 모르는 단어 거나 그 언어로 그 단어가 빠르게 생각나지 않을 때, 다른 언어에서 해당 개념의 단어를 빌려오는 것뿐이다. (Language mixing in infant bilingualism: A sociolinguistic perspective; Lanza, 2004)
나 또한 경험했던 것이다. 대학교 여름방학 때마다 한국에 왔는데 코드 스위칭을 정말 많이 했다. 이유는, 말을 빠르게 하는 편인데 한국어 단어를 생각해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차분하게 잠깐 시간을 갖고 생각하면 충분히 한국어로만 얘기할 수 있었지만 빨리 얘기하고 싶어 하는 나의 성격 때문에, 또 생각해내야 하는 귀찮음 때문에 (그게 한국어던 영어던) 수시로 생각나는 단어를 편하게 얘기했던 것뿐.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다른 언어로부터 생각나지 않는 단어를 빌려올 뿐이다. 이는 혼란스러움이 아닌 이중언어 아이들만의 능력이다.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옮겨 다닐 수 있는 능력!
심지어 2살짜리 이중언어 아이들도 상대방이 어떤 언어를 쓰는지에 따라 자신의 언어를 조절한다 (Talking with strangers; Genesse, Boivin, and Nicoladis, 1996). 만 2살인 우리 첫째 아이 또한 그러하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언어의 리듬이 다름을 구별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중언어 아이들이 헷갈린다기보단 언어를 분별하는데 더 예민할 뿐이다.
이중언어 아이들이 헷갈린다는 과학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엄마만 마음이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두 가지 언어로 얘기해줘도 괜찮다는 것.
다만 아이에게 언어적 문제가 보인다면 그 문제가 전반적인 언어 발달에서 오는 문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다.
전반적인 언어발달에 대한 문제라면 모국어와 두 번째 언어 모두에서 문제가 보일 것이다. 두 언어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영아(36개월 미만) 같은 경우언어표현력보다 언어 이해력을 보고 판단한다.말을 안한다고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해를 잘 하고 있다면 문제가 없다.
부족한 어휘력?
부모들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이중언어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어휘력이 부족하다는 점. 한 언어만 놓고 보았을 때는 어휘력이 부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두 가지 언어 사이의 '개념적 어휘(Conceptual vocabulary)'를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개념적 어휘로 계산할 때는 이렇게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한국어로 알고 있는 단어가 50개, 영어로 알고 있는 단어가 50개이면, 두 가지를 더한 후 그중에서 같은 개념의 단어(예: '개'와 'dog')는 빼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하면 이중언어 아이가 알고 있는 어휘수나 단일 언어 아이가 알고 있는 어휘수가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이다 (Pearson, Fernandez, Oller, 1993; Pearson & Fernandez, 1994).
물론 한 가지 언어만 놓고 봤을 때 어휘력이 차이 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현상은 흐릿해질 것이다.
우리 아이는 30개월 이중언어 아이이다. 어릴 때부터 나와는 영어만 사용하고 아빠와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한 번도 이 아이가 헷갈린다고 생각 든 적이 없다. 단지 모든 개념에 두 가지 이름이 있다고 생각할 뿐. 3개월인 둘째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영어를 쓸 때와 한국어를 쓸 때의 반응이 다른 걸 느낀다. (항상 느껴왔으나 뒷받침할 연구결과가 필요했는데 드디어 찾았다!)
이중언어를 한다고 아이들이 헷갈려하지 않는다.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은 꾸준하게 두 가지 언어를 듣고 말할 수 있는 풍부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