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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관 Jun 23. 2024

'우리집'에서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이유

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김정관의 단독주택 인문학 2

지금은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살 수 있다고 여기는 세상이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본이 되는 의식주, 옷은 물론이고 밥까지도 사서 먹는 게 요즘이다. 집도 가족의 행복이 우선이 아니라 투자 가치에 초점을 맞추니 돈이 삶의 기준이며 목표가 되어 버렸다.   

  

돈이 많아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기니 대학도 돈이 되지 않은 전공은 지원자가 적어 없어지고 만다. 명품이라는 브랜드는 경기를 타지 않고, 초고층 아파트는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니 수십 층을 넘어 백 층까지 짓고 있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입는 것도 값비싼 브랜드라야 하고, 수십 억 하는 아파트에서 잠을 자야 행복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돈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믿지만 과연 그럴까?  

   

지어서 써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데     


누구나 삶의 목표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행복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고 물으면 즉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이 곧 행복이 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일인데도 돈만 좇고 있으니 목적지 없이 갈 길만 재촉하는 듯하다.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하지 않을까 싶다. 성현들의 말씀은 행복은 먹고 입고 머무르는 일상에서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먹고 입고 머무는 행위인 의식주의 수단을 만드는 것을 짓는다고 표현했다.    


 

십여 년 전에 하룻밤을 묵었던 집, 안채 여섯 평에 바깥채 여섯 평 정도인 소박한 집이다. 바깥채는 객실과 차실로 쓰고 있어서 손님을 기꺼이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짓는다는 말은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것에 한정해서 쓰고 있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지으며 또 약을 짓고 글을 짓는다. 그러니 무엇이든 지어서 써야만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니 옷을 지어서 입는 사람은 없고, 밥도 하루에 한 끼도 지어서 먹지 않는 집이 적지 않다. 집은 당연히 만들어서 파는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먹고, 입고, 머물게 되면서 우리는 행복한 삶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된 것이 아닐까?    

 

돈으로 사서 쓰다 보니 행복할 수 없는데      


이렇게 정성을 들여 짓지 않고 편하게 사서 쓰게 되는 폐해가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식구들은 집에 일찍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나돌게 된 건 우리가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식구란 집에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인데 그 기본이 깨어지다 보니 가족은 있지만 더 이상 식구는 아닌 게 되고 말았다.          

우리집에 사는 사람들이 밥을 같이 먹어야 하는 식구가 아니라면 어떤 사이일까? 한집에 살긴 하지만 각자의 방에서 잠만 자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각자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맞춰서 제 방으로 들어가고 아침이 되면 나가는 시간에 집을 나간다.     


하룻밤을 묵고 받았던 아침상이다. 정성으로 지어 차려낸 이 밥상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싶다. 하룻밤을 묵어가도록 허락해 준 것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이런 밥상을 받다니...


얼굴을 마주 해야 이런저런 얘길 나눌 텐데 각자 들어오는 시간이 다르고 나가는 시간이 제각각이니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이러다 보니 한집에 사는 것마저 불편한지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면 탈출을 시도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품을 떠나 학교 앞에 원룸이라는 방만 있는 건물로 도망가듯 뛰쳐나가고 만다.   

  

가정을 꾸려 자식을 두고 사는 사람들은 식구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 말고 다른 바람이 있을까? 지금은 바쁘게 사느라 밥 먹을 여유마저 갖지 못하지만 돈을 더 벌어서 좋은 환경에서 살 거라고 한다. 하지만 돈을 모아서 식구들을 챙기려고 해도 같이 밥 먹을 사람은 집을 떠나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집에 살면서 식구로 살아보면     


옷을 지어서 입는 건 옛날이야기이고 집도 아파트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렇지만 밥은 마음만 먹으면 지어서 함께 먹을 수 있지 않은가? 가족은 있어도 식구가 없다는 말은 참 서글픈 현실을 드러내는 우리네 삶의 자화상이다. 집에서 밥을 먹지 않으면 마주 앉을 일이 없으니 한 집에 살아야 할 명분이 없어진다.     


아무리 바쁜 일상에 쫓겨 산다고 해도 무엇을 해서 먹더라도 아침밥은 꼭 먹어야 한다. 밀키트라는 간편식은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데 왜 식구들이 밥을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일까? 아침밥을 챙겨 먹으면 저녁밥도 챙길 수 있다. 밥을 지어서 먹는다는 건 한 집에 함께 사는 식구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명분이라 할 수 있다.     


딸네 식구들과 가지는 밥자리는 밥을 먹는다는 것보다 행복을 마음에 담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딸 부부가 반주를 주고받는 모습은 그 어떤 장면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식구들이 식탁에 마주 앉으면 밥만 먹는 게 아니다. 잠깐이지만 식구들의 표정도 살필 수 있고 지난 하루 일을 돌아보는 얘기도 나눌 수 있다. 옛날에는 밥상머리에서 식구들의 온갖 얘기를 나누었고 가장이 집안의 어른이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서 가장의 자리도 사라졌고 한 집에 살아야 하는 이유도 없어지고 말았다. 우리집이라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의 정체성도 희미해져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라는 표현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역감, 소속감을 드러내는 것인데 밥을 먹지 않으면서 ‘우리집’이 사라지고 있다.       




밥을 지어서 먹으면 하루가 행복하고, 옷을 지어서 입으면 한 철이 행복하다. 집다운 집에 살며 식구로 살아갈 수 있으면 평생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식구로서 마주 보고 밥을 함께 먹는 집에 사는 사람은 일이 마쳐지는 대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식구로 살아가기, 누구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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