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신문 '더봄' 연재 - '무설자의 보이차 이야기' 20
보이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가짜차'나 '무지하게 비싼 차'가 아닐까 싶다. 중국에는 계란이나 쌀도 가짜가 있다고 하니 보이차도 가짜의 오명을 쓰게 되나 보다. 이와 반대로 한 편에 억대가 넘는 노차인 '홍인'의 얘기를 듣고 아주 비싼 차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그 인식은 사실이어서 보이차는 '가짜차'도 있고 억대를 호가하는 '홍인' 같은 노차도 있다.
이 두 가지 차를 하나로 묶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자. 보이차는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가치가 높아진다고 아는 사람이 많다. 원래는 보이차도 다른 차류처럼 만든 그 해부터 마시던 차였지만 밀식 재배한 관목형 대지차는 쓰고 떫은맛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관목형 대지차는 차나무 재배에서 관리도 용이하고 찻잎 생산량이 많아서 가격이 아주 저렴하다. 이 찻잎으로 만들어지는 저렴한 생차는 보이차가 가짜차의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 주범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다른 차류도 '老'자를 붙여 '노백차, 노오룡' 등으로 오래 묵힌 차라는 걸 강조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노차老茶라고 하면 거의 오래된 보이차를 일러 그렇게 부르고 있다. 노차의 대표로 '홍인'을 들 수 있는데 이보다 더 오래된 차로는 '송빙호, 경창호' 등으로 차 이름 뒤에 '호號'자가 붙는 소위 호자급 노차이다. 1950년대까지 만들었던 호자급 차는 골동품 대접을 받으니 이제는 아예 마실 수 없다고 보아야 하고, 그 이후에 '홍인, 황인' 등 1970년대까지 만들었던 '인印'자급 노차는 그나마 마실 기회를 가질 수 있다.
2010년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고수차 열풍은 중국에서 보이차에 대한 투자가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래된 차나무인 고차수古茶樹 찻잎으로 만든 고수차古樹茶는 유명 산지별로 찻값이 폭등하게 되었다. 이른 봄이 되면 한정된 찻잎을 확보하려는 상인이 차산에 몰려들면서 입도선매로 일부 산지 보이차는 찻값이 백배 이상 오르기도 했다. 한정된 고수차에 집중되던 자본이 또 다른 투자의 대안으로 노차로도 이어져 하루가 다르게 값이 올라서 이제는 경매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2023년 5월 26일 서울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보이차 거래 플랫폼 에세티(ASSETTEA)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끽다’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보이차 경매가 진행되었다. 이 날 거래되었던 무지홍인은 한 편에 2억천만 원이었다. 이제 홍인도 얼마가지 않아 마시는 차가 아니라 가치를 소장하는 골동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노차에 어떤 가치가 있길래 다른 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만약 2억짜리 차를 우려 마실 때 5g을 넣는다고 하면 300만 원이 된다. 이만한 돈을 들여서 차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진품 홍인을 오래전에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과연 그 향미는 필설로 형언하기 어렵다고 할만했다. 그래서 노차로 인해 생기는 보이차 시장의 부작용은 가품과 진품을 가려야 되는 일이다. 돈이 있어도 진품에 대한 확신을 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 넘쳐나는 노차로 말미암아 가짜차라는 오명을 보이차가 지고 있다.
내가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한 2006년에는 대익 ‘7542’가 생차의 대표라고 했다. 후발효 차라는 보이차의 특성 때문에 마시는 목적 이외에 투자 목적으로 차를 수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7542’는 신차가 나오면 몇 통씩 많은 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방품이 많이 나도는 차였다. '7542'는 고수차가 아닌 대지병배차라서 그해 나온 차는 쓰고 떫은맛이 많아서 바로 마시기는 어렵다.
'7542'는 1975년에 처음 출시된 차이니 지금은 50년이 지났다. 30년 된 '7542'라며 90년대 차이니 노차 반열에 들었다고 볼 수 있다. 차창차로는 대익 차에 투자 차원으로 구입하는 사람이 많아서 방품이 진품보다 더 많이 나돈다고도 한다. 보이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노차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런데 그 환상을 현실에서 만족하게 채워줄 수 있을지는 마셔본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를 삼아야 하는 건 습창 발효 작업차를 노차로 둔갑시켜 고가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이차가 후발효 차라는 특성이 있지만 만들어서 바로 마실 수 있는 고수차가 보이차 시장의 대세가 된 지금은 묵혀서 마셔야 한다는 생차의 인식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래된 차라고 해서 다 노차의 고유한 향미를 음미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노차에 대한 지나친 집착 때문에 '가짜차'라고 하는 방품이 나돌게 되는 것이다.
굳이 노차를 소장해서 마시고 싶다면 꼭 시음을 통해 찻값이 아깝지 않은 향미를 확인해야 한다. 내가 마셔본 거의 대부분의 90년대 노차는 습창 작업으로 목 넘김이 불편하고 곳이 메스꺼웠다. 보이차는 보관이 까다로운 차가 아니지만 노차로 판매하기 위해 습창 작업을 하게 되면 해로운 곰팡이를 피우게 된다. 30년 이상 잘 보관된 차를 구입한다면 반드시 그만한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만 진품을 소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