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 생활, 속도를 줄이면 선명해지는 것

소욕지족의 차 생활로 얻게 되는 나만의 소확행

우연한 기회에 보이차를 마시기 시작해서 십 년은

잡식성으로 막 마셨던 것 같습니다.

숙차 위주로 마셨던 지라 보이차라고 이름표가 붙었으면

제 손에 들어오는 대로 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차의 향미를 가리는 감각이 나아진 것 같지만

그때는 막입이어서 입에 맞지 않은 차가 없었지요.

하루에 마시는 양도 거의 4리터 이상이었으니

일과 중에 찻물 끓이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차 생활이었지요.

그런데 숙차만 십 년 공부하듯 마셨던 결과였었던지

생차에 손이 가면서 숙차도 골라 마시게 되더군요.

가리지 않고, 아니 가려서 마실 차가 없었는데

어떤 숙차는 목에 걸리고 머리가 아파 마시기 어렵더군요.

엽저를 보면 탄화되어 까맣고 딱딱하게 된 게 많은 숙차는

마시기 어려워서 다시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숙차라고 다 같은 숙차가 아니게 되니

차 생활도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공식이 들어맞게 되었습니다.

잘 마시지는 않았지만 선배들의 조언을 받아 구입해 두었던

고수차 생차가 보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2015년 이전에는 고수차와 대지차의 찻값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부담 없는 찻값으로 구입해 둔 차였습니다.

2010년 무렵부터 고수차 붐이 광풍처럼 휘몰아치며 찻값이 올라

제가 사두었던 차는 보물 수준이 되었지요.

생차 위주로 차를 마신 지 십 년이 되니 차 생활은

목적지가 보이면서 속도도 완급 조절이 되고 있습니다.

보이차 생활로 20년가량 지났으니 언제까지 마실 수 있을까

앞날이 선명해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난날에 마셨던 차, 앞으로 마실 차는 중요하지 않고

지금 마시는 차에 집중하는 차 생활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배를 채우듯이 마시는 건 차가 아니니

지금 마실 5g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지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아도 인연이 되어 귀한 차를 만나게 되면

그날은 차 한 잔으로 더없이 행복해집니다.

무 설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