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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루 Dec 12. 2021

엄마의 통장 이야기

엄마와 만나서 식사를 하고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엄마는 자꾸 그 얘기를 꺼내신다.

바로 당신 통장의 소재에 관한 것이다.

유족연금이 매달 얼마씩 나오는 통장이 도대체 어디 있냐고 내게 물어보신다.

엄마는 고령인데다 치매기가 있기 때문에 돈 관리가 허술하고 통장마저 그 행방이 묘연할 때가 있어 언제부터인가 그 통장을 자식 중 누군가가 관리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엄마가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필요할 때마다 자식에게 돈을 찾아달라고 하여 엄마가 자유롭게 돈을 쓰곤 했었다. 엄마는 자식일지언정 폐를 끼치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밖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돈을 꺼내곤 하였다. 카운터 앞에서 돈을 자꾸 당신이 내시겠다고 우기시는 바람에 나는 난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 나는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소리치듯이 말했다.  

“자꾸 그러시면 다시는 엄마랑 밥 안 먹을라요!”

엄마는 내 엄포에 찔끔하며 ‘알았다’ 하며 꼬리를 내리셨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 엄마의 고집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번은 엄마를 집에 바래다드리고 난 뒤 차 기어를 넣으려고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센터 콘솔을 봤더니 언제 쑤셔놓고 내리셨는지 휴지로 덮은 꾸깃꾸깃한 현금 기 만원이 눈에 띄었다. 정말 못 말리는 엄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어딘가에 돈을 숨겨놓고 못 찾는 일이 잦아졌다. 분명 저번주에 돈을 찾아드렸기 때문에 엄마의 수중에 현금이 얼마 있는 걸 알고 있는데 며칠 후 확인 차 여쭤보면 돈이 한 푼도 없다면서 내게 오히려 돈을 찾아준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황당해했다. 황당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한테 필요한 물품 등은 자식들이 알아서 다 사다드리고 주간보호센터에서 식사를 다 해결하고 집에서는 주무시기만 하는 당신이므로 딱히 쓸 데도 없을 것인데 말이다. 엄마의 속곳 안주머니에는 먼지만 풀풀 날렸다. 

그리고 엄마는 ‘오매 그 돈이 어디 갔을까? 어째야 쓸까...’ 라고 울상을 지으며 허둥지둥 가방과 방안 이곳저것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장판 밑을 샅샅이 뒤져 우연히 돈을 찾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못 찾고 마는 돈도 꽤 많았다. 어딘가에 꽁꽁 숨겨놓고 기억을 못하여 어린아이처럼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를 보면 나도 한숨이 나오며 답답했다. 


그렇게 돈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일이 빈번해지자 형제들 합의하에 엄마 통장을 임시 압수하기로 했던 것이다. 통장을 압수한 또 다른 이유는 엄마가 그 통장마저도 잃어버린 적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는 엄마의 통장을 압수한 것에 대해 이해를 못하셨다. 그래서 한동안은 마음이라도 든든하게 통장이라도 가지고 계시게 했다. 대신 형제들은 엄마의 현금인출 요청이 있으면 은행이 문을 열지 않아 돈을 찾을 수 없다거나 또 현금을 갖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설명하고 그 요청을 거절하도록 말을 맞췄다. 그러나 엄마를 뵐 때마다 엄마는 자꾸 너덜너덜해진 통장을 건네며 돈을 찾아달라고 조르는데 그 요청을 적당한 거짓말로 둘러대며 거부하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었다.   

압수 이후 당연히 엄마는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기 때문에 불편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그 통장 압수 배경에 대해 다시 조근조근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면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돌아서면 내 통장이 어디 있다냐 라고 또 안달해 하시는데 나도 참으로 난감할 일이었다.         

엄마는 실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통장을 영감처럼 알고 살았는디 돈이 없으니 힘이 하나도 없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엄마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엄마는 자기 돈이니 어쨌든 자기가 가지고 있으면서 마음대로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가 자꾸 그 통장을 찾는 주된 이유는 따로 있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미안한 것이다.      

어제도 엄마와 점심식사를 하고 바람 쐬러 근교에 드라이브를 갔는데, 엄마는 또 미안해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또 가방 속을 뒤지면서 통장 이야기를 꺼내며 통장의 소재를 묻는 것이다. 돈 좀 찾아야 하는데 통장이 없다며 드라이브 하는 내내 안절부절못하신다. 

‘통장이 어디 갔을까나... 니가 혹시 갖고 있냐? 니한테 없다고? 그럼 큰딸이 가지고 있을까  큰아들이 가지고 있을까, 전화 한번 해봐야겠다’ 라고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누르려고 한다. 나는 황급히 제지하며 “아니, 통장을 어느 자식이든 갖고 있으면 됐지, 왜 꼭 통장을 찾으려고 해요?” 라고 다소 불퉁한 목소리로 못마땅해 하자 엄마는 “기름값도 많이 들어쌓을 것인디...돈 한 푼 주려고 하지.”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그까짓 밥값, 기름값이 얼마나 된다고 맨날 그러세요” 라고 짜증을 섞어 항의하자 엄마는 ‘혼자 벌어 애 키우느라 힘들 텐데’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부모님 은공이야 이루 헤아릴 수 없음에도 엄마는 당신이 지금껏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것은 잊어버리고 자식이 쬐금 돈 쓰는 것만 기억하는 모양이다.

나는 엄마에게 또 이렇게 경고한다. 

“엄마! 자꾸 그러면 엄마한테 안 올라요!”

엄마의 통장은 사라졌어도 자식에게 주고픈 엄마의 마음은 늘 여전하다.

자식과 식사 한 끼 같이 하는 것도 엄마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일까. 

엄마는 통장을 지니고 있을 때 당당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돈으로 만난 거 사 묵을란다. 내가 돈이 없냐 뭐가 없냐, 같이 맛난 거 사묵자.”

엄마는 지금껏 그래왔듯이 엄마답게 자기가 쏘고 싶은 것이다.

엄마에게 다시 그 통장을 돌려드리고 엄마의 뿌듯함과 기를 살려드리는 게 나을까, 

아니면 엄마의 호소를 한 귀로 흘리고 그냥 통장은 잊어달라고 지겹도록 말하는 이런 상태가 더 나을까...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오는 하늘이 우중충하여 곧 비가내릴 듯한데 내 마음도 갈피를 찾기 어려웠다. 

어쩌면 우리의 조치가 치매로 인해 간수 못한다는 명목 하에 엄마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엄마를 만날 때마다 당신의 유일한 큰소리이고 자랑거리인 통장을 저렇게 찾고 계시니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나도 해명 아닌 해명을 하느라 지쳐가고 엄마도 영문을 모른체 연신 갸우뚱하며 가방만 뒤지고 있는 것을 보니 딱하다.

“아들, 이걸로 맛난 거 사묵자, 내가 돈이 없냐 뭐가 없냐!” 라고 큰소리치는 엄마를 보고 싶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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