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되기-마녀 되기의 갈래에 선 여성들
호러라는 장르에 어머니가 있다면 아마 그것은 마조히즘이오, 아버지가 있다면 사디즘일 테다.
호러는 일종의 포르노 장르이다. 낭자하는 피와 살점,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팔과 다리를 상상해 보라. 한때 피가 돌고 심장이 뛰었을 인간, 자아와 의식을 구축한 인간의 존재는 흐려지고, 오로지 ‘공포’라는 원초적 감각을 자극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끔살당한 고깃덩어리만 남는다. 자극을 목적으로 신체를 도구화한 장르가 포르노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포르노란 말인가?
여성 캐릭터를 조명할 때 호러 영화의 포르노적 면모는 특히 강화된다. 우리는 공포 영화 속의 아름다운 여성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여성만 골라 살해하는 살인마를 주제로 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성스러운 피(1989)>와 톰 튀크베어 감독의 <향수(2006)>와 같은 작품은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에도 가장 뛰어난 공포영화 중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1999)>을 보라. 금발에 늘씬한 몸매, 화사한 미소를 뽐내던 드류 베리모어가 의문의 괴한에게 잔인하게 난자당하는 오프닝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공포 영화 속의 여성 피해자는 관객의 사디즘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서 등장한다. 주류 공포영화에서 최후까지 살아남는 여성은 신성한 처녀여야 했으며 그마저도 대상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최후로 살아남는 여성조차 그저 남성의 시각에서 간주된 ‘구원받을만 한 존재’로서 겨우 목숨만 부지했을 뿐이다.
시간이 흐르며 공포 영화 속의 여성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바로 ‘마녀-여성 가해자-되기’이다. 롭 라이너 감독의 <미저리(1990)>와 앨런 샤피로 감독의 <크러쉬(1993)>,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오디션(1999)>까지, 영화 속 여성들이 가해자의 위치에서 등장했다. 대상에 대한 비이성적인 집착과 함께 감금, 살인을 서슴지 않는 여성들이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특히 오늘날까지 공포영화의 수작으로 회자되는 영화 오디션의 주인공 '아사미'는 전형적인 마녀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그녀는 가해자인 동시에 관객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관능적인 여성이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아오야마 위에 올라탄 아사미의 구도는 다분히 노골적인 BDSM을 표방하며, 공포영화 속 마녀가 가지는 양면성을 잘 보여준다. 공포 영화에서 여성은 마녀라는 새로운 역할을 받았으나 그 또한 성적 대상, 남성에 의한 징치 대상에 머물렀다.
수년 간 공포 영화 속 여성의 캐릭터성은 '희생자-마녀 되기'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들은 작중에서 피해자 혹은 가해자라는 정 반대의 위치를 점유하면서도, 대상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공통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근래의 여성 감독들은 공포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역할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듯 하다. 이들은 영화속에서 줄곧 대상화 되어왔던 여성을 시각의 주체로 옮겨 놓거나, 관객의 사디즘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여성 이미지를 거부한다.
미미 케이브의 <프레쉬(2022)>는 노골적으로 공포 영화 속 대상화 된 여성의 이미지를 거부한다. 영화는 평범한 20대 여성 '노아'가 운명적인 남성 '스티브'를 만나며 시작된다. 연애에 회의적이었던 노아는 다정하고 재치있는 스티브에게 순식간에 빠져들고, 그의 집에 초대받는다. 그러나 완벽한 연인인 줄 알았던 스티브는 사실 여성들을 살해하고 인육을 판매하는 인신매매범이었다. 노아는 스티브의 집 지하에 감금되고 산 채로 살이 잘려나가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기존 공포 영화 속 희생자 여성이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내다가 무력하게 비명을 지르고 살해당하는 역할이었다면, 프레쉬 속 여성들은 모두 각자의 삶이 있는 인간으로 먼저 그려진다. 감독은 연쇄 살인마의 표적이 된 여성들을 끔살하는 연출에 집중하지 않는다. 살해와 고문보다는 여성들의 유대에 주목한다. 노아는 먼저 잡혀온 피해자 '페니'와 위로를 주고받으며, 이 잔인한 납치극에 피해자의 잘못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또한 스티브가 인육과 함께 배송한 여성들의 일상적인 사진과 물건들은, 작중 인육 구매자들의 변태적인 취향을 드러내는 동시에 피해자가 얼마나 평범한 사람이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관객들이 영화 속 살해당한 여성들에게서 사디즘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치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후반부, 노아는 결국 기지를 발휘해 페니, 몰리와 함께 스티브의 집을 탈출한다. 세 여성은 끝까지 총을 들고 위협하는 스티브를 삽으로 내려치며 끈질기게 주어졌던 '희생자 되기' 역할을 거부한다. 이들은 단순히 연쇄 살인마에 의해 희생된 시체가 아니며, 살인을 일삼다가 징치당한 마녀도 아니다. 장르적으로 공포영화는 여성의 신체와 정신을 마음껏 물화하며 오락적 재미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프레쉬의 여성 캐릭터들은 대상화되기를 거부하며 가해자에게서, 나아가 관객들에게서 탈출한다. 때문에 이 영화가 '공포영화의 사생아'인 것이다. 결국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은 숲속에서 노아와 페니, 몰리가 서로를 부축하며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성이자 공포 영화의 오랜 팬으로서 나는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공포라는 장르에서 이분법을 벗어나는 여성 캐릭터를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마녀 되기'를 거부한 공포 영화 몇개를 소개하며 글을 줄이도록 하겠다. 캐린 쿠사마 감독의 <죽여줘, 제니퍼(2007)>에서는 남성들을 유혹하고 살해하는 전형적인 마녀, '제니퍼'가 등장하지만, 영화는 제니퍼와 절친 '니디'의 복잡한 감정선을 조명하여 마녀를 단순히 징치해야 할 대상으로 정의하지는 않는다. 또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개봉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로우(2016)>에서 역시 식인 욕망을 가진 마녀 '쥐스틴'이 등장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그녀를 대상화되지 않는 시선의 주체이자 고뇌하는 인간으로 그린다. 등장 20분 만에 칼에 찔려 죽는 금발 미녀나,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애정결핍 싸이코 여성이 줄비한 정통 공포영화에 질렸다면 한번쯤 시도해보기를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