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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골 샌님 Nov 16. 2024

삶의 마법 I

고.사.리.성으로 간 배송기사단

  서울시내에 마법의 성이 나타났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이 되지 곳, 택배 배송을 시작하며 정확한 주소를 모두 입력하고도 근방에 이르기까지 내비게이션에 잡히지 않은 곳이었다. 배송기사들은 당황하여 “대통령이라도 납신 거야 뭐야? “라며 전파방해 원인을 유추해보곤 했다. 서울인데 공원끝자락 관목이 우거진 황량하고 낯선 곳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라고 내비는 떠들어대지만 택배를 배송할 건물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황량한 곳으로의 배송은 무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말복 무렵부터 택배기사들에게 늦여름의 악몽을 꾸게  했다.  배달 건당 수입이 책정되는 배달기사들의 시간과 기력을 그곳은 버뮤다 삼각지처럼 빨아들였다. 한강으로 흘러가는 개천과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난 데크길로 들어서면  건물 단장만 끝내고 주변 경관은 정비가 덜 되어 잡초와 소나무와 벚나무들이 제멋대로 자라  무성하게  숲을 만들었고 그 뒤로 삼각 지붕과 사각 굴뚝이라기엔 높고 교회 첨답이라기엔 넓고 십자가도 없는 감시 탑이 달린 거무죽죽 빛바랜 붉은 벽돌의 3층 건물이 있다. 이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은 봄에는 흐드러진 꽃나무에 가려, 여름엔 빽빽한 나뭇잎에 가려 건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가을엔 노랗고 빨갛게 단풍 진 나무들과 건물이 수채화 물감이 벌겋게 번지듯 일체가되어 찾기 힘들었고, 겨울이 되어서야 멀리서도 벌거숭이 나무들 사이로 빛바래 거뭇한 3층 붉은 벽돌 건물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곳 이었다. 게다가  가구부터 신선식품까지 모든 물품을 망라하며 일반 택배부터 로켓 배송, 새벽 배송까지 유독 배송이 많은 건물이었다.  그런데 처음  그곳으로 택배배송은  시간 낭비가 심한 곳이라 여겨 배송기사들은 짜증을 내며 건물을 찾아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평온한 마음으로 나오게 되는 묘한 곳이었다.  그곳에 자주 택배 배달을 나가는 기사들이라면 그곳 얽힌 이야깃거리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택배기사들은 그 곳을 마법의 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서울에 이런 알려지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도대체 몇 가구가 사는지 엄청난 배송물량도 놀라운 곳이었다. 서로 다른 택배 업체들 배송기사들이 이곳을 오가며 자주 마주치며  얼굴과 이름을 익히게 되자 없는 시간 쪼개가며 기사들끼리 작당 모의하듯 수수께끼같은 그곳에 대한 정보와 사건 사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덕에  나이 든 택배기사들에게서 군사정권시절 수도 보안 사령부가 있던 자리라 아직 그 여파가 있어 전파가 잘 안 잡힌다는 사실도 기사들 사이에 공유되었다.


  기복은 가을 되며 택배업에 뛰어들었고 마법의 성 근처 구역을 전임자에게 넘겨받았다. 그는 여기저기서 들은 바가 가 많아 머리는 이미 건물 속까지 꿰뚫고 있었지만 막상 도착한 곳에서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유난히 습하고 긴 여름의 여파로 11월 말에도 사람 손을 타지 않고 제멋대로 자란 잡초와 관목이 사람키만큼 무성한 곳에서 3층 벽돌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직 시간 배분에 서툰 기복이 포기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더 캐슬 고.사.리.’란 표지석을 발견했다. 시간이 돈이고 정시 배달이 생명줄인 배송에 시간을 낭비한 그는 고사리란 애들 장난 같은 주택 이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캐슬 고사리? 아주  장난질에 신났네 .’ 그는 택배차에서 끌고 나온 배송물품을 던져버리고 돌아가려 했다. 배송 완료 확인 사진을 찍으려 휴대폰을 표지석과 물품이 모두 화면에 나오도록 각도를 맞출 때 커다랗게 확대된 화면에 들어온 설명글 ‘고.사.리.: 고독과 삶에 대한 사랑으로 해방된 성’이란 작은 글귀를 보았다. 고독, 사랑, 리버레이션(해방) 이 세 단어가 기복의 화를 더욱 돋웠다.

 “사는 게 재밌지? 당신들 리버레이션인지 해방 놀음에 시간과 에네지를 잃은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지.”

열이 뻗친 기복은  혼잣말을 끝에 표지석에 가래침을 켁하고 뱉어버렸다. 그런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그가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아씨, 뭐야? 소리도 없이. 사람이야 귀신이야?”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허리에 모자와 같은 베이지 색 벨트를 한 감색 니트 원피스를 입은 마른 여자가 마스크를 쓴 채로 말했다.  

“저기 바로 나무들 뒤가 건물이고 그 앞까지 차 들어가는데 여기다 물건을 내려놓고 가시면…… 여기 저를 비롯해 몸 불편하신 분들 많이 계신데 그러시면 배달시키는 의미가 없잖아요.”

어눌한 발음으로 까칠하게 말하는 여자와 기복은 까짓것 벌점을 받더라도 한판 붙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를 불러 세우려 고개를 돌려 여자를 쏘아보았다. 그런데 그의 말문이 막혔다. 건물을 향해 천천히 걷는 여자의 걸음걸이가 뒤뚱뒤뚱 불안정했다. 유난히 왼쪽으로 기울어진 어깨 밑으로 철사처럼 가는 팔이 흐느적거렸다. 조금 더 구부정한 자세지만 기복의 뇌리에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어머니의 걸음이 떠올랐다. 그의 눈에 흐느적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과 뇌리 속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넋이 빠진 그가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고 중얼거렸다.

“젊은 여자가 참……. 안 됐네.”


 마음을 누그러뜨린 기복이 택배차에서 대형 카트를 꺼내 물건을 주섬주섬 실고 여자가 들어간 고사리 성으로 들어섰다. 우편마비가 있는 여자는 이미 집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건물로 들어서자 현관 맞은편 통창으로 보이는 한강 전경에 눈이 시원했다. 그는 사실 명세서에 적힌 오래된 건물 3층으로의 생수 배달이 알차로 그의 화를 돋웠지만 고사리 성에는 엘리베이터가 존재했고 계단이 중앙에 위치하면서 양분되어 계단 쪽의 폭이 좁은 대신 휠체어가  다닐 경사로는  완만한 나선형으로 굽이쳐 올라가고 있었다. 손질이 안된 정원 탓에 외부에서 볼 때 귀곡 산장을 연상시키면서 내부에서 호러 장르물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상상과 달리, 심지어 흔한 다세대주택이나 아파트 입구와 달리, 1층 로비에는 ‘모두의 부엌’이라 쓰인 곳과 ‘모두의 서재’란 공용공간이 호텔 로비를 연상시켰다. 부엌과 거실 모두 ‘누구나 이용가능’이란 푯말이 노란 A3용지에 인쇄되어 붙어 있었고 그 밑으로 A4용지에는 “택배기사님! 함숨 돌리고 편히 드세요”라고 붙어 있었다. 커다란 공용탁자 위에는 라면, 커피믹스, 캔음료, 빵, 초코파이등 간식이 즐비했다. 부엌에는 냉장고와 전기포트와 마이크로 웨이브도에 전기레인지까지 갖춰져 있었다. 3층에 생수를 배달하고 1층 102호에서 시킨  식료품을 보냉백에 담아두고 나오다 신기한 놀이방에 들어온 어린애처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로비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기복을 여자가 불렀다.

“저기요, 기사님.” 아까 그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 네.” 는 수업증 딴짓하다 걸린 학생처럼 흠칫했다.

“저기, 기사님, 아이스커피인데 드세요.” 조금 전 표지석 앞에서 마주친 여자가 빨대와 일회용 카페잔에 담긴 아이스커피와 초콜릿 봉지를 내밀었다. 그는 다소곳이 커피와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감사합니다.”가 밖에서 볼 때 젊은 여자라고 생각했던 여자는 여전히 페도라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했고 살점 없는 피부는 퍼석퍼석해 보였다.

 시간이 많이 지체된 기복은 다음 행선지로 이동을 위해 차에 오르려다 커피 향의 유혹에 잠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여유를 부려보기로 했다. 한 모금씩 넘길 때마다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씩 밀려내려 가는 것이 느껴질 만큼 차갑고 향이 좋은 커피가 그의 몸과 마음에 여유를 가져왔다.

 마음의 여유는 황량해 보인 곳이 콘크리트건물들의 삭막함에 지친 그에게 자연의 공기를 선사했다.  가을 정취를 잊었던 그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편에 그가 침을 뱉었던 표지석에 누렇게 뜬 나뭇잎이 떨어져 붙어 있었다. 살랑살랑한 가을바람이라고는 하나 해 질 녘 찬기운을 몰고 부는 바람은 나뭇잎들이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날릴 만큼 강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표지석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은 필시 그가 뱉은 침이 접착제 역할을 하고 듯했다. 기복은 커피 잔을 감싼 냅킨으로 표지석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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