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돈이 많으면 불안해. 그래서 필요한 사람과 나눠 쓰려고 해..”
내게 상당히 신선한 소리였다. 으레 돈이 생기면 저축을 해야 한다거나 그동안 미뤘던 일이나 물건에 돈을 쓰려하기 마련인데 그 돈을 다른 사람과 나눌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라니. 그렇다고 그녀가 재벌도 자선사업가도 아니다. 그런데 돈뿐만이 아니라 노동력도 주변에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아낌없이 부조를 하거나 조건 없이 빌려준다. 그런 그녀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내게 부연하듯 말했다.
“나는 없이 사는 데 익숙해서인지 여유 돈이 생기면 불안해.”
찡긋 웃는 얼굴이 평화롭다. 가진 자의 여유라고 하기보다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본 사회에서 돈은 자유와 최대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돈이 있으면 삶이 여유로워지니 마음 씀씀이도 여유로워지면 좋겠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빌려달라고 하거나 기부할 곳이 생기거나 할까 더 전전긍긍한다. 심지어 더 매몰차게 돈 없는 사람을 하시하며 각박하게 군다. 나는 돈이 악의 근원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그래서 돈을 추구하는 삶을 지양하고 명예를 추구하며 살고자 했다. 그러서인가 명예를 얻지 못한 삶이 여러모로 곤궁했다. 돈을 무시하니 돈도 나를 무시한 듯하다. 가난하게 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내가 무능하다는 생각에 괴로운 게 사실이다.
종종 가난은 사람이 부지런히 일을 하지 않는 게으름 때문이라고 단언 사람이 있다.
물론 가족 등골 빼며 정말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람도 분명 많다. 하지만 건강이 담보된다면 부단히 노력하면 굶지 않고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진정 삶을 향유하는 느낌을 받기는 어렵다. 먹고사는데 급급하니 삶의 질이 바닥이다. 가난과 게으름과 실패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인식은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세계 최하위의 못 사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 생겨난 인식일 거다. 또 어쩌면 격변기의 이 나라 상황 위에서 줄타기 잘하며 부자가 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허울을 가리려 만든 이데올로기일지도 모른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많은 세상이다.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출생부터 박탁감 속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맞닥뜨릴 학교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고 사회는 불평등한 계층구조로 수저계급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회이다. 이런 근간에는 평등의 개념이 사라져서 인듯하다.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이라 교육받았는데 어느새 평등이 자취를 감췄다. 아니 대부분이 평등 보다 내가 우선권이 있기를 바라며 기득권을 갖기 위해 어머어마한 노력을 퍼붓는 경쟁사회로 가속화되며 평등을 폐기한듯하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절대 못 참는 사회가 농담이 아닌 현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복지 정책이 잘 사행되면 일정 부분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올해 유난히 몸이 힘들다. 그동안 암과 싸우며 잘 버텨준 몸이 기진맥진했는지 진통제도 제 역할을 못하는 지경이라 내 앞날에 덜컥 겁이 났다. 결혼과 관계없이 비혼으로, 이혼으로, 자식들이 떠난 노인이 되어서, 배우자와의 사별하여서, 어쨌든 혼자 사는 사람은 국가적 요양보험 혜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인데 우리나라의 현실이 아직 가까운 일본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얼마 전 수술을 받고 퇴원 후 기력이 떨어져 간병인을 구하다 보니 아직 젊다는 이유로 요양 서비스도 안되고 간병협회 같은 곳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여도 단기간이라 거절당하고 나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방문요양 관련하여 상담차 방문한 사람이 아주 친절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몸을 안 움직이니 더 나빠지죠. 운동하세요." 같이 온 다른 분이 아픈데 어떻게 운동하냐며 서둘러 떠났다. 젊은 분이고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 아니고 4기 암환자 치고 목소리가 쾌활해 보인다며 말하는 폼이 나를 꾀병환자 취급하나 싶어 한동안 몹시 기분이 얹잖았다. 누워서 뒤척이다 든 생각이 내가 돈 많아 가사도우미라도 고민 없이 구하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해 이런 일 겼는다 자학이다, 내가 여태 국가에 세금 내는 게 복지 정책에 대한 것도 큰데 암환자 장애인인 내가 왜 이런 게으른 사람 취급을 받나 등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모든 건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며 결국 문제는 나도 국가도 돈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쓰는지 몰라 갈팡질팡 기로서 있으니 생긴 문제라고 까지 생각이 확장되었다.
돈은 축적하여 쌓아 두는 의미라 아니라 나누는 것이다. 초기 인간이 한계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물물 교환을 시작했고, 지능이 높은 인간은 좀 더 편리하게 살 방법을 찾다 보니 화폐로 대체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돈이 생긴 이유가 원활한 의사소통과 편리한 거래를 위해 생긴 것이 아닌던가. 그런데 나눈다는 개념이 사라지고 독점되며 이 사단이 생긴 게 아니 던가.
나도 세금을 내며 국민의 의미를 다하고 선진국의 문턱에서 갈팡질팡하더라도 국가가 부의 재분재 차원으로 정책을 잡으면 이 땅의 모두가 좀 더 살만하다 느끼지 않을까. 사회복지사가 내게 "장애인 같아 보이지 않는데 중증 게다가 이중 장애시네요 근데 현재 복지정책하에서 아직 젊고 보정기구를 써야 하는 장애인 아니라 딱 해드릴 게 없다." 란 요지의 말에 문득 우리가 평등의 개념을 너무 등한시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토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