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어때? 알아봤는데 너네 집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더라.”
내 얼굴 한번 보겠다고 집 앞까지 친구가 찾아오니 반갑기도 하고 오전 11시 반이니 브런치 먹기에도 걸맞은 시간이었다.
“너 살이 왜 이렇게 많이 빠졌어. 깜짝 놀랐다.”
살이 빠졌다는 소리가 그 어떤 소리보다 듣기 좋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 들어서는 살 빠졌단 소리가 위험 경고음처럼 두렵다. 올초부터 밥 먹는 것이 고역이 됐다. 먹는 게 살기 위해 하는 일이 되었다. 내게 이런 날들이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낯선 일이다. 뜬금없지만 이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봐야 한다.
브런치 카페의 분위기도 좋았고 메뉴도 다양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턱뼈에 문제가 생긴 내가 먹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어서 단호박수프를 주문했다.
"그렇게 먹어서 기운 나니? 안 되겠다. 너 먹기 싫어도 그냥 삼키기라도 해."
친구가 오믈렛과 샐러드를 추가 주문했다. 갑자기 십여 킬로가 빠져 그런지 병색이 완연한 환자 티가 났나 보다.
벌써 2년 넘게 표적항암제를 복용하며 데노스맙이란 뼈 주사를 한 달에 한번 맞았다. 덕분에 경추 뼈의 암은 크기가 줄고 비활성화되었다. 물론 치료 효과만큼 부작용도 하나 둘 찾아왔다. 그래도 웬만한 건 관리가 되었다. 이번엔 뼈가 녹아내리고 있다. 표적 치료 대상인 암이 경추에 있어 그런지 가장 가까운 턱뼈가 직격탄을 맞았다. 인생이 아이러니인지 작용 반작용의 법칙인지, 뼈를 강화하고 암세포가 뼈에서 활동을 못하도록, 뼈 밀도룰 높여 제압하도록 매달 맞아 온 뼈주사 데노스맙 부작용이다.
뼈를 깎는 고통이란 말이 은유가 아닌 실제 경험이 되었다. 턱뼈가 녹아내리며 잇몸뼈에도 영향을 주다 보니 음식물 섭취가 고통이 되었다. 게다가 진통제도의 수위가 점점 올라가니 진정효과만큼 부작용도 심해졌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통증과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낯선 증상들. 119를 불러 병원으로 향하는 아득한 무력감. 암도 잘 관리하면 사는데 지장 없을 거란 자신감에 암은 비정하고 냉정하게 그 위세와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안 되는 누워 있는 나날들이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다.
그래도 친구가 찾아온 날은 아이알코돈 진통제로 아픔을 달래고 꽃 피고 햇살 눈부신 날, 광합성이 생명력을 줄거라 생각했다. 브런치로 나온 음식들은 정갈하고 보기에 좋았다. 수프를 떠먹는 내게 친구가 리코타치즈 샐러드 접시를 앞에 놓았다.
"치즈가 단백질 많고 채소도 다 물렁하니 대충 우물우물 넘겨도 될 거 같아. 그깟 멀건 수프에 별 영양가나 있겠니? "
치즈를 우물우물 넘겼다. 그리고 빨간 방울토마토에 눈길이 갔고 침샘을 자극했다. 포크로 콕 찍어 입에 넣었다. 나도 모르게 우적 씹었다. 찌릿, 칼로 도려내는듯한 아픔이 턱관절을 타고 눈물샘을 자극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뱉어낼까. 삼킬까. 그냥 삼키기엔 덩어리가 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고민했다. 눈치 빠른 친구는 어쩔 줄 몰라하며 냅킨을 한 뭉텅이 집어 내게 건네며 뱉으라고 했다. 토마토는 목구멍에 걸린 채 식도를 타고 잘 내려가지 못했다. 결국 식탁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뱉어냈다.
“이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다.”
“아니야, 먹은 건 난데. 이젠 될 거 안될 거 구분도 안된다..”
빨갛고 탐스러워 보여 욕심이 난 토마토가 현재의 내겐 사치가 됐다.
지극히 일상적인 음식이었던 토마토가 그랬듯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는 것도 무너진 신체의 고통 속에선 사치였다. 평균 열흘에 한번 꼴로 한 2년 동안 글을 올리고,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의 글도 될 수 있으면 바로 읽어보곤 했다. 사실 휴일 느지막이 일어나 한 끼 때우자는 심정으로 간장에 밥을 비벼 먹는 건 '아점'이라 하지 브런치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은, 친구들과 만나려 과하지 않지만 신경 쓴 옷차림으로 외출해 보기 좋은 서구식 식사를 가볍게 즐기기는 것과 같이, 글 좀 쓴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 글도 선보이고 반응도 살피면서 출판의 기회도 엿보는 일상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나는 브런치를 뒤죽박죽 이 생각 저 생각이 난립하는 머릿속을 비우며 정리해 보는 글쓰기 워밍업의 장으로 활용하였고. 또한 브런치를 통해 다른 작가들 글을 읽으며 공감을 하고 자극을 받기도 하며 현재 글쓰기 동정을 살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짧고 편한 글이라는 선입견이 강해선지 브런치에조차 글 하나 못 올리는 나는 무능력자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계속 글을 올릴 시도를 하곤 했다. 그런데 반쯤 쓰다 보면 찌릿찌릿 찾아오는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손을 놓아 버렸다. 처음 한두 달은 누워서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의 글을 읽고 , 공책에 생각나는 것들을 끄적여보기도 하고, 누워서 태블릿으로 글을 써보기도 했지만 통증에, 또 약기운에 취해 널브러지기 일쑤였다. 이때는 글쓰기조차 못하면 내 삶이 너무너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심하게 작동했다. 물론 요즘은 살아있는 존재 자체로 내 삶의 의미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는다. 그럴 기운도 없고.
뼈 주사의 약기운이 빠지는 기간은 사람에 따라 3개월, 6개월, 일 년 단위로 보고 수술과 처치를 하는데, 4기 암환자인 내 경우 일 년 이상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감수해야 할 듯하다고 한다. 9월 초 의사가 아픈 걸 참으면 신경과 근육도 망가진다며 진통제를 최소화하려 진빼지 말자고 결단을 내리며, 마약성 진통제인 아이알코돈을 최대치로 처방을 해줬다. 덕분에 아직 외출에는 무리가 있지만 집안에서는 견딜만해졌다. 몸이 살만하니 글쓰기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유롭게 분량구애 없이 글쓰기를 할 곳이 브런치라 한입 먹기 시작했다. 이젠 토마토를 통째로 우적 씹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내 생각과 일상을 잘게 잘라먹기 좋게 조리해보려 한다. 욕심 같아선 다음 달 출판프로젝트에 출품도 하고 싶다. 어차피 몸이 따라줘야 가능하니 우선 잘 먹어야겠지만.
오늘 브런치로 작게 한 입만 먹어보려 했는데 오랜만에 밤새 누웠다 일어났다 쓴 글이라 브란치가 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