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교생 Jun 20. 2023

전하지 못한 마음

<원이 엄마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며

글 쓰는 일이 참 쉬워진 세상이다. 나부터가 두세 개의 SNS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보면 과거 '문학소녀, 문학소년'으로 불렸을 법한 녀석들이 웹소설 작가로 등단하기 위해 여기저기 투고를 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나도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을 내는 것이 소원이거늘, 재능이 충만한 녀석들을 보다 보면 어쩌면 나보다도 더 빨리 책을 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이 늘상 쉬웠던 것은 아니다.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글을 쓴다는 것은 꽤나 먹물을 먹었다는 뜻이고, 제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 하나의 글로 다듬는 일은 대단히 수준 높은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글을 깨우쳤다'는 말은 예로부터 수많은 한자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문식력을 갖추었다는 뜻이었으며, 정전에 쓰인 글을 반복해서 읽고 논하며 그 의미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을 선비의 업으로 삼았다.


우리 문학사를 살펴보면 글쓰기가 대중화되는 시점을 대략 조선 후기로 추정하고 있다. 다음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서 나타난 수필의 대중화에 대한 설명인데, 일반 대중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거의 이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국문이 대중화되고 인쇄술이 발달하며 덩달아 종이의 생산이 늘어난 까닭이다.


한철우 외, 고등학교 문학, 비상. p.199

임용을 준비하고, 현장에 나와 수업을 진행하며 꽤나 많은 고전 수필들을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양아록>과 같이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연을 담은 따뜻한 수필도 있었고, <의로운 거위 이야기>처럼 동물을 관찰하며 인간이 갖추어야 할 도리에 대하여 깊이 통찰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러나 많고 많은 수필들 중에서 해가 지날수록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것이 있다. 바로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작품인데, 400여 년 전 쓰인 작품이건만 그 내용을 읽다 보면 곧 옆에서 통곡하는 여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당신 늘 나에게 말하기를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중략)

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도 끝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138725&cid=59560&categoryId=59560


1586년 6월 1일에 작성된 이 편지는 남편을 떠나보내며 아내가 관 속에 든 제 지아비의 품에 넣어주었던 것이다. 그가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을 때, 고작 서른한 살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였을 때 젊은 선비는 숨을 거두었고, 어린 아들 하나와 뱃속에 아이가 든 여인은 과부가 되었다.


내가 만년필과 펜글씨에 오래 빠져 지냈던 관계로 글의 필획을 들여다볼 때 글을 쓰는 자의 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가늠하곤 한다. 출토된 편지의 글씨는 흔들리지만 담담하고 가냘프지만 유순하다. 아마 거진 대부분의 울음은 다 울어내고 파리한 모습으로 붓을 잡지 않았을까. 어쩌면, 염을 마치고 지아비의 발인이 다가오는 날 새벽에 방 한 켠에서 급히 쓰지는 않았을까 싶다. 400년을 꽉 채우고도 몇 년이 더 지난 1998년 4월, 세기를 거슬러 이 글이 빛을 볼 때까지 편지는 썩지도 않고 남아 있었다. 아마, 편지의 곳곳엔 원이 엄마의 자취가 여태 남아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주인공인 이응태도, 그를 사랑했던 여인도, 그의 아들과 뱃속에 있었던 아이까지도 이 땅에서 사라진 지 까마득하지만 그녀가 울어냈던 울음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편지의 옆에는 원이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빚어낸 미투리가 함께 놓여있었다고 한다. 아픈 남편의 쾌유를 빌며 손수 제 머리를 끊어 내어 신발을 삼고 있는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 여인이 제 머리를 끊어낼 만큼 제 아낙을 사랑했던 이응태는 어떤 사내였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각난 흔적을 가지고 그네들의 삶을 더듬어보는 것이 전부라 진실은 우리의 추측과 다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한번 창작이 끝난 후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작가의 창작 의도와는 별개로 독자들의 해석에 의해 독립된 의미를 획득하듯이 그네들이 남겼던 400년 전의 사랑도 지금의 우리에겐 새로운 의미를 삼아줄지 모른다. 남편에게 미쳐 신겨주지 못한 채 같이 무덤 속에 묻은 미투리는 아낙의 삶에선 비극이었으나, 후대의 눈에선 그들을 추억할 영원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생이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써 가치를 가진다면, 아낙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지아비는 제 아낙과 함께 수세기에 걸쳐 누군가에게 기억되며 영원히 서로가 사랑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현생에서의 비극이 저승에서의 영원으로 맺어졌다면, 아낙은 상실로 가득찼던 제 삶을 두고서 웃음을 지었을까, 울음을 뱉었을까. 


고전을 읽다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전이 그러했듯 지금도 그러하고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기에도 하루가 짧고 한달이 짧다. 벌써 유월도 끝나간다. 2023년의 절반이 지났다니. 나는 미투리 하나도 엮지 못했는데, 이거 낭패다.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아이, 고등학교 생활 챙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