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년교생 Aug 22. 2023

글과 소통, 다시

글쓰기가 내게 갖는 의미

01. 글

임용 전부터 꾸준히 취미를 주제로 블로그 하나를 운영해 왔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시험이든, 아마 고부담 시험을 준비했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사람은 고시생활이 길어질수록 소통이 절실해진다.



02. 소통

만성적인 소통 부족에 시달리던 나는 나의 부족분을 블로그로 해소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만년필에 한참 빠져 있을 때였다. 답안 작성에 어떤 펜을 쓰면 좋을까가 취미의 시작이었지 싶다. 여러 볼펜을 전전하다가 만년필을 처음 잡아봤을 때, 닙이 지면 위를 지치고 나가는 느낌부터 보기에도 오묘하고 아름다운 펜의 모습까지, 만년필은 20대의 내 마음을 쥐고 흔들기에 충분했다.


펜도 참 많이 모았다. 모았다가 내보내기도 했는데, 나는 내가 한 번 돈을 주고 산 물건은 다시 돈을 받고 팔지 않았다. 대부분 내보낸 펜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무상으로 건넨 것이었다. 건네주는 것들은 대부분 펜의 어딘가 한 구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손이 가지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그렇게 손을 떠나보내고 나면 괜히 다시 그리워져 같은 펜을 여러 번 사는 짓도 했었다. 고시생에게 만년필은 비싼 물건이었지만, 적디적은 용돈을 쪼개고, 심지어 끼니를 거르면서까지 모은 돈으로 나는 펜을 샀다. 그때의 내게 펜이란 고독하고 암담한 고시생활을 헤쳐나갈 수 있게 힘을 주는 등불 같은 것이었다. 10만 원짜리 펜 하나를 사기 위해 두세 달을 참아가며 3만 원씩 모은 후, 내 손에 들어온 펜 하나를 보고 있으면 그 펜을 쓰고 싶어서 더 책을 펴 들고 답안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런 거룩한 소소함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기록을 시작했다. 그것이 내 블로그의 시작이었다.


따지고 보면, 블로그 쓰기의 역사가 깊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한참 싸이월드가 열풍이던 때였다. 그때부터 일기장에 매일 그날의 감정을 적어내려 갔다. 한참 사춘기시절이었으니 쓰고 싶은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때의 일기장 쓰기는 내게 글쓰기의 근력을 키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아가서는 글 자체를 '만만하고 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많은 용기를 불어주었다. 나는 수능에서도 비문학 지문을 푸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이런 나의 취향을 들으면 주변에서는 글변태라고들 불렀다.



03. 다시

그러나 이리 유구한 역사를 지닌 블로그 쓰기가 한동안은 뜸했었다. 일을 시작한 후로 만년필을 쓸 일이 줄어들어 펜에 대한 애착이 사그라든 것도 있겠고, 브런치다 뭐다 여러 가지로 호기심이 생겨 다양한 플랫폼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네이버 블로그는 자연 방치가 된 것이었다. 그래도 만년필을 주제로 글을 쓴 블로그가 많지 않아서인지 조회수는 꾸준히 나왔었다. 지나가며 한 둘씩이라도 보고들 가시는데, 가끔 댓글도 달아주시곤 했다. 그나마도 답은 거의 못했었다. 블로그 자체를 켜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랬던 내가 최근 블로그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고 있다. 브런치는 오히려 뜸해졌는데, 그래도 일부러라도 와서 써야지. 플랫폼별로 글쓰기의 주제도 나누어야지 싶다. 네이버 블로그는 완전히 취미에 대한 것들만 쓰기로 하고, 브런치와 하나 정도는 병행하여 학교일과 수업 자료를 올려두는 용으로 써볼까 한다. 수업 자료를 올려두려면 문학 작품별로 분석 내용을 정리하여 방대한 글을 업로드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브런치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당장엔 티스토리가 떠오르는데, 어떤 플랫폼을 써야 할지는 조금 더 찾아보고 결정해야지 싶다.



이제 내 나이도 서른을 넘어섰다. 서른 번의 사계를 뒤집어보니 내 생의 절반 이상은 글쓰기와 함께 보냈었다. 때로는 시였고, 때로는 소설이었다. 때로는 수필이었고, 때로는 장르를 알 수 없는 글이었다. 늘 글을 곁에 두고 살았는데, 살다가 마음이 약해질 때면, 나는 과거의 내가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나의 문장은 그 당시에 빠져있던 누군가의 문체를 놀랍도록 닮아 있었으며, <남한산성>과 <현의 노래>를 읽을 무렵 나의 문장은 작가 김훈의 말씨가 배어 있었다. 나는 타인의 향이 배어있는 나의 문장들을 읽으며 용기를 얻기도, 한을 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위로를 느끼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위로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나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을 비축하고 꺼내어 쓰는 것. 글쓰기가 내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리 답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하지 못한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