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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년교생 Aug 23. 2023

생각이 말로 일어나는 마법

처음 들어 보셨죠? 어서오세요. 인지언어학입니다.

1. 말이 가진 허술함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산다. 아침에 자신을 시끄럽게 깨우는 자명종을 끄며 내뱉는 투덜거림에서 출근길 저렴한 커피집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사기 위해 건네는 한 마디, 점심시간 메뉴판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두리번거리며 동료와 나누는 잡담까지.


이 많은 말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당신은 매번 입을 열 때마다 수만가지의 단어들을 정련된 문법 규칙에 따라 조합하여 완성된 문장으로 내뱉는다. 아주 똑똑한 당신은, 때로는 맥락에 기대어서 몇 개의 구(복수의 단어가 이어진 말덩이)나 단어만으로 소통을 하기도 한다. 사회적 동물이라고도 불리는 인간의 특성을 한껏 살려내고 있는 당신은, 문법적 규칙에 기대지 않아도 충분히 소통할 줄 안다. 심지어, 본 적도 없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도 손짓 발짓과 더듬거림으로 소통을 한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상대방과 소통이라니. 당신은 아주 훌륭한 교섭가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인류가 빚어낸 훌륭한 예술작품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당신이건만, 그 말 속에는 사실 엄청난 구멍들이 있다. 다음의 문장을 보고 머리 속으로 상황을 그려보자.


냄비가 끓고 있어요.


냄비가 끓고 있단다. 당신의 머리 속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 아마, 냄비 안에 들어 있는 찌개나 라면과 같은 내용물이 보글보글 김을 내며 끓고 있느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냄비가 끓고 있다고 한다. '끓다'의 주체는 '냄비'이다. 그렇다면 냄비의 양은을 녹일 수 있는 수천도까지 온도가 치솟아 냄비를 주조한 쇳물이 녹아내리고 있어야 맞는 것이 아닐까? 중고등학교 때, 국어든 영어든 언어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들어봤다면, 말에서 '주어'와 '서술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얼핏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문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서술어 '끓다'의 영향을 받을 '주어'가 잘못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통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다.



2. 언어와 사고의 관련성


흔히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뱉는 어휘나 말씨를 보라는 말도 있다. 동양에서는 과거부터 인재를 판단할 때 신언서판을 보았다. 몸가짐과 예의, 즉 신수에 이어 그 사람의 말을 중시한 것이다. 서양이라고 다르겠는가. 영국에서는 억양에 따라 사람의 신분을 추측한다. 상류층의 포쉬 잉글리시(Posh English)를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느냐는 그 사람의 바탕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련된 말을 하는 것은 취향을 넘어서 예의이자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한 자격의 문제였다. 적절한 말을 구사할 줄 아는 것은 그 사람의 수준, 나아가서 사고의 경향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과 생각, 언어와 사고 중에서는 무엇이 더 중요할까? 우선 20세기 초반에 대두된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사고의 패턴이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 가설은 사고가 언어에 종속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이 쓰는 언어를 통해서 그 사람의 인지패턴을 추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의 '푸르다'는 말은 실제로 파란색과 초록색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우리가 '푸르다'를 사용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숲과 대응되는 초록색에 대하여서도 '푸른 숲'이라는 말을 쓰고, 바다와 대응되는 파란색에 대하여서도 '푸른 바다'라고 말한다. '푸르다'와 묶이는 대상들은 대게 '맑다', '시원하다', '깨끗하다'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어 화자들은 숲과 바다에서 비슷한 청명함을 느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일면 그럴듯해 보이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은 시간이 지나며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차이로 인해 의견이 분분하게 된다. 단적으로 앞에서 예를 들었던 '냄비가 끓는다'의 경우, 이런 표현을 쓴다고 하여 한국인이 항상 용기(냄비)와 내용물(찌개)를 혼동하는 집단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학계에 인지주의(Cognitivism)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며 언어학에서도 말보다 인간의 사고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냐는 입장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3. 어떻게 생각이 말로 일어날 수 있을까


인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언어학의 한 분파를 우리는 인지언어학(Cognitive Linguistics)이라고 부른다. 보편주의 문법의 거물인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입장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 새로운 분파에서는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말로 표현되는가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다.


앞서 냄비가 끓는 예시는 인접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전이되는 환유(Metonymy)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용기(냄비)와 내용물(찌개)가 인접하여 있으니 용기를 가리키면 자연히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을 가리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세상사 배경지식도 함께 사용된다. 냄비란 일반적으로 내용물을 담도록 설계된 도구이니 당연히 냄비가 끓는다면 주조된 쇳물이 녹아내리기 전에 그 안의 내용물이 끓고 있을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말은 생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오히려, 의도하는 바의 극히 일부만을 문자나 기호에 실어 전달하고 상대방은 그 일부의 단서만을 가지고 전체 맥락을 이해한다. 어찌보면 이심전심의 소통이 아닐 수 없다. 사상이나 배경이 다른 사람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 까닭은 이러한 이심전심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극히 일부의 단서를 통해 말로 빚어지고, 사람들은 그 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기호에서 전체의 의미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오늘도 법원에서는 온갖 사건들에 관한 법조항을 두고 양측이 치열하게 다툴 것이다. 그 다툼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법조항이라는 '말'이 가진 '엄밀하지 못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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