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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스혜영 Aug 03. 2023

똥 보듯 피했던 자전거

6살 아들이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운다. 아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안장 뒤꽁무니를 꼭 잡고 같이 달렸다. 일자로 시작했다가도 휙 꺾여서 수풀에 넘어지기도 하고 어쩔 땐 나랑 섞여서 고꾸라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자전거는 매번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라고 아들을 다독였다. 



열 살이었을까. 자전거를 타러 사직운동장에 갔었던 때가 생각난다. 김범룡의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없는 그대의 이름을 애달프게 부르며 자전거를 탔었다. 대여 시간은 단 한 시간. 바퀴에 불이 나도록 운동장을 돌고 또 돌았다. 이제는 30년도 지난 옛이야기지만 자전거는 몸이 기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주말이 되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러 공원에 갔다. “엄마도 한때는 자전거를 탔었지” 까치발을 하고 간신히 딸의 자전거에 앉았다. 꽤 높았다.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페달을 밟았다. 딱 세 바퀴 돌렸나. 숫자 삼을 그리다가 숲 속으로 나동그라졌다. 딸은 괜찮냐고 다가왔지만 웃음을 멈추기 어려워 보였다. 나도 기가 막혀서 헛웃음만 나왔다. 청바지에 길게 구멍이 났고 그 사이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울고 싶었다. 자전거는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똥 보듯 피했다. 자전거 여행을 떠나자는 남편과 아이들의 말에도 콧방귀만 뀌었다. 그러던 내가 자전거를 배우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며칠 전 일주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다. 그 친구가 74살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서른 살 만큼 연습시간이 남아 있었다. 


발은 자기의 할 일을 알아요. 앞만 보세요.


나는 넘어져서 다치는 게 두려웠다. 넘어지면서 배울 수 있는 아들의 나이가 아니라서 한번 고꾸라지면 무릎에 금이 갈까 봐 두려웠다. 한 손에는 폰을 들고 물 마시듯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쳐다보는 시선이 두려웠다. 어쩌면 나는 마음 근육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독하게 먹고 열두 살 딸과 자전거 수업을 시작했다. '발은 자기의 할 일을 알아요. 앞만 보세요!' 딸의 말을 주문처럼 내뱉었다. 까치발을 하고 삼각의자에 앉았다. 파도를 몇 번이나 그리면서 불안 불안하게 시작했다. 천천히 중심을 잡았다.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을 지나칠 때면 사고라도 날까 봐 가슴이 튀어나올 듯 철렁거렸다. 그래도 앞만 봤다. 딸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앞이 선명하게 보였다. 머리카락에서 발뒤꿈치까지 쉬이 쉬이 바람이 불어온다. 잘했다고 와락 안아주는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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