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견해로 기독교의 성경과 염세주의는 공통분모를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상 모두 세상과 인류에 대해 기본적으로 매우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썩을 대로 썩었으며 회복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는 식의 심히 부정적이고 신랄한 묘사가 가득하다. 긍정적인 묘사는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야고보서 1:15'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5:12'
'이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찬 통로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들은 그 길을 오고 가는 순례자에 불과한 것이다. - 제프리 초서, <캔터베리 이야기> 中'
'우리는 이 세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세상을 떠날 때도 어리석고 악한 채로 떠날 것이다. - 볼테르'
염세주의는 서적을 통해서만 간접 체험할 수 있는 미지의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다. 당신이 초긍정적인 낙관주의자가 아니라면, 충분히 오감으로 겪고도 남는다. 물론 여기에 집안 내력, 경제력, 학력, 능력 등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에 따라 정도와 공감하고 이해하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사람이 염세주의자가 되는, 혹은 유사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하는 것에는 간략한 예시로, 본인은 직장 생활 가운데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청렴하게 일을 해왔지만, 결국 승진은 일을 대충 하지만 윗사람들과 연줄이 있는 사람이 하는 바람에 세상 앞에 좌절하여 비관론자가 되는 식의 사례가 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성경과 염세주의의 가치관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지만, 이후 각자의 해결책과 결론이 결정적으로 차이가 난다.
염세주의 사상 대부분의 결론은 추악한 세상과 인류 앞에선 무엇을 하든 허무하고 무의미하므로 이에 대해 체념한 채 끝까지 사회를 원망하고 저주하며 살던가, 혹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될 대로 즐기면서 살자'며 방종에 빠지게 된다(단,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사상 경우, 그는 추악한 세상 가운데서도 조금이나마 지혜롭게 살고자 했던 의지와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찾고 싶어 했던 흔적이 보여 일반적인 염세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반면, 성경은 이에 대한 분명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얻으라는 것. 그의 하나님의 독생자 되심과 여러 기적들과 사망 이후 부활까지, 다소 믿기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내용이지만, 모두 받아들이고 그를 닮아가는 삶을 살기 시작하면 영혼의 자유를 얻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도출해 낼 수 있는 우리 인생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세상과 인류의 추악함으로 인해 겪게 되는 여러 고난과 고통을 놓고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 저주받은 땅을 살아갈 두 가지 방법은, 죽을 때까지 저주하고 이를 갈며 살든가, 혹은 속는 셈 치고 성경이 제시한 길을 따라가 보든가.
'죄의 보답은 사랑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로마서 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