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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비행기

항공, 비행, 여행

by 미스터 엔지니어


평소처럼 항공기 출발 지원을 위해 지정된 게이트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메카닉이 보딩 브리지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항공기는 괜찮지?”

“예! 이상 없습니다. 오늘 손님들이 그리 많지는 않네요.”


기내로 들어섰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르다. 익숙한 사무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손님들은 자유롭게 기내를 거닐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보딩 브리지로 나와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마치 출발 직전의 긴장보다는 소풍을 앞둔 들뜬 표정들.

그 항공기는 B777. 그러나 내가 알던 구조가 아니었다. 비즈니스 전용기로 개조된 듯, 널찍한 소파와 테이블, 차려진 음식과 와인을 즐기는 이들이 보였다. 몇몇은 낯이 익었다. 내게 조용히 눈인사를 보내며 잔을 들었다.


그 순간, 내 휴대폰이 울렸다. 조종석에서 내비게이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함께 있던 에비오닉 엔지니어가 말했다.


“그 시스템은 없어도 비행엔 문제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이상한 낌새가 피어올랐다.
‘아니야, 저건 NO-GO 시스템이잖아. 결함이 있으면 이륙 자체가 안 되는 건데…’


불안함을 안고 기내 안으로 걸었다. 승객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넓게 배치된 좌석들 사이로 여유로운 공기가 흘렀다. 침실 공간, 샤워 시설까지 갖춘 후방 구역도 붐볐다. 더 이상 들어가면 나오기 어려울 것 같아 발길을 돌렸다.

기내를 빠져나오며 문득 깨달았다.
이 비행기, 뭔가 이상하다.


손님들의 옷차림은 더더욱 그랬다. 모두 말쑥한 정장 차림, 깨끗하게 정돈된 머리, 새 옷의 냄새가 풍겼다. 역시 비즈니스 전용기에 오르는 사람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않은 무언가가 남았다.

밖으로 나오다 지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안녕하세요? 부러워요. 좋은 곳으로 여행 가시나 봐요.”

“응, 이번 여행이 처음이라 좀 떨리네.”
환하게 웃으신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나는 그동안 핸들링했던 항공기 이야기, 특이했던 기내 구조에 대한 얘기를 전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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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브리지를 나오며 문득 엘리베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저 엘리베이터, 혹시 밖으로 나가는 길일까?’

보안 요원이 옆에 앉아 있었다. 패스를 내밀자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이 엘리베이터는 허가된 사람만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계단을 이용해 밖으로 나왔다. 차 안에서 대기하던 중, 다시 기내에서 연락이 왔다. 엔지니어를 찾는다는 말이었다.


급히 기내로 향하는데, 승무원은 보이지 않았고, 그 아주머니가 베개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얘야, 이 베개 좀 바꿔줄래? 너무 불편해서…”

“지금 연락하면 늦어요. 제가 직접 조종사에게 얘기해서 새 걸로 가져다 드릴게요. 앉아 계세요.”

“고마워.”

그렇게 항공기의 출발을 기다렸다.


토잉카가 도착해 토우 바를 노즈 기어에 연결했다. 브리지가 천천히 떨어져 나가고, 항공기는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토우 바가 갑자기 휙 돌아가며 90도 이상 꺾여버렸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항공기를 멈추려 했지만, 항공기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보였다.


동체는 붉게 녹슬어 있었고, 초록빛 이끼가 기체 곳곳에 들러붙어 있었다. 노즈기어 자리엔 타이어가 없고 흉측한 골격만 보이고 떠있었다. 허공에 걸린 기체는 마치 무언가에 의해 들어 올려진 듯 움직였다. APU 공간에선 쇳소리가 날카롭게 울렸고, 벌어진 틈 사이로 흉한 부품들이 드러났다. 엔진 카울링 안은 텅 비어, 마치 심장을 잃은 것처럼 고요했다.

그리고 항공기는, 유도로를 향하지 않고 곧장 하늘로 솟아올랐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비행기는 영혼들을 태운 마지막 여정이었구나.

‘그 아주머니, 베개라도 꼭 챙겨드렸어야 했는데…’

울컥하는 마음에 눈을 떴다.


나는 그렇게 유령 비행기의 출발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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