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시 Sep 30. 2024

아무도 오지 않은 생일 잔칫상

<경양식 수제 돈가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게 튀겨 낸 담백한 돼지고기, 베어 물면 와삭와삭 소리가 나는 고소한 튀김옷과 입안 가득 터지는 황홀한 육즙, 기름진 느끼함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감칠맛 만점의 우스터 베이스 브라운소스. 그뿐인가, 동그란 접시에 오순도순 사이좋게 담겨 완전한 '돈가스 한 접시'를 함께 완성하는 곁가지 반찬들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얇게 채 썰어 고소한 들깨 드레싱을 얹은 개운한 맛의 양배추샐러드, 맛가루와 깨를 얹은 한 스쿱짜리 쌀밥, 따끈한 장국 한 컵, 그저 마요네즈에 버무렸을 뿐인데 왜 이리 맛있는지 모를 마카로니 범벅. 그리고, 돈가스가 나오기 전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우는 후추 솔솔 뿌린 오뚜기 3분 수프 한 그릇.


요즈음 나는, 혼자 외식할 상황이 생기면 거의 무조건 경양식 돈가스 식당을 찾는다. 기름에 튀긴 돈가스는 결코 건강한 음식은 아니지만, 내 ‘최애’ 메뉴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혼자 레스토랑에 와서 느긋하게 돈가스의 맛을 음미하며 즐기는 식사는 나만의 ‘힐링' 코스다.



내 생일은 사월 초에 있다. 매년 삼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겨우 한 달 남짓 지난 시점. 낯가리고 인간관계가 좁은 나는 해마다 새롭게 바뀌는 학우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 달이면 내겐 반 아이들의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들 만큼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그래서 너무 당황스럽고 막막했었다. 아홉 살 생일을 앞둔 내게, 엄마가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며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했을 때는.


엄마가 생일 초대장까지 만들어 주셨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작게 자른 색 도화지를 반으로 접어 우리 집 주소와 날짜, 시간을 쓰고 ‘초대합니다’ 문구도 적었던 것 같다. 기대에 찬 엄마와 달리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등교한 나는 생일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단 마음보단 엄마가 낸 ‘초대장 나눠주기’ 미션을 빨리 해치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야, 나 생일 파티 해. 너 가져.”

“우왕, 너 생일이야?”


우선 가장 먼저 만만한 짝꿍 ‘여치’에게 초대장을 나눠 주었다.

여치는 1학년부터 같은 반에 배정되어 벌써 몇 번이나 짝꿍이 된 친구였다. 여치는 남자 중에서 가장 키가 작고 나는 여자 중에 가장 작아서 자꾸 짝으로 만났던 모양이다. 두 명의 누나를 둔 막내아들 여치는 그 어느 여자아이들보다 고무줄넘기와 공기놀이를 잘했고, 가끔 화가 나면 나를 아주 맵게 꼬집는 야무진 녀석이었다. 여치는 보통 남자아이들과는 잘 놀지 않았고, 주로 여자아이들이 놀이 중에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그를 구세주처럼 모셔가곤 했다. 그리고 남자도 여자도, 아무도 친하지 않았던 나는 여치 덕에 같이 놀이에 낄 수 있었다.


“선물 사서 꼭 갈게~”

“응.”


그다음은, 어쩐다..

여치에게 초대장 한 장을 얼른 넘기고 나서, 다음으론 그나마 말이라도 한 번 나눠 본 적 있는 아이들에게 남은 초대장을 돌렸다. 하지만 ‘네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든지 ‘너랑 친해지고 싶다’든지 하는 입에 발린 말 한마디 없이, 느닷없게 초대장을 건넨 탓에 어색한 정적만 내려앉았다. 개중에 눈치 빠르고 넉살 좋은 몇몇이 ‘너무너무 기쁘고 고마운데, 미안하지만 학원 때문에 갈 수가 없다’고 다행히 좋게 거절해 주었지만 아이들 대부분은 ‘이걸 나한테 왜 줘?’라고 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것으로 대답을 갈음했다. 뭐, 당연한 반응이었다. 나는 후련한 마음으로 돌아섰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뭐, 어쨌거나 나는 주어진 미션을 달성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와 보니, 거실에 제사 때나 쓰는 널찍한 큰 상이 나와 있었다. 그 위에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잡채, 떡볶이, 각종 튀김, 고기반찬, 과일, 과자 등등. 그중 무엇보다 내 눈을 잡아끈 음식은 메인 메뉴인 ‘돈가스’였다.

그 돈가스로 말하자면, 엄마가 자주 튀겨주셔서 반찬으로 ‘늘 먹던’ 케첩 돈가스가 아니라, 레스토랑에 가야 먹을 수 있는 '파는 것 같은' 돈가스였다. 넓은 접시에 돈가스 튀김, 양배추샐러드, 깍두기 몇 조각, 마차로니 무침, 동그랗게 뭉친 밥을 예쁘게 빙 둘러놓고 직접 만든 브라운소스를 듬뿍 얹은 경양식 수제 돈가스.


요리가 특기인 엄마가 아주 작심하고 실력 발휘를 한 것 같았다. 이런 걸 집에서도 먹을 수 있다니! 놀랍고도 황홀한 기분이었다. 이런 것도 만들 수 있는 우리 엄마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갑자기 엄마에 대한 존경심도 막 솟아났다. 나의 최초의 기억부터 엄마는 늘 요리를 잘했기에 나는 그게 마냥 당연한 줄 알고 커왔지만, 그때의 그 돈가스만큼은 유별나게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어린 나는 엄마의 대단함을 알아챌 순 있어도, 진수성찬을 차리기 위해 엄마가 쏟았을 정성과 수고에 대해선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속상했을 엄마의 마음도.


“알시... 혼자 왔어? 친구들은?”

“....어? 몰라.”


[Rrrrrrrrrrrrr-]


혼자 귀가한 나를 보고 당황한 엄마와 그 반응에 무언가 잘못했음을 눈치챈 나는 상 앞에 덩그러니 앉아 침묵했다. 조금 있어 집으로 몇 통의 전화가 걸려 왔고, 그것은 집에 도착한 아이들의 가방에서 초대장을 발견한 몇몇 부모가 양해를 구하기 위해 건 전화였다. 그를 통해 이 성대한 잔치에 올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챈 엄마는 황당해 보였지만 나를 다그치지 않으셨다. 빠르게 태세를 전환하여 ‘음식이 식으니까 빨리 먹으라’며 급히 돈가스를 썰어주셨다. 나는 드디어 맛있는 돈가스를 먹을 수 있어서 그저 좋았다.


엄마는 많은 음식을 처리하기 위해 이웃 아주머니들을 집으로 불렀다. 그들은 급하게 오면서도 나를 위해 선물까지 준비해 와 주셨다. 그리고 상심했을 엄마를 달래기 위해 요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느라 얼마나 바쁜지에 대해 한참을 대신 변명하고, 엄마가 준비한 음식의 맛과 모양새가 얼마나 훌륭한지 한껏 과장하여 칭찬했다.(실제로도 엄청 예쁘고 맛있었다) 또래는 어색해하지만 어른은 편했던 나는 누가 오든 말든 정신없이 돈가스나 먹었고, 공짜로 예쁜 색종이, 공책, 연필 같은 것들이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친구들이 오지 않은 것이 ‘슬픈 일’이라는 것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띵동-!]

[안녕하세요! 저 알시 친구 여치인데요!]


아주머니들과 한참 음식을 나눠 먹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그 주인공은 바로 짝꿍 여치였다. 먹느라 그를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여치는 역시 의리를 아는 놈이었다.


“어머나아!! 쟤 좀 봐! 장미꽃이야? 알시 엄마! 미치겠다 정말!!”


그의 등장에 묘하게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떠들썩해졌다. 여치는 빨간 장미 한 송이와 자전거 모양의 예쁜 철제 액자를 들고 왔다. 빨간 장미도, 철제 액자도 절대 아홉 살 남자애가 준비할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분명 여치의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게 틀림없었다. 아마, 선물을 사 오느라 늦은 것이리라. 당일 초대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으니, 빈손으로 와도 전혀 서운치 않았을 텐데. 참 고마운 일이었다.


아주머니들은 생일잔치에 온 유일한 친구가 남자라는 점과 그가 빨간 장미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완전히 뒤집어졌다. 다들 흥분해서 ‘이 집 사위가 이제 왔다’는 둥, ‘미래의 사위에게 얼른 맛있는 걸 잔뜩 주라’는 둥, ‘애가 벌써 남자친구를 데려왔으니 알시 엄마 큰일 났다’는 둥 그 상황을 놀려대기 바빴다. 까르르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여치는 소란한 분위기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끌려와 상 앞에 앉았다. 엄마는 새 돈가스를 튀겨 따뜻한 소스를 부어 주었고, 돈가스를 맛본 여치는 너무너무 맛있다고 외쳤다. 파티는 한결 밝고 활기차졌다. 내가 먹던 적당히 식은 돈가스도 왠지 더 맛있어졌다.


조숙했던 나는 아주머니들이 하는 짓궂은 농담들을 전부 알아들었고, 원래라면 그런 식으로 놀림받는 게 엄청 싫었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어두웠던 분위기가 바뀐 것이 느껴져서 안심되고 신이 났다. 둘이서만 논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가끔 꼬마 커플로 엮이면 여치가 이유 없이 미웠는데, 그날만큼은 아주 반갑고 고마웠다. 앞으로 며칠은 그가 삐져서 내 팔뚝을 세게 꼬집어도 봐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른이 된 지금 그날을 회상하면, 엄마가 겉으로 말은 못 했어도 얼마나 속상했을지, 딸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걱정됐을지 짐작이 된다. 친구들이 파티에 와주지 않은 것은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내가 얼마나 부모 마음을 졸이게 하는 불효녀였나 싶다.

이 이야기를 쓰며 엄마에게 물어보니, 마음 써준 아주머니들 덕분인지 ‘쇼킹’했던 여치의 등장 덕인지 엄마에게도 그날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고 한다. 다행인 일이다.


시간이 지나도 타고난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아, ‘넓은 대인관계’나 ‘많은 친구’는 여전히 관심 없는 나는 아직도 조용한 생일 보내고 ‘혼밥’을 즐겨한다. 혼밥이 익숙해져, 2인 이상 주문이 필수인 식당이 아니라면 웬만한 곳은 전부 혼자 갈 수 있을 만큼 대담해졌다. 아마 필요하다면 술집도 고깃집도 다 혼자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먹는 밥이 함께 먹는 밥보다 더 좋다는 뜻은 아니다.

그 맛있던 엄마표 경양식 수제 돈가스도 여치가 와준 후에 ‘더’ 맛있어졌던 것처럼, 역시 모든 음식은 ‘같이’ 먹는 게 아무래도 맛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