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라면 문제를 정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능력이 결여된 신입 기획자라면 특히 '식스페이저*' 작성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식스페이저'란?
‘6 쪽짜리 문서(아마존 내부에서는 ‘식스 페이저 6-pager’로 불림, 아이디어나 주제를 깊이 있고 주도면밀하게 설명한 완전한 문장 형식의 문서, 식스 페이지 내러티브 Six-Page Narratives라고도 부름)
'식스페이저' 작성을 할 수 있다면, 완벽한 기획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식스페이저'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1) 문제의 배경 및 의문
2) 의문에 답하기 위한 접근 방식 (누가, 어떻게,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
3) 접근 방식 간의 비교
4) 앞으로 취할 행동,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고객과 회사에 혁신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설명
아마존에서는 회의를 파워포인트 발표로 하지 않는다. 대신 작성된 '식스페이저'를 읽고, 작성자에게 질문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발표력이 약한 사람도 원하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문서 자체가 회의록이 된다. 그리고 회의가 산으로 갈 확률도 줄어든다. 문제의 목적이 분명하고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식스페이저는 세계적인 기업 '아마존'의 기획안으로 유명하다.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부자로 등극한 제프리 베이조스 회장은 "글쓰기가 사고력을 개발하는데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글에 대해 진심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조사한 식스페이저의 정의이다.
그리고 병아리 신입 기획자인
나의 관점에서 식스페이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3년 차 디자이너 출신이다.
그리고 디자이너에서 서비스기획자로서 전향하기로 마음먹었다.
서비스 기획자로서 전향하면서 기대했던 점은
"고객 중심의 사고를 통해 사람들이 많이 소비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보겠다"였다.
그리고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디자이너로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디자인을 넘어 서비스로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디자인보다 전략 기획 쪽으로 접근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단 서비스 기획자로 구직을 시작했다.
그래서 A/B 테스트라던가 유저 리서치와 같은 화려한(?) 기술을 사용해보고 싶었다. 미동도 없던 알을 품으면 생명체가 부화하듯이 아무리 허접해 보이는 서비스더라도 여러 방법론으로 품으면 금방이라도변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이는 마치 초등학생이
"국내는 무슨! 하버드 대학? 나 정도면 입학할 수 있다."
라는 현실을 보지 못한 수준으로 서비스 기획을 정말 단순하고 쉽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인턴 3개월 계약으로 입사를 했고, 5주 동안 선배 기획자로부터 수도 없는 지적을 당했다. 지적받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제 퇴사까지 3주 남았다)
행위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이 뭔데?
그걸 고객사가 왜 제공할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건데?
맥락을 파악을 못하고 문제 정의가 안된다.
그걸 정말 고객이 필요로 할까?
읽는 사람의 관점에서 문서를 작성해라.
내가 단순하게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기능 단위를 결정하는 서비스 기획자를 꿈꿔왔다면? 정말 괴롭지 않았을까. 다행히 나는 스토리보드를 넘어 정책을 결정하고 전략을 제시할 수 있는 기획자 되고 싶었기 때문에 뼈가 아픈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었다.
지적을 받는 게 두려워 선배 기획자에게 과제물을 제출하는 행위 자체가 무서웠지만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정말 궁금했었던 기획자로서 의사결정 방법과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을 모두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배 기획자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싶었다.
회사의 주요 서비스의 웰컴 페이지(기능 안내)의 화면에 대한 식스페이저 작성해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식스페이저에 대한 설명을 하자면
식스페이저란? 아이디어나 주제를 깊이 있고 주도면밀하게 설명한 완전한 형식의 문서
v0.1은 엉망진창으로 제출했다. 내가 봐도 엉망진창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v0.2를 제출했다. 또한 나름대로 작성한다고 했는데, 선배 기획자의 몇 마디(문제정의가 제대로 되어있는 것 같냐? 등등)에에 종이 쪼가리가 되어버렸다.
(v0.2 작성할 때는 난 곧 나갈 사람이니까.. 조금은 대충 하고 싶다는 마음이 섞인 문서가 나왔고, 그게 전혀 숨겨지질 못했다)
한바탕 까임 당했다.
내가 쓴 글에서 서비스의 맥락과 문제정의에 대한 이해를 찾아볼 수 없고
기본적으로 서비스 기획자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자질이 부족하다고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
.
멍해졌다.
한참 뒤에야 본질을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늘 선배 기획자가 '왜?'라고 묻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왜?'라고 생각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토픽이라 생각이 들어 '왜?'에 대해 생각해봤다.
왜?
라는 질문을 어릴 때는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왜?라는 질문이 나에게는 많이 무의미해진 것 같다.
[학교에서]
학교에서 알려주는 가르침을 무조건 적으로 수용하고 수용한 지식을 바탕으로 점수를 내야 했다.
- 이걸 내가 왜 배워야 할까..?
- 그냥 해. 목적이 없지만 일단 해서 나쁠 것 없잖아!
- 그렇구나..
[직장에서]
회사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업무라도 나는 피고용자의 입장이니 해야 했다.
- 이걸 하고 있어도 회사에 별로 이익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 그냥 해.
- 그렇구나..
내가 겪어온 사회는 학교 아니면 회사였고 그 작은 사회에서 만들어진 규칙을 들이받으면 받을수록 내가 괴로웠고, 왜?라고 묻는 걸 포기하는 게 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그렇다. 변명이기도 하다.
나 스스로가 결정한 길을 부정당했으니, 선배 기획자를 부정하고 싶으나 부정할 수 없었다. 현재 나의 마음가짐을 선배 기획자가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생각하기를 게을리했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만 적당히 하고 가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2주 동안 야근을 12시까지 해가면서 듣고 싶은 말도아니었다. 선배 기획자 입장에서 봤을 땐 무언가 기획자로서의 나사는 빠진 채 열심히만 하는 인턴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식스 페이저를 작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팩트로 두들겨 맞고 이제 와서 글로 작성하면서 조금 정리되는 것은 기획자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서 안에서 나 스스로가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의문이 들지 않을 때까지 문서를 수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식스 페이저를 읽는 사람에게서 '왜?'라는 질문이 나오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회의록 하나를 작성하는 것에도 엄청 많은 지적을 받았다. 회의록? 그냥 나온 이야기 작성하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었다...ㅎ... 내가 작성한 회의록은 본질이 파악이 되지 않는 결과물이었다. 적어도 일을 할 때 나오는 모든 결과물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회의를 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회의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선배 기획자가 말해주셨다) 회의록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을 담는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회의록을 작성했고 그것을 보면서 선배 기획자가 이건 '왜?' 작성한 거야? 하는 의문을 가지셨던 것 같다. (나는 회의 중 언급되는 내용을 그저 모두 다 꾸역꾸역 타이핑했다. 논술력 부족한 거 티 다 냈다. 부끄럽다.)
모든 일과 문서에는 목적이 있고
'~하고 싶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있다.
'~하기 때문에 ~해야 한다'
내가 본 기획자는 논리적으로 섬세해야 하고 날카로워야 한다.
사실 난 내가 논리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논리적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근데 나는 사실은 노력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이제 와서 드러나는 것뿐인 것 같다. 논리력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이 타고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노력하려고!
내가 이 글을 작성한 목적은 식스페이저의 목적을 알고 싶기 위해서 무작정 작성해보았다. 5주 동안 선배 기획자에게 들었던 내용들을 정리하면서, 그놈의 식스페이저! 식스페이저를 알고 싶었다.
식스페이저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
결론은
식스페이저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는? 문제의 본질(Needs)을 찾기 위해서.
식스페이저를 작성해야 하는 목적은? 일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나가기위해서.
라는 결론을 내려본다. 앞으로 무슨 말이든 문서를 작성하든간 행위를 하는 이유를 바탕으로 한 목적 달성을 할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지금 나의 뇌는 너무 어려워하지만, 이 글을 자꾸 되돌아보면서 복기해야겠다.
예를 들어,
'올해 안에 완벽한 식스페이저 하나를 만들어보겠다.' -> 목적도 기대효과도 없음. 왜 하겠다는 거야?
를
'기획자로 성공하기 위해 식스페이저 하나를 만들어보겠다. 식스페이저를 작성함으로 아이디어나 주제를 이루기 위한 주도면밀한 완벽한 문장을 작성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로 글을 쓰는 생각을 습관화해야겠다. 결국 논리력과 직결되는 문제라 생각이 든다. 동네 도서관에 와서 나는 '150년 하버드 글쓰기 비법'이라는 책을 만났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나는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목적 없는 글을 써대고 있었다. 그리고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책을 마스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식스페이저는 지금의 나의 상황에 너무 버거운 미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11월 18일(퇴사 예정일 ㅎㅎ) 안으로 이 작은 책을 마스터하고 토대로 문서를 작성하는 능력을 키우기로 마음먹어본다.
글을 맺으면서,
어느 정도의 정리는 되었지만, 아직도 어렵고 나는 미숙하다. 선배 기획자에게 미안할 정도의 생각이 들면서 내가 정말 생각 없이 일을 했구나 하는 회고의 시간이 절로 가져진다. 1년 후에는 내가 작성한 이 글을 보면서 1년 전의 나 스스로를 우습게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