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많던 아이, 꿈 없는 학생으로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한 예능에서 나온 유명한 대사 중 하나다. 고등학생때의 나는 딱 이 문장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와 보면 참 대책없고 한심하지만 그 때의 날 탓하고 싶지는 않다. 정형화된 교육과정,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진정한 꿈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는 학생들은 몇 없었으니 말이다.
나는 참 다양한 꿈의 변천사를 가진 아이였다. 5살 때 간호사로 시작해서, 화가, 동화작가, 만화가, 스타일리스트, 방송작가, 북디자이너까지- 변화무쌍하긴 했지만 늘 이어져 오던 꿈이라는 이름의 물결. 그 물결의 일렁임이 사라진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터였다.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꾸미는 걸 좋아했던 나는 디자이너라는 장래희망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위해선 ‘입시 미술’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 그림은 선호와 재미의 영역이었지 재능의 영역은 아니었고, 똑같이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배우는 입시 미술 또한 전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디자이너라는 꿈을 접고 어떠한 목표와 꿈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억지로 공부만 하며 남은 2년을 보냈다. 목표 없는 시간들에 최선을 다할 리는 당연히 만무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수포자’였다. 어릴 땐 나름 과학 영재라고 불리웠으나 중학교 이후 과학에도 수학이 깃들기 시작하면서 그 쪽 분야로는 꿈을 가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유전자에 사회과학을 좋아하는 특성이 심겨 있었지만 수학을 못했기에 (정확히 말하면 수학이 결부된 과학) 길은 하나. 사회 뿐이었다. 꿈이 없으니 자연스레 대학 진학 시 과를 정할 때에도 좋아하는 교과목이 반영되었고, 그렇게 나는 사회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별 기대 없이 지원한 과이긴 했지만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나는 실생활과 밀접하다는 부분에서 사회가 좋았던 것인데, 정작 배우는 과목은 철학과 더 가까웠다. 새내기 시절엔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도 없었다. 그저 고등학생 때 학교에 갇혀 지내던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대학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훅훅 지나갔다. 정신을 차린 건, 이듬해인 2학년 때였다.
문과라면 무조건 ‘문송합니다’ 사과부터 하고 봐야했던 그 때. 2년 뒤면 졸업이고 취업,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 진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야 함을 번뜩 깨달았다. 그러나 당시 우리 과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커리어패스 중 나의 심장을 뛰게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큰일 났다. 뭐 해서 먹고 살지?’ 그렇게 중2병보다 무섭다는 대2병이 시작됐다.
매일 채용 사이트들을 들어가며 일자리들을 구경했다. 나를 써 줄 회사는 단 한 군데도 없어 보였다. 이대로면 내 인생은 망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저런 대외활동을 찾아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때 만난 게 바로 마케팅이라는 분야였다. 대학에 들어오고선 처음 느낀 ‘재밌다’라는 감정이었다. 사회와 경제와 심리 모든 것이 버무려진 이 분야가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무려 4년만에,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다. ‘마케터’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