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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Jan 21. 2022

허니버터칩은 왜 그렇게 친구가 많나?

Product: 세그먼트와 상품 포트폴리오 전략

최근 몇 년간 한국 시장을 되돌아보면 업계와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하기 그지없는 히트상품들이 시장을 흔들었습니다. 개중에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여러 나라에서 한국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세계 속의 한국을 각인시킨 상품들도 많이 있지요. 한국의 드라마나 케이팝도 훌륭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 식품의 대약진을 빼놓는다면 섭섭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식품을 이야기한다면 단연 허니버터 시리즈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요.


허니버터칩이라는 희대의 히트작은 과자 하나가 세상을 얼마나 뒤집어 놓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 상품이었습니다. 아무런 광고도, 특별한 마케팅 기믹도 없이 조용히 출시된 이 상품은, 출시된 지 불과 반년 후 구하기만 해도 영웅 대접을 받을 만큼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그저 품귀현상이란 말만으로는 그 인기를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먹다 남은 허니버터칩을 파는 사람이 등장하지를 않나, 허니버터칩을 빼돌리다가 잡힌 직원이 나오질 않나, 결국은 과자에 불과한 허니버터칩을 구하기 위해 갖은 기행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했습니다. 업계에 미친 파급력도 물론 엄청났습니다. 온갖 과자류와 디저트들이 ‘허니버터 맛’을 표방하고 등장하였지요. 허니버터 아몬드 역시 이 허니버터칩의 유행을 타고 개발되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상품이 되었습니다. 가히 한국 과자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상품이라고 할 만합니다.


이제는 광풍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인기는 가시고 누구라도 원하면 허니버터칩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매장에 이상한(?) 허니버터칩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허니버터칩 체리블라썸 맛, 허니버터칩 아몬드 캐러멜 맛에 최근에는 웨딩케이크 맛까지 출시되었습니다. 꿀과 버터가 절묘하게 조화된 맛이 인기를 끈 비결인데, 허니버터와는 관계도 없는 웨딩케이크도 왠지 허니버터칩이라고 하니, 이래도 좋은 것인지 의심이 갑니다. 사실 허니버터칩은 그나마 양반입니다. 허니버터 아몬드의 경우는 출시 직후부터 바로 다양한 맛, 혹은 아몬드 이외의 견과류들을 공격적으로 출시하여 허니버터 믹스넛, 와사비맛 아몬드, 딸기맛 아몬드 등 무려 20종류가 넘는 ‘허니버터 아몬드와 프렌즈’ 상품군을 구성하고 있지요. 이제 인기도 시들해져 가니 대충 아무거나 일단 내놓고 하나만 걸려라는 마음인 것일까요?


약간 희한한 아이들도 포함되어 있는 듯 하지만 어찌 됐든 다양성을 존중하는 좋은 친구들입니다.


새로운 세그먼트로 상품군을 확장하라

장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한 종류의 상품을 100개 파는 것보다 두 종류의 상품을 50개씩 파는 것이 언제나 쉽다’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시장에서 단맛 쓴맛 다 경험한 백전노장 장사꾼이 얘기하는 알쏭달쏭한 선문답처럼 들리는 이 말은, 사실 마케팅에서 얘기하는 STP(Segment, Target, Positioning) 전략의 한 축인 세그먼트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시장은 비슷한 특성을 가진 고객들의 집단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대 여성, 30대 남성과 같이 나이와 성별로 구분한다든지, 야구 혹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취미나 관심사로 구분을 할 수 있지요. 또는 주거지역, 소득 수준, 혹은 특정 상품의 사용빈도나 충성도 등 회사가 생각하는 여러 가지 전략적 기준을 가지고도 고객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분류한 집단을 마케팅 용어로 세그먼트라고 부릅니다. 비슷한 취향을 가진 특정 세그먼트의 고객을 위해 상품을 기획하고 판매한다면 당연하게도 해당 세그먼트의 고객들이 그 상품의 주요 고객이 될 것입니다. 그런 상품이 몇 개씩 늘어나면 전체 시장에서 우리 회사가 공략하는 세그먼트가 점점 확장되는 것이지요. 위의 격언(?)을 마케팅 언어로 바꾸자면, '하나의 세그먼트 안에서 판매량을 늘리는 것보다 여러 세그먼트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업계에 따라 혹은 전체적인 마케팅 전략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더 많은 세그먼트를 커버한다는 것은 잠재고객의 총합을 늘릴 수 있다는 면에서 확실히 매력적인 선택지임에 틀림없습니다. 


허니버터 시리즈는 이 격언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맛’이라는 기호식품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런 접근방식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은 더욱 커지지요.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짠맛이나 쓴맛을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게다가 과일이나 다양한 향신료라면 더욱 많은 선택지가 있지요. 딸기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 년 내내 딸기맛만 먹으라는 법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고려하여 식품과 맛에 관련된 상품들은 ‘맛에 대한 선호도’로 나뉜 세그먼트를 최대한 많이 커버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들을 내놓는 것입니다. 허니버터 아몬드가 유난히 심한 것도 아닙니다. 네스프레소가 판매 중인 커피 캡슐은 오리지널 라인업만 해도 무려 29종에 달합니다. 코카콜라의 다양한 음료 라인업이나 맥주회사의 수많은 맥주 상품들 역시 맛을 중심으로 한 세그먼트를 최대한 커버하기 위해 다양한 상품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이지요. 결국 회사는 새로운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기존의 상품만으로 커버하지 못했던 새로운 고객 세그먼트에 침투하여 자신들의 상품 포트폴리오가 시장에서 커버하는 영역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그먼트를 다시 생각하고, 쪼개고, 침투하라

이렇게 시장을 세그먼트로 생각하고 상품의 확장을 회사 혹은 브랜드가 침투한 세그먼트의 확장으로 바라보면 왜 많은 회사들이 새로운 상품을 공격적으로 출시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품 전략은 단순히 새로운 세그먼트로 확장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요. 시장이 성숙해지고 고객이 늘어나면 이제까지 하나라고 생각했던 세그먼트를 더욱 세분화하여 쪼개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과거 기초화장품 시장은 크림과 로션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스킨케어에 관심을 갖는 고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젤, 세럼, 오일 등 다양한 포맷의 상품이 등장하기 시작했지요. 이에 더해 최근에는 안티에이징, 화이트닝, 모이스처링 등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세분화된 전문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저 ‘기초화장품’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시장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품 분류도 세분화되었고, 그에 따라 세그먼트도 더욱 잘게 나누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세그먼트가 세분화되면 고객들은 자신의 취향 또는 니즈에 따라 세분화된 상품들에 더욱 끌리게 됩니다. '피부에 좋은 기초화장품' 보다는 '보습에 좋은 기초화장품'이라는 말이 보습을 걱정하는 고객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상품인 것은 당연하지요. 보습이 아닌 이유로 기초화장품을 찾는 고객을 놓치더라도 성숙한 시장에서라면 충분히 많은 고객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나눈 세그먼트에 경쟁자가 없다면 한동안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즉, 기존에 잘 팔리는 상품이라도 시장의 성숙과 함께 고객 세그먼트를 재정의할 필요성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그먼트 분할 전략은 성숙한 시장에 뛰어드는 후발주자들이 애용하는 단골 메뉴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성숙된 시장이란 두꺼운 고객층을 가지고 있는, 농지로 얘기하자면 비옥한 토양과도 같은 곳입니다. 기존의 상품들이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혹은 공략하지 않은 마이너한 니즈를 갈라치는 것만으로도 성숙한 세그먼트 안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며 충분한 고객을 발판 삼아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단순히 ‘맥주’라고 구분되어 있던 하나의 큰 시장을 신생 수제 맥주회사들이 라거와 에일 등 다양한 맥주의 주종으로 구분하여 특화된 맛을 선보이며 등장한 것이 좋은 예입니다. 대기업 맥주 회사들이 마시기 좋은 주종인 페일 라거만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틈을 노리고, 기존의 큰 세그먼트를 '에일 맥주를 좋아하는 고객', 혹은 'IPA를 좋아하는 고객' 등으로 세분화하며 침투한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인스타그램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처음 시장에 침투하였지요. 페이스북, 트위터, 마이스페이스 등 비슷비슷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이미 시장을 지배하며 덩치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 ‘사진에 특화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세그먼트를 잘게 나누는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하여 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한 땀 한 땀 나뉜 피부 고민을 둘러보고 있자면, 그런 게 있는지 알지도 못했던 피부 장벽 보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생산하여 판매하는 것은 작은 회사나 큰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금이 투자되는 일입니다. 작은 회사나 스타트업의 경우에는 사운을 걸고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큰 회사에서라도 주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큰 프로젝트이지요. 마케터로서 신상품 런칭을 주도하는 것은 큰 영광이지만, 동시에 많은 관련자들을 설득시켜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주주와 경영진에게 끊임없이 확신을 주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상품을 출시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언제나 명확하게 인식하며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가야 하지요.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상품을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지 않고 시장의 특정 세그먼트를 타겟으로 한 전체적인 포트폴리오 전략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객에게 이 상품을 팔고자 합니까? 고객이 속한 세그먼트는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습니까? 우리가 이 상품을 성공적으로 발매함으로써 시장의 세그먼트와 우리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합니까? 시장은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상품 포트폴리오는 시장의 확신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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