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unicaiton: 광고와 소비자 행동모델
매서운 눈매를 한 어린 소년이 헤드 기어와 복싱 글러브를 끼고 링 위로 올라갑니다. 표정과는 달리 어설픈 주먹을 내지르다 한방에 KO를 당합니다. 힘껏 휘두른 스윙에 맞은 골프공이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맞고 되돌아와 방금 공을 친 사람을 때립니다. 골대 앞에서 찬 슈팅은 담장을 넘어가고, 서핑보드는 파도에 닿기도 전에 땅에서 고꾸라집니다. 스케이트 보드를 뒤집으려다 걸려 넘어지는 소년의 멋쩍은 웃음과 함께 약간 거친 말투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오지요. ‘근데 엿같지 않은 게 뭔지 알려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에 도전해 봐. 그건 엿같지 않다고. 아주 조금도 말이지.’ 마지막에 나오는 나이키의 로고 이외에는 나이키가 제대로 등장하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주의를 깊게 기울여야만 주인공들의 모든 옷에 나이키 로고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나이키 신발이나 나이키 옷은 이 광고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많은 주인공들, 많은 장소, 다양한 스포츠, 퀄리티 높은 음악과 내레이션 성우까지. 이 광고를 만들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과 자금이 필요했음은 확실해 보입니다. 대체 나이키는 왜 그런 큰돈을 들여 로고도 잘 안 보이는 공익광고 같은 것을 만들었는지 의아해지지요.
심지어 이런 광고인지도 잘 모르겠는 광고를 하는 곳은 나이키뿐만이 아닙니다. 잘은 몰라도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하는 광고려니 할 수 있는 나이키와는 달리,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광고들도 상당히 많이 있지요. 몇 년 전, 보는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게 했던 삼성생명의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라는 광고도 이러한 종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한다면, 평생 당신의 가족과 함께 있을 시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하며 보는 이들을 눈물범벅으로 만들었지요.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왜 이런 광고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5분이 넘는 풀타임 광고를 보아도 삼성생명은 커녕 보험의 냄새조차 풍기지 않는, 가족과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감동적인 광고가 인상에 깊이 남았으니 어찌 됐든 삼성생명의 이미지를 좋아졌겠지 생각하려 해도, 사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광고를 만든거라면 더 저렴한 비용으로 같은 효과를 가져오는 광고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었겠지요.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로고 한 번 노출되지 않는 영상을 제작하는 것보다 편하고 쉬운 방법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대체 이런 광고들을 만든 마케터들이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요?
소비자의 행동 단계를 하나씩 나누고 점령하라
사실 이러한 광고들은 커스토머 저니(Customer Journey)라고도 불리는 소비자 행동모델에서 특정한 단계를 노리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구매하기까지에는 꽤 많은 단계가 필요합니다. 이런 단계를 하나하나 연구하여 정형화해놓은 것을 소비자 행동모델이라고 부르지요. 업계에 따라, 상품에 따라, 그리고 회사 전략에 따라 소비자의 행동 단계가 제각각이다 보니 각 단계를 아주 잘게 나누어 놓은 곳도 있고, 네다섯 단계로 큼직하게 분류한 곳도 있습니다. 심지어 상품을 알지도 못하는 단계에서 시작해서 구매 후의 행동까지 고려하여 전략을 수립하는 회사도 있지요. 회사와 업계마다 나름대로의 고민이 묻어 있는 행동 모델이겠지만, 필요의 인지, 정보 수집, 비교 평가, 구매 결단, 그리고 구매의 다섯 단계가 일반적인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하기까지 거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소비자의 행동 단계를 분석하여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소비자를 의도한 행동으로 유도하는 것이지요. 소비자가 인터넷에서 레깅스를 검색하며 상품 정보를 수집할 때, 우리 회사의 제품이 노출되도록 키워드 광고를 집행하는 것이 좋은 예시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이키 마케팅팀의 고민을 생각해 보면 광고의 의도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이키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필요의 인지나 정보의 수집은 아니겠지요. 운동을 시작하게 되면 운동복이나 운동화가 필요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운동복이나 운동화가 필요할 때 나이키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나이키의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것도 아닙니다. 즉, 조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을 때 이 사람이 러닝화를 구매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이키가 후보 중의 하나에 오르기까지 마케팅 팀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이지요. 나이키 마케팅 팀의 가장 큰 고민은 그다음부터 시작됩니다. 소비자는 아디다스나 아식스 등 나이키만큼 유명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스포츠 브랜드를 나이키와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소비자가 나이키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쟁자들의 상품과 비교하여 나이키의 상품이 더 낫다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겠지요. 즉, 나이키의 광고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당연하게도 나이키의 로고를 알리거나 나이키에 러닝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타 스포츠 브랜드들과의 비교 경쟁에서 ‘왜 나이키를 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놓는 것입니다.
문제를 확인하고 목표를 설정하라
여기서 다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나이키의 러닝화가 다른 상품보다 낫다고 판단하게 하려면 보통 러닝화의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러닝화의 기능 차이를 프로 선수도 아닌, 하루에 5킬로미터를 뛰는 것조차 벅찬 일반인들이 느끼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그런 하이테크 기술이 적용된 러닝화는 대단히 비싸지요. 결국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러닝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신어보니 발이 편하고 적당히 예쁜 디자인’ 정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브랜드에 대한 친밀감’이라는 무형의 자산은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어차피 비슷한 신발, ‘도전을 하는 멋진 사람들’이 신는 브랜드가 더 매력적인 것은 당연하지요. 바로 광고에서 이야기한 스토리가 아무 이야기도 없는 다른 브랜드를 제치고 나이키를 선택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이키 마케팅 팀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이러한 광고를 제작한 것이지요. 새로운 스포츠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이키 브랜드에 대한 동질감을 느끼고, 나도 그런 쿨한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이왕이면 나이키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광고는 대성공인 것입니다.
삼성생명의 광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생명보험 매출 순위에서 압도적인 1위를 점하고 있는 삼성생명에게는 브랜드의 인지도나 타사와의 비교우위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소비자들이 보험에 관심을 갖게 하여 생명보험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소비자들이 일단 생명보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삼성생명으로 끌어들이는 데는 자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애를 강조하는 광고는 바로 이런 큰 그림을 그리고 만든 광고이지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고객층일수록 생명보험에 가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보험의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게 목표인 것입니다. 광고를 본 소비자들이 가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보험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성공적인 광고가 되는 것이지요. 언뜻 보아서 광고인지 알기 힘들고, 왜 이런 광고를 하는지 모르겠는 광고이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소비자의 행동변화를 목표로 자신들의 비즈니스에 유리한 방향으로 소비자들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꾸로 목표로 하는 소비자의 행동변화가 애매하다면 비슷하게 멋지거나 감동을 주는 광고라 하더라도 소비자의 마음속에는 남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무슨 생각을 하면 좋을지 아무런 메시지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는 당연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겠지요. 때문에 아무리 유튜브의 조회수가 높이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광고는 결국 ‘좋은 영상’으로만 기억될 뿐,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은 비즈니스 목표를 가지고 제작하는 ‘투자’입니다. 금액이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투자의 목표가 명확해야 성공에 다가갈 수 있겠지요. 우리가 목표로 하는 소비자의 행동 변화가 명확할수록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해지고,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내용도 뚜렷해집니다. 이러한 광고가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성공적인 광고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여러분의 광고는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우리 상품이 경쟁 제품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합니까? 아니면 망설이고 있는 구매 버튼을 지금 당장 누르게 만들어야 합니까? 커뮤니케이션의 기초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명확하고 알아듣기 쉽게 만드는 것임을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