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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bbin Chang Mar 18. 2022

BBC는 왜 광고판을 태워버렸나?

Communication: 광고와 커뮤니케이션 구조


2020 12, 영국 BBC 방송국의 새로운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 ‘A Perfect Planet (완벽한 행성)’ 방영을   앞두고, 영국의 주요 도시 옥외 광고판들이 귀여운 동물들과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으로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연둣빛 정글 속의 쨍한 주황색 원숭이, 에메랄드  바다를 헤엄치는 은색 물고기 떼가 오래된 도시 런던의 곳곳을 환하게 밝혀 주었지요. ‘화산’, ‘태양’, ‘날씨’, ‘바다그리고 ‘인간 5편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는 제작진의 오랜 노고가  드러나는 세련되고 훌륭한 영상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인 ‘인간 방영을 앞둔 2021 1 어느 ,  아름다운 포스터들은 모두 중간이 찢겨 나가게 됩니다. 가장  규모의 옥외 광고판이 설치되었던 맨체스터에는 광고판이 찢겨나간 것뿐만이 아니라 불타오르기까지 했지요. 그리고 찢겨나가고 불타버린 부분에 숨겨져 있던 그림과 메시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불타버린 , 페트병이 떠다니는 바다와 함께 이제 완성된 진정한 광고의 메시지가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A Perfect Planet - But For How Long (완벽한 행성 - 하지만 언제까지 완벽할  있을까).’  다큐멘터리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에피소드 ‘인간 지금까지 보여준  훌륭한 지구가 인간의 손에 얼마나 쉽게 망가질  있는지를 보여주며 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완벽하게 광고판으로 옮겨, 다큐멘터리를 광고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가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까지 대중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는  성공하였지요. 2021 가장 인상적인 광고  하나로 많은 곳에 소개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광고가 있습니다. 광고를 하는 목적도 제각각이고 수단도 다양하지요. 하루가 다르게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곳이 바로 광고업계 입니다. 대중들의 기억에 남는 성공적인 광고를 만들기 위해 상상도 못할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광고 회사들의 노력은 정말 극한 직업의 에피소드를 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합니다. 인기 아이돌이나 유명 연예인들은 이러한 노력을 덜어주는 고마운 조력자입니다. 전지현이 광고한 치킨이라는 말만으로도 단숨에 소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도박을 하는 건지 광고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는 걱정이 줄어들지요. 어떤 회사는 영화와 같은 감동적인 스토리를 들고 나오기도 합니다. 대체 무얼 선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광고를 정신없이 보다보면 마지막에 회사의 로고가 나오며 자신들이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식의 멘트가 흐르지요. 이렇듯 유명 연예인, 감동적인 스토리 등은 소비자의 기억에 남기 위한 발버둥의 산물입니다. 하지만 수십억 원의 개런티, 장시간의 제작 기간을 투자했을 이런 광고들과 비교해보면 BBC의 광고는 단지 몇 장의 그림과 불타오르는 효과를 더해줄 수증기 발생기, LED조명 등 약간의 장치만으로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광고가 되었습니다. 단순히 아이디어가 좋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BBC에는 있고 BHC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요?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초록색 숲속의 귀여운 원숭이가 불타오르는 모습은 사진으로만 보아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사진: BBC)


구조화된 메시지를 전달하라

화려한 효과나 유명한 연예인들, 혹은 디지털 혁명이 만들어낸 최신 수단에 가려져 언젠가부터 잊혀진 것이 있습니다. 광고라는 것은 바로 ‘특정 고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것이지요. 그 목적이 무엇이든, 수단이 무엇이든, 최첨단의 3D 영상이든, 종이 신문 하단에 인쇄된 그림이든, 우리가 하는 광고는 특정한 타겟 고객을 향해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화려한 그림과 메시지로 치장되어 있어도 본질은 내 옆자리에 앉은 친구에게 점심으로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고 설득하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순댓국을 먹으러 가기 위해 친구를 설득하려면 당연히 친구에게 ‘순댓국을 먹으러 가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찾아낸 그 순댓국집이 사실 숨은 맛집이었다는 이야기는 친구의 귀를 솔깃하게 하겠지요. 뜬금없이 블랙핑크가 사실은 순댓국을 좋아한다든가, 순댓국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고 친구가 갑자기 순댓국을 먹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즉, 우리가 광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그러하듯,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도 기본적으로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필요합니다. 마케팅에서는 종종 이 주장을 CSR: Core Selling Message, 즉 중심이 되는 판매 메시지라고 부르고, 그 근거를 RTB: Reason To Believe, 즉 믿어야 할 이유라고 부릅니다. 이 CSR은 광고에 나오는 메인 카피나 슬로건 등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광고를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주제, 혹은 중심이 되는 메시지이지요. BBC의 예로 돌아가면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자연을 지키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정도가 이에 해당하겠지요. 이를 뒷받침하는 RTB로 아름다운 자연이 훼손되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며, 언제까지 아름다운 지구가 계속될 수 있을지 엄중한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요소를 100% 활용하라

하지만 주장과 근거가 명확하다고 해서 모두 좋은 광고가 된다면 광고 회사들이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며 고생을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주장과 근거는 좋은 광고를 만들어 내는 든든한 뼈대의 역할을 할 뿐, 본격적인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현대의 광고는 단순히 말이나 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비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혹은 더욱 주목을 끌기 위해 비주얼, 음악, 효과음 등 다양한 시청각적 장치가 사용되지요. 좋은 광고를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지가 바로 광고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지요. 모든 요소가 효과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광고의 메시지와 그 요소들, 즉 카피, 내레이션, 비주얼, 음악, 효과음 등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BBC의 광고가 강렬하고 인상적인 이유는 단순히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CSR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RTB가 명확해서인 것뿐만이 아니지요. 불에 타고 있는 숲, 페트병이 떠다니는 바다는 RTB로서 ‘훼손’이라는 키워드로 명확하게 읽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림이 찢어진 듯한 효과나 불에 타고 있는 듯한 연출은 그것 자체로 ‘훼손’이라는 느낌을 강렬하게 전달하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이렇듯 광고 안의 모든 비주얼과 효과가 메시지와 같은 방향을 갖고 있다면 광고는 더욱 밀도 있고 인상 깊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TV와 같은 영상광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성공적인 캠페인으로 단기간에 브랜드 인지도와 매출을 끌어올리며 주목을 받은 아모레 퍼시픽의 라보에이치 샴푸 광고가 좋은 예이지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개발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실험실 같은 배경, 많은 과학자의 노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과장된 줌아웃, 좋은 성분을 암시하는 식물 등, 라보에이치의 광고는 30초 내내 단 한 컷도 허투루 쓰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함께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의 주장을 확실하게 뒷받침합니다.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RTB와 이해를 돕는 좋은 비주얼로 밀도 있는 메시지 전달에 성공하여 설득력 있게 소비자들의 기억에 남는 광고가 된 것이지요.


사실 별 의미 없는 오가닉 인증 스티커를 붙이는 0.5초의 비주얼로 완벽하게 검증이 끝난 믿을만한 샴푸가 만들어집니다. (사진: 라보에이치)


좋은 광고는 어쩌다 운이 좋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간결하고 논리적인 메시지 구조, 그것을 표현하는 비주얼과 음악, 그리고 소비자의 주목을 끌 수 있는 기술적인 장치까지, 모든 것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같은 방향으로 함께 움직여야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연예인을 써서 고객의 주목을 끄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연예인만 기억에 남고 무슨 광고였는지는 알 수 없는 광고가 탄생합니다. 비주얼이나 음악에만 힘을 기울인다면 유튜브 조회수만 치솟고 매출은 전혀 오르지 않는 광고가 되어버리지요. 메시지의 구조만을 신경 쓴 광고 따위는 애초에 아무도 쳐다보지조차 않습니다. 여러분이 그 광고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그 이야기는 비주얼과 음악으로 정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이야기에 화룡점정을 찍을 최신 트렌드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케터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끄는 악단의 지휘자와 같습니다. 모든 요소들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이끌 수 있다면, 행운의 도움이 없더라도 우리의 메시지는 고객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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