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motion: CRM과 판촉 전략
벌써 20년 가까이 된 이야기입니다. 2004년 겨울, 유행에 민감한 고등학생과 대학생 사이에서 한국에 막 진출한 크리스피크림도넛이 순식간에 인기 브랜드로 등극했지요. 처음 신촌에 문을 연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매장 수를 급속히 늘려 나가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합니다. 몇 안 되는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지요. 도넛이라는 음식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도 아니고, 딱히 기존에 진출해 있던 던킨도넛과 비교해 더 유명한 브랜드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피크림도넛의 인기는 불과 몇 달만에 말 그대로 폭발이라고 부를 정도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사람들이 줄지어서 매장을 방문한 이유는 따로 있었지요. 바로 도넛이 다 익었다는 빨간불이 켜지면 공짜로 하나씩 나누어주는 ‘오리지널 글레이즈드’를 맛보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잠깐 줄만 서면 방금 구운 따끈따끈한 도넛을 공짜로 주겠다는데 안 그래도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이들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크리스피크림도넛은 타겟 고객들의 시선을 한번에 사로잡는 훌륭한 판촉 전략을 통해 단시간에 시장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였지요.
이렇게 무료로 상품을 나눠주는 것은 새로운 고객을 불러 모으기에 아주 좋은 판촉활동입니다. 아직 우리 상품의 ‘진정한 맛’을 모르는 잠재적 소비자에게 무료로 상품을 맛보게 해서 우리 상품을 계속 구매하는 충성고객으로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되는 투자인 것이지요. 마트에 가면 수시로 하고 있는 신제품 시식, 와인 시음 혹은 화장품 샘플 등, 이런 종류의 판촉 활동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이미 그 브랜드의 물건을 잘 사고 있는데 공짜로 상품을 주는 희한한 판촉 활동이 있습니다. 매리어트나 하얏트 등, 글로벌 호텔 체인들은 일정 기간 이상 이용하면 무료숙박을 제공하는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지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같은 항공사들 역시 마일리지 프로그램을 운용합니다. 일정 거리 이상 비행기를 타면 공짜로 비행기를 태워주는 프로그램이지요. 우리가 자주 찾는 스타벅스 역시 별을 12개 모으면 공짜 커피를 한잔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단골손님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서비스’를 주는 거라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이미 우리 회사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잘 이용하고 있는 손님에게 공짜로 무언가를 얹어준다고 해서 우리 회사에 더 큰 이득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요. 방금 골드 레벨의 고객이 공짜로 가져간 그 커피는, 사실 우리가 쿠폰을 주지 않았어도 고객이 자기 돈을 온전히 지불하고 구매했을 똑같은 상품입니다. 대체 이 회사들은 왜 단골손님에게 공짜로 상품을 건네주는 것일까요? 정말 단골손님이 고마워서 서비스를 얹어주는, 인심 좋은 이모님 같은 회사들인 것일까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약속하게 만들어라
사실 판촉 활동이란 소비자가 특정 행동을 하였을 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행동을 변화시키거나 통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고객들이 할 것으로 예상되지 않거나, 일부 고객들만 한정적으로 할 것으로 생각되는 행동에 인위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회사의 의도대로 고객을 움직이게 만드려는 것이지요. 새로운 도넛 가게가 생겼다고 한들 거리낌 없이 들어가서 생소한 가게의 생소한 음식을 시험 삼아 먹어보려는 소비자는 대단히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맛이 없기라도 하면 짜증이 두 배가 되어 밀려올 도넛 같은 디저트를 아무 정보도, 사전 지식도 없이 개척자와 같은 마음으로 테스트를 해 볼 소비자는 더더욱 적겠지요. 기껏해야 미국 등 해외에서 이미 크리스피크림도넛에 대한 좋은 경험이 있거나, 적어도 친구 등 지인들에게 브랜드와 상품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 소수의 고객만이 매장을 찾게 될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무료 샘플링은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도넛이라도 공짜로 준다는데 먹어 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달콤하고 맛있는 도넛을 경험한 고객들이 다음번에는 무료 샘플링이 아니어도 매장을 찾게 되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지요. 이렇게 절대 사지 않을 상품을 시험하게 한다든가, 하나만 살 것을 두 개 사도록 한다든가, 혹은 내일 살 물건을 오늘 사게 만드는 등, 판촉 활동은 소비자들의 행동을 우리 회사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미끼와도 같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호텔이나 항공사들이 마일리지 프로그램 등의 리워드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도 역시 소비자의 행동을 회사가 의도한 대로 변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로열티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꾸준한 소비를 달성한 소비자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어 있지요. 사실 호텔이나 비행기는 어느 회사의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그다지 상관이 없습니다. 서울에서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비행기가 대한항공이든 유나이티드이든, 기내 서비스나 좌석의 형태에 특별한 취향을 가진 고객이 아닌 이상, 일반적인 소비자로서는 시간대나 가격이 중요할 뿐 비행기 겉면에 붙어 있는 로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요. 하지만 특정 항공사에 마일리지를 쌓고 있는 고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어차피 비슷비슷한 서비스와 가격이라면 조금 비싸거나 혹은 약간 시간대가 맞지 않더라도, 마일리지를 쌓고 있는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이 더 이득입니다. 잘만 모으면 다음 휴가에 갈 일본 여행을 공짜 비행기로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지요. 호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약속 장소에서 10분 정도 더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새로 포인트를 쌓아야 하는 매리어트에 투숙하느니, 하룻밤만 더 자면 공짜 숙박이 가능한 하얏트를 일부러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객이 우리 브랜드에 더욱 빠져들 수 있도록 유인하라
특히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소비자가 얻을 수 있는 혜택이 크게 차이가 없는 업계, 즉 저관여 상품이나 서비스일수록, 소비자가 꾸준히 우리를 찾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을 위한 판촉활동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지요. 즉, 판촉 전략은 단순히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거나 혹은 더 많은 판매를 하기 위한 전술적인 용도가 아닌, 회사 전체의 마케팅 전략을 관통하는 중추적인 전략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CRM 전략과 판촉활동이 맞물려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통 업계의 강자인 신세계와 롯데는 포인트 제도를 활용하여 소비자들을 자사의 유통 채널에 가두어 두기 위해 노력합니다. 어차피 어느 마트에서나 사든 똑같은 상품을 특별히 롯데마트에서 사게 만들기 위해 포인트 제도를 통하여 소비자들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지요.
당연하게도 스타벅스의 리워드 프로그램 역시 고객이 매장을 다시 찾게 하기 위한 CRM 활동의 일환입니다. 특히 스타벅스의 경우 회사의 중심 전략이 CRM인 만큼, 고객이 리워드 프로그램에 참여한 순간 더욱 스타벅스에 빠져들수 있도록 리워드 혜택을 사려 깊게 디자인하였지요. 꾸준하고 지속적인 매장 방문과 커피 구입을 유도하기 위해 연 단위로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실 커피를 좋아하고 늘 마시는 사람이라면 골드 멤버가 되기 위해 30개의 별을 모으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출근길에, 혹은 점심시간에 회사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언제나 커피 한 잔을 마신다면 한두 달 안에 골드 멤버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하지만 하루 이틀 만에 갑자기 골드 멤버가 되려고 한다면, 회사 전 직원에게 커피를 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기준을 달성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스타벅스는 리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한두 달, 혹은 몇 달간에 걸쳐 스타벅스를 꾸준히 찾도록 소비자를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리워드 프로그램의 첫 특혜가 커피 커스터마이즈인 것도 고객들이 스타벅스의 가장 큰 장점을 경험하도록 유도하여 스타벅스에 더욱 빠져들게 하기 위한 장치이지요. 커피 원두 구매를 장려하거나, 미국의 경우 ‘스타벅스 크레디트 카드’를 발급하면 더욱 많은 리워드를 제공하는 것도 소비자들이 스타벅스를 계속 찾아야 할 일종의 계약을 맺도록 유도하는 장치인 것입니다. 충성고객일수록 더욱 단가가 높은 음료와 원두를 구매하는 경향을 알고 있는 스타벅스로서는 자사의 판촉 활동을 소비자들의 재방문에 집중시키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소비자들이 우리의 상품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고객들이 계속 우리를 찾도록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어찌 보면 고객의 재구매를 유도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궁극적인 목표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판촉 활동은 이러한 비즈니스 목표를 고려하여 소비자의 행동을 우리의 의도대로 유도하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전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디자인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겠지요. 여러분의 판촉 전략은 어떻습니까?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것에만 집중하여 충성고객을 소홀히 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단기간의 판매에만 집중하여 오히려 소비자들이 우리 상품을 다시 구매할 이유를 없애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의도와는 달리 고객이 우리에게서 떠나가도록 유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가장 소중한 고객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그 고객들에게 가장 큰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고객도 유인하는 것, 이것이 바로 너무도 당연해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은, 판촉 전략의 기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