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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타 Apr 28. 2024

나의 바다를 찾아서

한국 주식 시장엔 기적의 선반영이란 말이 있다. 기업의 실적이 좋았는데 이미 다들 예상하고 선반영한 상태여서 오히려 주가가 떨어진다던가, 반대로 기업 실적이 부진했는데 이미 선반영해서 갑자기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 최근 비트코인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였다. 현물 ETF 승인이라는 호재도 있었지만, 곧 다가오는 반감기(비트코인 생산량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희소성이 올라 가격이 오르는 시점)의 기대에 비트코인 가격이 거의 1억 원까지 치솟았다. 역사적으로 봐도 항상 반감기 이후에 가격이 급등했으니 합리적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반감기 이후 비트코인 가격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신한은행 오건영 팀장님은 이와 비슷한 현상을 이야기하실 때 종종 내비게이션 비유를 하신다. 차를 타고 가다가 내비에서 더 빠른 경로를 추천해 그 길로 갔더니 다시 그 길이 막히고, 그렇게 추천 경로 따라 계속 바꾸면서 왔더니 엄청 오래 걸렸다는 이야기. 나뿐만 아니라 같은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정보를 듣고 옮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정보를 생각할 때 그 정보로 인해 움직이는 사람도 고려해야 하는데, 그 모든 연쇄를 고려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이야기다. 이럴 땐 오히려 꿋꿋이 자신의 길을 고수했던 사람이 승자가 될 수도 있다. 투자 공부를 하다 보면 비슷한 이야기를 종종 접한다. 괜찮은 자료들을 보다 보면 하나같이 마지막에 이 설명은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고, 결국 자신만의 투자관을 형성해서 꾸준히 지켜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무엇보다 어떤 길을 정했더라도 이게 정말 맞는 길일까 하는 불안이 큰 걸림돌이지 않을까. 이와 관련해서 북스테이 <썸원스페이지 숲> 사장님이신 썸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 은퇴하고 창업하는 것에 대해 상담을 해주셨는데, 정확한 문장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처음부터 너무 구체적인 목표를 잡지 말라고 해주셨다. 예를 들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을 가자' 가 아니라 '남쪽 바다를 보러 가자' 같은 느낌으로 시작하고, 점점 나아가면서 수정해 나가는 게 지속 가능한 도전이라고 해주셨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부터 인생 목표 중 하나가 내 칵테일 바를 차리는 거였는데, 그때 생각한 칵테일 바의 모습과 재작년, 작년, 올해 생각한 모습이 전부 다 다르다. 이렇게 방향은 일관되지만 가는 길에는 유연성을 가지는 게, 계속 이 꿈을 그리며 살아가는 비결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바다라는 방향을 잡는 것도 쉽진 않다. 며칠 전 칵테일과 곁들인 독서모임을 진행했다. 독서모임과 칵테일 모두 내겐 진심인 분야라 적성에 맞지도 않는 진행을 맡았는데, 내가 다른 이야기할 때랑 칵테일 관련 이야기할 때 모습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칵테일 이야기를 할 때 정말 그 분야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진다 하시면서 각자의 취미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들 중 절반 정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르겠거나 찾고 있는 중이라 하셨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진심인 분야를 딱 찾을 수 있냐는 질문도 받았었다.


이 질문이 굉장히 어려웠던 게, 나는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확고한 아이였다. 편식은 물론 공부에서도 어떤 과목은 전교 10등 안에 들지만 다른 과목은 전고 600등도 받아볼 정도로, 특목고라는 제도가 없었으면 힘들었을 학생이었다. 처음 개발자로 진로를 정했을 때도 당시에는 개발자가 그렇게 주목받는 직업이 아니었는데, 그냥 그 분야가 재밌고 좋아서 별생각 없이 선택했더니 IT 기술이 중요한 사회가 되어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취향이 확고한 게 물론 장점도 있지만, 그러다 보니 싫어하거나 마음에 없는걸 억지로 잘 못한다. 빈말 같은 것도 잘 못해서 모임 때도 어떤 분이 장난으로 너스레 떠신 걸 진지하게 대답해서 재미없게 만들기도 했다. 면접 때도 가장 난감했던 질문이 '좋아하고 열정이 생기면 잘 해내시는 것 같은데, 만약 하기 싫은 일이 주어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였다. 여기서도 결국 거짓말로라도 열심히 잘 해내겠다고 하지 못했다. 사람 관계에서도 원래도 에너지를 잘 뺏기는 편이지만,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급속도로 피곤해진다. 요즘 모든 사람들에게 맞는 사람이 되는 걸 포기하고 같은 결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에 집중하려는 것도 이 성향이 한몫했을 것이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좋아하는 걸 어떻게 찾느냐에 대한 답은 어렵다. 다만 비슷한 느낌의 이야기는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양한 활동과 취미의 경험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그중에 인생 끝까지 들고 갈 만큼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때 도움이 된 건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서도 이야기했던, 내 끝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정확히는 내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봤다. 병실에 누워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정말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마지막이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때 딱 세 개의 장면이 떠올랐는데, 바 테이블에서 칵테일을 만드는 모습, 서재의 흔들의자에서 책을 읽는 모습, 나무가 보이는 창가에서 글을 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다른 활동들도 종종 하지만, 칵테일이나 글에 관련된 활동들은 특히나 더 장기적인 관점도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 찾는 데에도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내 마지막 모습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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