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쓰는 두 번째 글이다. 군인에게 주어지는 자기개발비 12만 원으로 몽땅 책을 샀다. 일단 주식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8~9만 원은 주식 관련 책으로 샀고 나머지는 자기 계발과 관련된 책들을 샀다.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이 '침묵을 배우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종종 일단 말을 뱉고 나서 돌아서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대학생일 때 말 때문에 참 후회를 많이 했다. 단순히 분위기를 좋게 해보려고 뱉은 말이지만 반대로 역효과를 부른 경우도 있었다.
나이가 점점 차며 말의 중요성을 더욱더 많이 느끼고 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한 번 뱉은 말들은 단순히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사회생활 및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유시민 작가가 한 유튜브 강연에서 말해준 방식들을 매번 되새기고는 한다. 이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되면 아래의 순서에 따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첫째, 그 말이 옳은 말인가?
둘째, 그 말이 지금 꼭 필요한 말인가?
셋째, 그 말이 친절한 말인가?
여기서 생각해 볼 부분은 셋째이다. 우리가 남에게 불편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다. 단, 그때 말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위의 단계들은 나에게 참 좋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코르넬리아 토프는 이 책에서 '침묵'을 매우 강조한다.
특히나 갈등 상황에서의 침묵의 효과에 대해서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우리는 감정이 상하면 즉시, 반사적으로, 생각 없이 대꾸하고, 언쟁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나 자신이 동의한 것만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상대가 당신을 멍청이라고 하건 말건, 그게 사실이 아님을 당신이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에 조건반사로 되받아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저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
위의 문장들을 읽고 2년 전인 2022년 5월 운동회를 준비하던 그때의 사건들이 머릿속을 지나간다.
2022년은 교사 2년 차 때다. 당시는 2학년 담임을 맡아 8명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수업하며 지내고 있었을 때다. 그러다 4월 말이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당연히 올해도 안 할 것이라 생각되었던 운동회가 교장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추진으로 아주 급하게 추진되었다. 그때 나의 업무가 많기도 많았지만 그중 체육 분야의 운동회가 문제의 씨앗이 되었다. 운동회를 하기로 결정된 날 기준 2~3일 후가 학교 운영위원회였지만 계획서의 제목도 쓰지 못한 상태였다. 나는 2일 만에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고 보고까지 해야만 했다. 나는 체육 업무가 처음이었고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하여 운동회를 하지 않아서 인수인계는 물론이고 에듀파인 시스템까지 바뀌어서 몇 년 전에 한 것의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계획서를 2~3일 만에 완성하라고 했던 그때의 상황이 생각난다.
결국 집에서도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다른 학교 자료들도 찾아가며 구체적인 예산과 필요 물품들을 정리하고 계획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음 날 관리자들께 보고를 드렸다.
교장선생님께서 계획서를 보고 한 말씀을 해주셨다. ' 이번 운동회는 마을 축제처럼 해보는 것이 어때? 학부모, 지역 노인들을 다 초대해서 아주 크게 해보자. 급식도 다 준비해서 우리 학교 밥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리자.' 이 말을 듣고 나와 영양 선생님의 눈동자는 매우 크게 흔들렸다.
2년 차인 나에게 무슨 힘이 있겠나. 결국 교장선생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계획서를 수정하고 내가 준비하고 해야만 하는 일들은 2~3배로 늘어났다.
나는 운동회를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 '아직 신규라서 그래. 신규니까 부족할 수 있지.'라는 말이 들리지 않도록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일단 내 성격도 꼼꼼하게 일 처리하고 완벽하게 끝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운동회를 일주일 앞두고 최종적으로 모든 선생님, 관리자분들, 교직원들이 모여서 담당자인 나의 운동회 관련 최종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순서로 진행이 되는지 또 어떤 부분을 선생님들께서 신경 써주셔야 하는지 걱정되는 부분은 무엇인지 어느 부분을 더 신경 쓰면 매끄럽게 진행이 될지를 말씀드렸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교감선생님께서 모든 교직원들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황ㅇㅇ 선생님은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 '몇 년 전 계획서를 그대로 똑같이 써서 왔다. 종목들이 다 똑같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그 자리는 얼음장처럼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직사회에서 특히나 교직사회에서 교직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런 발언은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자 선을 넘은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내가 얼마나 고생하며 이 운동회를 준비했는지 다 아는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말씀하실까 속에서 부글부글 화가 났다. 처음으로 펜을 잡고 있는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화가 너무나도 많이 났다.
내가 중간중간보고하러 갔을 때 잘 읽어보시지도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하셨고 그래서 교장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다 수용하며 진행해왔었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너무 속상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그 즉시 '교감선생님, 몇 년 전 진행했던 운동회와 달리 이번 운동회는 종목의 절반 이상이 바뀌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이번 운동회는 좀 더 신박하고 재밌는 종목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3분의 2 이상이 새로운 종목들을 생각해서 준비했는데 이것을 보시고 제가 이전 계획서를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하여 교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며 자리를 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24살의 어리고 이제 막 취업한 내가 곧 은퇴를 앞둔 교감선생님에게 아무리 굴욕적인 말을 듣고 화가 났어도 이제는 그때의 나의 언행이 최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나이'라는 것은 경험이고 곧 사고의 깊이의 차이다. 내가 그때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문제는 해결됐을 것이며 어차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다른 동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교장선생님 또한 잘 알고 계셨다.
'말은 곧 그 사람의 품격을 나타낸다.'
나의 품격을 내 손으로 망치지 말자. 이 책을 통해 지나간 그때의 일들을 다시 생각하며 또 하나 배울 수 있었다.
때로는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는 말들보다는 조용한 침묵이 더 강하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모두 말을 가려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