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루어진다.
누구나 아는 교훈이지만, 평소에 쉽게 간과하고 넘어가게 되는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지나온 시간들을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자주 생각하는 말들 중 하나가 작년에 할걸, 5년 전에 할 걸, 10년 전에 내가 왜 안 했지? 이런 후회들이다.
20-30대 젊은이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린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시도를 겁내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그 나이엔 나도 그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듯하다.
인생은 살아봐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미리 알게 되지는 않는 듯하다.
한창 영어공부에 재미를 들이고 있을 20대 중반에는 해외여행을 너무 좋아해서 승무원이 되어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그때 내 나이 이미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후반이 되었을 때라 국내 항공사들은 지원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승무원의 조건은 무조건 예뻐야 한다는 것이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외국계 항공사 특히, 홍콩 케세이 퍼시픽은 나이 제한이 33살인 데다 외모보다는 오히려 튼튼한 체력을 더 중시한다는 이야기가 들려 꽃미모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승무원의 꿈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도전해 볼만한 여지를 주었다. 게다가 승무원이 되면 홍콩에 따로 개인 숙소 아파트를 제공해 준다는 말에 독립하고 싶어 하는 미혼 여성이 듣기에 꿈의 직장 같아 보였다. (20년은 더 된 이야기라 지금의 조건은 알 수가 없지만..)
나랑 같은 학원에서 함께 영어 강사를 하던 갓 서른 된 언니가 케세이 퍼시픽의 모집 요강을 보고는 관심을 보이며 늦기 전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며, 승무원을 키워주는 양성 학원에 가보고 싶은데 혼자 가긴 두려우니 같이 가자며 나를 졸랐다.
나도 내심 관심이 있었던 터라, 그 언니를 따라갔는데 설명을 듣고는 그날 바로 비싼 수강료를 지불하고 덜컥 학원에 등록을 해버렸다. 정작 그 언니는 등록을 주저하다 결국 다니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학원이란 곳은 별 도움도 안 되는 것들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나마 외국 항공사 지원 시 따로 추천도 해주고, 지원할 수 있는 항공사들의 모집 일정을 바로바로 알려주고 인터뷰 요령 등의 정보를 준다는 점 정도?
학원에서 가르쳐준 대로 모집 요강에 맞게 지정된 사진관에 가서 프로필 사진도 찍고, 이력서도 만들었다. 나는 목표가 유일하게 케세이 퍼시픽이어서 우선 그곳에 지원해서 1차 합격을 했다.
2차는 서울에 가서 단체로 영어 면접을 보는 거였는데, 새벽바람을 맞으며 서울 가는 열차를 타고 정장과 힐을 손에 든 채 인터뷰장으로 달려간 기억이 난다. 그곳에 도착한 것부터가 이미 목표를 향한 첫걸음이며 절반의 성공이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러나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확신도 용기도 없던 시기였다. 커다란 건물 강당에 지원자들이 줄지어 서 있기만 했는데도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멋진 여성들도 많고 나만 이렇게 작아 보이는지..
그날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자신 없어하는 모습이 면접관들에게도 보이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런 마인드로는 면접에 붙을 수 없었던 나는 2차에서 탈락한 후 승무원은 내 옷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실로 거대한 벽처럼 느껴지고 나 같은 사람은 엄두도 못 낼 그런 장소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용히 승무원의 꿈을 접고 살아가고 있던 몇 년 후.. 나와 같이 영어학원에 다니며 함께 공부하던 모임의 한 동생이 케세이 퍼시픽 승무원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리 소문 없이 지원했던 그 동생은 나보다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가진 것도, 그렇다고 외모가 특출 나게 화려한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 친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할 수 있다는 열정을 가지고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든지 이룰 수 있다는 간단한 성공 철학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 동생이 나와 달랐던 점은 나보다 훨씬 절실한 마음으로 임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으며, 그 꿈을 이룰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텼다는 것이다.
세 번이나 도전했던 그 동생이 마지막 인터뷰에 임했던 절실함과 간절함은 이야기를 듣는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질 정도였다. 내가 임원이어도 뽑아주겠다 느낄 정도로...
나는 내가 진실로 하고 싶은 것들을 두려움 뒤로 감추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고 빠르게 이긴 사람보다 버티면서 기회를 얻어 이긴 사람이 훨씬 많다
나에겐 여러 가지 변명들로 포기를 미화하며 무수히 흘러 보내버린 기회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여전히, 하고 싶기는 한데 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고 있고, 이제는 정말 나이가 너무 많은 걸까를 두려워하면서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고 있다.
이제는 나 자신의 성장에 집중하며 포기가 아닌 버티기를 해야겠다 생각한다.
마침 읽고 있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기려고 애쓰지 마라. 버티는데 집중하라.
버티면 힘이 붙는다. 힘이 붙으면 이긴다"
이제 내 인생에 한 가지 정도는 버텨서 이룬 성공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