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에 그다지 책을 즐겨 읽는 학생은 아니었다.
중학교 때는 공부 하는 게 재미있었고, 2학년 때 전교 1등도 해보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껍데기 같은 지식만 가지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암기과목은 그저 달달 외우고, 다행히 이해력은 높았던지 수학은 제법 잘해 반대표로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이 내 자리로 와서 수학문제를 풀어달라고 가져오곤 했다. 그렇지만, 학교 공부 외의 상식이나 지식은 별로 없었고, 게다가 내가 미래에 무얼 하고 싶다는 야심차고 커다란 꿈을 꾼 적도 없었다. 겁도 많았던 아이여서 새로운 도전 또한 두려워했던 거 같다. 국어 선생님을 좋아해서 나중에 나도 국어 선생님이 될까? 하는 작은 꿈 정도는 가졌던 적은 있었다. 선생님들의 기대가 컸던 학생이었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예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공부를 왜 해야 하지? 이걸 왜 배워야 하지 하는 마음만 컸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꿈이 없으니, 학교 공부도 재미가 없을 수밖에. 공부 대신 영화나 음악에 푹 빠져들며 감수성 많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때 내가 책을 읽었더라면, 내 삶이 좀 더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유연하던 학창 시절에 교과서가 아닌 이런저런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경험해 보고, 좀 더 다양한 삶을 꿈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책 읽으면 좋겠다는 말은 지나가며 가끔 하긴 하지만 그것도 강요는 하지 않는다.
내가 처음 책이란 걸 읽고 빠져 들기 시작한 건(꽤 늦었지만), 대학 졸업반이었던 스물셋 4학년 즈음이었다. 언니와 함께 방을 쓰던 때, 우연히 언니가 사서 먼저 읽고 다락방에 꽂아 둔 조안리의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을 발견하고 별생각 없이 펼쳐 들었다. 그렇게 아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고 그녀의 에세이에 푹 빠지게 된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다. 그때 내 나이도 마침 스물셋이었고, 지금은 마흔아홉을 훨씬 지나 그녀와 같은 성공은 전혀 이루지 못했지만...
조안리는 미국 유학 후 조선 호텔 홍보매니저, 세계적 여성 경영자클럽 존타의 아시아지역 총재, 세계적 홍보회사 버슨마스텔러의 사장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신 분으로 국내에 홍보라는 개념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홍보맨으로 활약했었다. 최초의 PR 전문회사인 스타 커뮤니케이션을 창립해 굵직한 프로젝트를 여러 번 이끌었던 대단한 여성이시다. 굉장히 건강하고 매력적인 분이셨는데 2년 전 77세 나이로(생각보다 너무 일찍) 사망하셨다는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녀의 이런 대단하고도 화려한 성공 이력뿐 아니라, 어린 나이에 26살의 나이차이가 나는 미국인 신부님과 사랑에 빠져 신부라는 직업을 극복하고 결국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스토리는 정말이지 나에게 엄청난 시너지를 주었다.
조안리라는 여자는 어떻게 이렇게 당차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지? 또 사랑에 있어서도 그 높은 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었을까? 나는 2층 좁은 다락방에 엎드려 2권짜리 에세이집을 읽으며 뱃속깊이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나와는 너무나 달랐던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은 그 당시 자기 계발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에게 마음 한구석에 작은 불씨 같은 변화를 심어 주었던, 내게는 일종의 첫 자기 계발서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분의 사랑과 삶에 대한 열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경이로웠다. 그 후 조안리는 내가 롤모델로 꼽기도 버거운 그저 동경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다음 해에 나왔던 "사랑과 성공은 기다리지 않는다" 역시 출간하자마자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세련된 자태와 곧은 자세, 일을 대하는 능력 등 모든 것이 존경스러웠다. 그 뒤 내 책장에는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책이 많이 꽂히게 되었고, 다락방에서 혼자 책 읽는 걸 즐겼다.(김미경 작가의 책도 이즈음 접했던 것 같다) 책으로 접해보았던 한국 여성 에세이 작가들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고, 내 삶의 근간이 되곤 했다. 특히, 한비야, 김남희 등의 여행 에세이들은 시리즈별로 차례차례 다 사서 읽으며 방구석에서나마 그녀들의 깨어있는 생각들을 함께 느끼고, 도전과 여행을 꿈꾸며, 내 생각을 변화시켰다.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배낭여행을 떠나게 된 것도, 책으로 인한 자극으로 나의 생각들이 서서히 변하게 된 이유가 컸을 것이다.
그들의 삶, 그들의 생각들은, 내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고, 나도 드디어 꿈이란 것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사고가 발전하지 않고 단단해져 버린다. 30년 전의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게 된다. 변화할 수 없다. 위험하고도 아찔한 일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면 젊은이들의 행동을 불편하게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꼰대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 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아이가 생긴 후에는 육아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남편이 실직하여 가계가 기울어질 때는 나에게 힘을 주는 보석 같은 책들을 찾아 읽으며 주저앉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책은 내가 살아가는 좌표가 돼주었다.
그랬던 터라,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책을 원 없이 읽게 해 주었다. 거실에는 TV도 없애고 늘 책으로 둘러싸여 있어 큰 아이는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앉은자리 옆에 책이 수북이 쌓여있을 정도로 푹 빠져 살았다. 매주 도서관에 가서 내 책과 아이들 책을 잔뜩 빌려오고, 그것도 모자라 매달 새 책들을 전집으로 만나게 해 주었다. 새 책이 집에 도착하는 날이면 아이들이 얼마나 들떠했던지...
책을 그렇게나 좋아하던 아들 녀석들이 캐나다에 온 이후로 이제는 책을 멀리하고 핸드폰에 빠져 있는 게 더없이 안타깝다. 내 육아의 목표는 책 좋아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게 얼마나 아쉬운지... 한창 책을 좋아할 때 캐나다로 넘어왔기에, 많이 읽고 싶어 할 때 애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바로바로 책장에 꽂아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이민 초기에는 내가 왜 그렇게 한글책만 읽기를 고집했던지..)
다락방에서 우연히 펼쳐든 책 한 권이 나를 현재의 나로 이끌었듯,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우연히 읽게 된 책 한 권으로 강렬한 자극을 받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게 아주 늦은 나이가 되더라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꾸 눈에 보이게 좋은 책들을 사다 놔야 할 것 같다. 생일날 책 선물을 싫어하는 아들에게도 모르는 척 그 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