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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카페를 다시 열며..

다시 쓰는 꿈 이야기

by 고들정희

네이버 블로그를 한동안 쉬었다가, 최근 다시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주 들어가게 된 네이버 메일함에 몇 년째 활동하지 않는 카페들에서 온 단체 메일이 너무 많이 쌓여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카페 리스트를 훑다가,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어머나… 이건….’


순간, 마음 한구석이 멎는 듯했다.

둘째를 낳은 후 경제적으로 가장 힘들던 시기.

어떻게든 긍정 마인드를 지키고 싶어 작고 조용한 비공개 카페를 하나 만들어 매일 꿈을 쓰고 감사한 일을 적어가며 나 자신을 붙들고 있었던 때가 있었다.

일기는 2010년에 시작해 2014년 캐나다에 이민 온 직후까지도 이어져 있었다.

그토록 간절하게 글을 썼던 곳인데, 나는 한동안 이 카페의 존재조차 잊고 있었다.

가장으로서 실직을 두 번이나 겪으며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남편이 내 글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다. 남편도 함께 글을 쓰고 서로에게 힘을 주자고 했지만, 결국 나 혼자만의 일기로 남긴 했지만.

남편 말고는 아무도 몰랐던 비밀 카페. 오랫동안 들어가지 않아 휴면 상태였던 그 카페를 다시 오픈했다.


“우리의 미래.. 꿈꾸면 이룰 수 있다”라는 다소 낯간지러운 이름의 카페였다.


게시글 목록을 스크롤하는데, 제목만 봐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정말... 내가 이런 글을 썼다고?”


<2011년도에 썼던 일기 제목들>


감사합니다

다시 꿈 만들기

감사하자 또 감사하자

이 또한 지나가리니

미래의 우리 집

생각 바꾸기

기분 좋은 우리 집 상상

1층의 꿈이 현실로..

해외에서 살아보기

조금은 절실하다…


일기를 읽어보니 상당히 구체적으로 썼던 그 당시의 경제적인 현실들…

뭐야…이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었나? 그런데 나 그때 왜 이리 밝은 거야..


믿기 힘들 정도로 간절했던 글들이 그곳에 있었고, 놀랍게도 15년 전 미래를 위해 적었던 꿈들이 고스란히 지금의 내 삶이 되어 있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사는 이 정도의 평범한 일상마저도 그땐 꿈이었구나.

그건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꿈을 쓰면 이루어지며 간절히 바라는 건 얻게 된다는 건, 자기 계발서가 아닌 내 일기만 봐도 알 수 있는 거였다.


나는 당시 [꿈꾸는 다락방]을 읽은 직후였고, 끌어당기는 마음이라도 믿어보자고 결심했다. 가진 것 하나 없었지만, 다행히 멘탈 하나는 강했나 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원하는 것을 적어두고, 말하고, 감사하며 그 마음 하나로 버티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 일기들을 다시 읽는 지금, 그 시절의 내가 왜 그토록 치열하게 적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 기록들이 없었다면, 나는 그때를 제대로 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제 남편에게 오래전 내가 만들었던 우리 카페이야기를 꺼냈다.

15년 전 카페에 있는 내 글들 다 읽었었냐고 물었더니, 남편은 사실 그 당시 글을 한두 번 올리기도 하고, 몇 개의 글들을 읽긴 했지만, 그 후로도 카페를 선뜻 들어갈 맘을 못 먹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어 미안했던 남편은 그런 글들을 보면 못난 자신을 마주하게 될 거 같아서 겁이 났던 거 같다. 당시 가장으로 어떻게 해야 잘하는 건지 정말 몰랐고, 많이 미숙했다고.

그도 나름의 방식으로 이 시간들을 견뎌왔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사실 남편을 위해 글을 썼지만 오히려 그 글로 위로를 받은 건 정작 나였다.


그렇게 잠깐 동안 나를 울렸던 일기들을 읽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벅차올랐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언젠가 꼭 책으로 써야겠어..”


그 시절의 내가 간절히 바라며 쓴 이야기, 하루하루를 견디기 위해 붙잡았던 기록들..

그리고, 그 일부가 지금의 내가 누리고 있는 현실이 된 기적 같은 일들..

이건 누군가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너무나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 오픈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누구든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그 상황의 깊이를 잘 느끼지 못하듯, 나 역시 그때의 어려움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야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시절, 하루하루 아이들과의 작은 행복에만 집중했다. 손수 요리를 해주고, 매일 집 앞 숲과 바다로 데리고 나가고, 거실 바닥에 함께 뒹굴며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가진 것은 부족했지만, 우리는 늘 함께였다.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순간을 사랑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마음만은 어느 누구보다 풍족한 시기였다.

나의 힘든 상황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으니, 친한 친구들도 심지어 가족들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과거의 불행을 계속 곱씹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불행이 반복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 오직 ‘원하는 것’에만 의도적으로 집중했던 것 같다. 나아질 미래만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행복해지기 위해 애썼다. 그렇게 하다 보니, 그토록 간절하게 기록했던 그 비밀카페의 존재조차 어느새 까맣게 잊게 되었다.


나는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있다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을까 싶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 그 시절의 나처럼 막막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불빛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이 책의 결말은 내가 좀 더 성공한 이후로 남겨두어야겠지.

이 책이 언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단단한 목소리로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가 아닐까.


아직은 미완의 이야기이겠지만, 이미 시작된 이야기이며, 아마도 이 글은 내 책의 프롤로그가 될 것이다.

비밀카페의 문을 다시 연 나는, 또다시 5년 뒤, 10년 뒤의 미래를 꿈꾸며 조용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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