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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 도우미

by 고들정희

아직 아무도 눈뜨지 않은 캠핑장의 이른 아침.. 조용히 책을 읽으려 화로옆에 앉았다. 제법 싸늘해서 재킷을 여미고 불부터 피웠다. 따닥따닥 장작에 불이 붙는 소리가 들리는 화롯가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책을 펼쳐본다. 간간히 숲에서 새소리가 들려오는 곳. 이럴 때 잔잔한 음악도 빠질 수 없지..



책을 읽다가 '기분 전환 도우미'라는 단어에 눈길이 머물렀다. 생각과 감정의 중요성을 다루는 문장에서 나온 말이었다. 감정은 생각만큼 중요하다. 생각은 우리가 겪는 모든 결과의 일차적 원인이며, 감정 역시 그 결과 중 하나라고 한다. 그렇다면 좋은 감정을 자주 느낄수록 더 좋은 일이 생기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것이다. 나는 장작을 잔뜩 쌓아둔 모습을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장작과 화로 옆에 앉아 책을 읽는 이 시간은 나에게 최고의 기분 전환 도우미라 할 수 있겠다.


작은 일 하나에 기분이 상해 하루 종일 감정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그럴 땐 꼭 요리하다 손을 베이거나,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 빙빙 돌게 되는 식의 일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6천 가지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놀랍다!) 이 생각들 중 절반만이라도 의도적으로 좋은 감정으로 바꿀 수 있다면, 삶의 방향도 꽤 달라지지 않을까?

사실 아무리 기분이 가라앉아도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1~2분 만에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반대로 의도적으로 감정을 다잡지 않으면, 우울한 기분에 하루를 통째로 내어주게 된다. 그래서, 나만의 기분 전환 도우미 목록을 만들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지금 이 감정을 빨리 바꾸는 것이 오늘 하루를 훨씬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때부터 감정을 의도적으로 전환해 보는 것이다. 여행 가방을 꾸려 어딘가 훌쩍 떠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 같은 대문자 J에게는 특히나.)


그럴 땐, 음악만큼 감정을 빠르게 바꾸는 것도 드물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기만 해도 감정의 흐름이 달라진다. 물론, 우울할 땐 슬픈 노래를 들으면 더 깊이 가라앉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나는 평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곡들을 따로 모아두었다가,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꺼내 듣곤 한다.

Sade(샤데이)의 "Kiss of life" 나 Bee Gees(비지스)의 "How deep is your love"처럼, 전주만 들어도 기분 좋아지는 노래들이 있다. 이런 곡들의 공통점은 사랑이 충만하다는 것. 결국 사랑의 감정을 많이 느낄수록 기분도 더 좋아지는 걸까? 특히 운전할 때 이런 음악을 들으면 효과가 배가 되는 것 같다. 혼자 드라이브할 땐 누가 보는 사람도 없으니,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기분이 확 좋아진다.

또, 집에 있을 때 거실에 놓인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역시 도움이 된다. 한참을 기타 치며 음악에 몰입하고 나면, 나쁜 감정은 어느새 저 멀리 사라져 있다.


가끔은 달달한 것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피곤하거나 감정이 축 처질 때 집에서 가끔 아포가토를 만들어 먹는다. 커피는 무조건 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편이지만, 집에 캡슐머신을 들인 후로는 아포가토 맛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크게 한 스쿱 푸고, 그 위에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을 부어준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로 갈색의 에스프레소가 더해지는 비주얼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금색 스푼으로 천천히 떠먹으면 달콤함과 쌉쌀함이 어우러지며 마음까지 부드러워진다. 그건 아마 지윤 씨가 배스킨라빈스의 베리베리 스트로베리에다 쌉쌀한 녹차 아이스크림을 올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요즘은 내가 소파에 기대어 있으면, 막내가 다가와 "어머니, 아포가토 만들어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이런 이쁜 말을 해주는 우리 집 남자들이 참 고맙다 ㅎㅎ



감정을 바꾸는 또 다른 비결은 "웃음"이다. 이건 정말 효과가 확실하다.

남편과 다투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남편은 그런 날이면 자리를 피하는 편이라, 밖으로 나간다. 자리를 피하는 남편 때문에 오히려 더 기분이 나빠질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일단 TV를 켜고 일부러 내가 웃을 수 있는 예능을 하나 고른다. 억지로라도 나쁜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재미있는 예능을 보고 있으면 우울한 기분은 다 없어지고 어느새 나도 모르게 소리 내 웃고 있다. 미친 여자 같은가? ㅎㅎ 그런데, 사실 웃음은 내 기분을 빠르게 회복시키는 최고의 도우미다.

소리 내서 웃으면, 기분이 빨리 전환되고, 그러다 보면 내 감정도 좋은 감정의 주파수로 되돌아가 있어 남편에 대한 마음도 누그러진다. 심지어 왜 싸웠는지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나가서 그 생각에만 집중하고 돌아온 남편 얼굴은 여전히 며칠 고생한 사람처럼 죽상이다. 결국 며칠 뒤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이야기를 나에게 꺼낸다. 나는 이제 기억도 못하는 그 일을!!

감정소모란 이런 게 아닐까? 나쁜 감정은 빨리 툭툭 털어버려야 한다. 빨래 털듯이 툭툭!!


마지막으로 기분 전환에 정말이지 특효약일 것 같은 것은 애완동물과의 교감이다. 애완동물과 함께 하는 시간은 감정을 부드럽게 만든다. 옆에 따뜻한 애완동물을 쓰다듬는 것 만으로 감정이 고조되고,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저 애완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도 안정되고 풍성해진다. 아직 캐나다에서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언젠가는 듬직한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오기를 꿈꾼다.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 거실 바닥에 편하게 엎드려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그 모습 하나로도 어떤 나쁜 감정이든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다.


네빌 고다드는 "감정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고 말했다. 감정이 현실을 끌어당긴다는 이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좋은 감정은 좋은 일을 부르고, 나쁜 감정은 나쁜 일을 불러온다.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 내 감정 때문이라면, 그만큼 말조심, 감정조심, 생각조심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작은 것들이 감정을 돌보고, 감정을 돌보는 일이 결국에는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라는 걸 요즘 더 자주 느낀다. 무언가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도, 내 하루를 부드럽게 바꿔줄 수 있는 것들.

그 도우미들을 곁에 두는 삶은 분명 조금 더 따뜻하고, 더 단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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