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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디자인의 공진화

새로운 미학적 패러다임을 향하여

by 박신희 교수

디자인의 조용한 혁명

디자인의 역사는 항상 기술과의 대화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산업혁명기의 기계 생산, 디지털 시대의 소프트웨어—이 모든 변곡점에서 디자인은 적응하고 진화해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또 다른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DALL-E, Midjourney, Stable Diffusion으로 대표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디자인의 본질과 실천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이 2021년 이후 등장하면서 디자인계는 초기의 호기심에서 점차 진지한 성찰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AI가 디자이너를 대체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을 넘어, 보다 미묘하고 중요한 물음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의성과 기계의 생성력이 만날 때,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은 무엇인가?


알고리즘과 직관 사이의 섬세한 균형

디퓨전 모델이라는 기계학습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대 AI 도구들은 점진적으로 노이즈를 추가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놀라운 시각적 결과물을 생성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설명은 실제 디자인 과정에서 일어나는 섬세한 상호작용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합니다.

저의 디자인 랩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가장 흥미로운 결과물은 알고리즘의 예측 불가능성과 디자이너의 의도적 개입이 균형을 이룰 때 나타납니다. 이는 마치 재즈 즉흥연주자와 그들의 악기 사이의 관계와도 닮아 있습니다—기술적 숙련도와 직관적 감각의 조화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것입니다.


실무의 현장에서: 사례를 통한 성찰

전통적으로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인간의 미적 취향과 문화적 배경에 기반했습니다. 하지만 Autodesk의 자회사인 "The Living"의 David Benjamin이 주도한 "Bionic Partition"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적 관점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Airbus와 협업한 이 혁신적 프로젝트는 Autodesk의 Project Dreamcatcher 생성형 디자인 시스템을 활용하여 자연의 원리를 디자인에 적용했습니다. Airbus의 엔지니어 Bastian Schaefer와 Peter Sander가 이끈 팀은 슬라임 몰드의 효율적인 연결 패턴과 포유류 뼈의 격자 구조를 알고리즘화하여 디자인에 적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10,000개 이상의 디자인 옵션이 생성되었고, 이들 중 최적의 솔루션은 기존 파티션보다 45% 가벼우면서도 16g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강도를 유지했습니다.

브런치101.jpg Generative Design at Airbus | Customer Stories | Autodesk

이렇게 탄생한 격자 구조 디자인은 언뜻 무작위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한의 강도와 경량화를 달성하도록 정밀하게 최적화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심미적 표현이 아닌, 기능적 요구와 환경적 고려가 자연스럽게 형태를 결정하는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을 보여줍니다.

브런치1화.jpg Generative Design at Airbus | Customer Stories | Autodesk

100개 이상의 3D 프린팅 부품으로 조립된 이 파티션은 항공기의 연료 효율성과 탄소 배출 감소에 기여하며, 기능과 형태의 자연스러운 통합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선보였습니다.


디자인 접근법과 철학: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생성형 디자인(generative design)'을 활용

슬라임 몰드의 성장 패턴과 포유류 뼈의 구조를 알고리즘화하여 디자인에 적용

기존의 엔지니어링 방식을 넘어선 혁신적 디자인 프로세스 도입

디자인 제약 조건:

기존보다 가벼우면서도 강도는 유지할 것

비행 승무원용 점프 시트 두 개를 고정할 수 있을 것

넓은 물품이 통과할 수 있는 개구부 포함

두께는 1인치 이하로 유지

기체에 단 4곳만 부착되는 구조

결과물의 특징:

랜덤해 보이지만 최적화된 격자 구조

3D 프린팅으로 제작된 100개 이상의 부품으로

기존 파티션보다 45% 가벼운 무게

스트레스 테스트와 안전성 조건 충족

항공기 내 3D 프린팅된 가장 큰 객실 컴포넌트

디자인의 영향과 의의:

환경 친화적: 무게 감소로 연간 연료 사용량과 CO2 배출량 대폭 감소

원자재 사용 95% 감소: 기존 밀링 방식보다 효율적인 3D 프린팅 제조

2050년 바이오닉 항공기를 향한 로드맵의 첫 단계

디자인과 제조 방식의 패러다임 전환 선도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부품 재설계를 넘어 항공 산업의 디자인 접근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도로, 생성형 디자인과 3D 프린팅의 결합이 가져올 새로운 디자인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은 이 디자인이 마치 스텐 리지스트와 모홀리-나기가 바우하우스에서 산업 재료의 미학을 재정의했던 것처럼, AI 생성 디자인은 우리의 미적 관점을 확장하여 자연과 기술, 효율성과 아름다움 사이의 경계를 재고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디자인의 본질적 측면(프로세스, 형태, 기능, 제조, 지속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찰을 제시합니다.


디자인 프로세스의 혁신: 전통적인 디자인 방식(디자이너가 형태를 직접 구상하고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목표와 제약조건을 설정하고 알고리즘이 최적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생성형 디자인(generative design)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는 디자인 방법론의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입니다.

형태와 기능의 통합: 형태가 순수하게 미적 고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 효율성과 기능적 요구사항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이는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디자인 원칙의 진화된 형태입니다.

생체모방 디자인(Biomimicry): 자연의 원리(슬라임 몰드와 뼈 구조)를 디자인에 적용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의 중요한 접근법입니다. 이는 수십억 년간 최적화된 자연의 해결책을 인간의 문제에 적용하는 디자인 철학입니다.

제조 기술과 디자인의 융합: 3D 프린팅이라는 제조 기술이 디자인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기존 제조 방식으로는 만들 수 없었던 복잡한 형태를 구현함으로써 디자인의 경계를 넓혔습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 경량화, 원자재 절감, 연료 효율성 향상을 통한 환경 영향 감소는 현대 디자인의 핵심 가치인 지속가능성을 구현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기술적 효율성을 넘어, 이런 도구들이 우리의 미적 감각 자체를 어떻게 확장시키는지에 주목합니다. "효율성"이라는 개념이 이제 단순한 기능적 최적화를 넘어, 예상치 못한 형태적 아름다움과 만나는 지점—이것이 AI 디자인의 진정한 가능성이 아닐까요?

브런치10.jpg 볼프스부르크에 위치한 파에노 | 익스피디아

건축 분야에서 Zaha Hadid Architects의 Patrik Schumacher가 제시한 "Parametricism 2.0"은 AI와 알고리즘적 디자인의 통합을 통해 베이징 다싱 국제공항 등 여러 프로젝트에 적용 및 구현되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승객 흐름 최적화와 에너지 소비 감소를 넘어,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인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의 사례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복잡한 형태, 알고리즘 기반 최적화, 그리고 기능적 효율성과 미학적 혁신을 통합하는 디자인 철학을 공유합니다. 우리가 만든 알고리즘이 인간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형태를 제안할 때,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한 창작자에서 큐레이터이자 해석자로 진화합니다.


이론적 지평의 확장

디자인 이론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스탠포드 대학의 Larry Leifer와 Neeraj Sonalkar가 제안한 "확장된 디자인 사고"는 Donald Schön의 "reflection-in-action" 이론을 AI 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것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이론적 프레임워크가 단순히 기술 활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사고의 본질적 확장을 시사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Margaret Boden의 창의성 분류학—조합적, 탐색적, 변형적 창의성—은 AI와 인간 디자이너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렌즈를 제공합니다. 현대 AI 시스템이 보여주는 조합적, 탐색적 창의성의 역량은 인간 디자이너의 변형적 창의성과 만날 때 가장 혁신적인 결과물을 낳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공명하는 창의성(Resonant Creativity)"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는 인간과 AI의 창의적 과정이 서로를 증폭시키고 변형시키는 현상을 설명합니다. 마치 음악에서 공명이 더 풍부하고 깊은 음색을 만들어내듯, 인간-AI 협업은 어느 한쪽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창의적 영역을 열어줍니다.


교육의 재정의: 기술을 넘어선 감성의 교육

디자인 교육이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요?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과 왕립예술학교 같은 기관들은 AI 관련 커리큘럼을 도입하고 있지만, 저는 이것이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 감수성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의 디자이너들은 코드와 알고리즘을 다루는 기술적 역량뿐만 아니라, 기계가 제안하는 예상치 못한 아이디어를 인식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미학적 감수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는 마치 현대 작곡가가 전통적인 음악 이론과 디지털 음향 기술 모두에 정통해야 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제 수업에서는 학생들에게 기술적 솔루션을 찾기 전에 먼저 철학적 질문을 던지도록 격려합니다. "이 도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이 도구와의 협업을 통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미적 영역을 탐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적 고려의 재조명

AI 디자인의 윤리적 문제는 흔히 저작권과 데이터 편향성의 측면에서 논의됩니다. 미국 저작권청이 AI 생성 이미지의 저작권 보호 불가 입장을 밝힌 것은 중요한 시작점이지만, 더 깊은 질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제기하고 싶은 것은 "미학적 책임(aesthetic responsibility)"이라는 개념입니다. AI 시스템이 제안하는 디자인을 선택하고 구현하는 과정에서, 디자이너는 단순한 기술적 효율성을 넘어 문화적 맥락과 사회적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MIT 연구자들이 지적한 AI 디자인 도구의 서구 중심적 미학적 편향은 이러한 책임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더 나아가, AI와의 협업은 우리에게 디자인의 본질적 가치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합니다. 효율성과 혁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디자인이 사회적 연결,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인간의 정서적 경험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새로운 지평을 향하여

마셜 맥클루언의 '기술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한다'는 통찰은 오늘날 AI와 디자인의 관계에도 적용됩니다. 맥클루언이 『미디어의 이해』에서 주장했듯이,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능력의 연장선입니다. AI 디자인 도구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창의적 능력을 증폭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확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과 AI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기능적 보완이 아닌, '감각 비율의 재조정'과 같은 근본적인 인식론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상력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며

AI와 디자인의 공진화는 우리에게 창의성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찰을 요구합니다. 이는 단순히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상상력이 기계의 계산 능력과 만날 때 열리는 새로운 창의적 영역에 관한, 더 심오한 탐구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AI는 디자인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의 가능성을 확장합니다. 그러나 이 확장된 가능성을 의미 있게 탐색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적 숙련도를 넘어, 새로운 형태의 미학적 감수성과 윤리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직관과 기계의 계산력, 문화적 맥락과 알고리즘적 추상화, 정서적 공감과 데이터 기반 최적화—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디자인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디자인의 역사는 항상 변화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역사의 새로운 장을 함께 써나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인간 디자이너의 창의적 공생이 열어갈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의 세계로,



Referencesㅣ

Boden, M. A. (2004). The Creative Mind: Myths and Mechanisms (2nd ed.). Routledge.

Autodesk Research. (2023). Project Dreamcatcher: Applications in Industrial Design. Technical Report. Autodesk, Inc.

U.S. Copyright Office. (2023, February). Copyright Registration Guidance: Works Containing Material Generated by Artificial Intelligence. Federal Register, 88(42), 16190-16195.

JY Info Editor. (n.d.). Retrieved from https://www.jyinfoeditar.com/

Autodesk. (n.d.). Generative Design at Airbus | Customer Stories. Retrieved from https://www.autodesk.com/customer-stories/airbus-generative-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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