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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랜 Oct 02. 2023

나는 왜 쓰는가?

기여코 다시 쓰는 이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 취업이 실패로 끝났을 무렵이다. 하고 싶은 것에 가 닿기엔 너무 멀었다.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 꿈을 꾸고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 질주했다. 그 때문에 학업과 멀어졌고, 업계에서 막내로 짧게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드니 자연히 멀어졌다.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에 몰두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보다 나은 선택이었지만, 다시 하자니 두려웠다. 부모님과 매일 같이 벌어지던 싸움이 겨우 멈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아침이면 시간 맞는 영화를 조조로 보고 근처 거리를 배회했다. 그러다 선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건물에 붙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갈치 시장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선원이 되어 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다 금세 깨달았다. 여자는 안 받아주겠지? 그럼 뭐가 될 수 있을까?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 할 수 있는게 그것 밖에 없었다. 부산의 대학들을 보다가 고만고만한 사립대학에 편입하기로 했다. 큰 노력 들이지 않고 편입할 수 있었다. 학사 학위 조차 없었던 전보단 4년제를 졸업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학과 리스트를 보며 뭘 잘할 수 있나, 그나마 졸업이 가능한 학과가 어디인가? 그렇게 택하게 된 곳이 하필 문예창작과였다. 그 쉬운 선택이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쓰는 삶, 작가가 되기 위한 삶으로의 터닝 포인트를 만든 것이다. 글쓰기는 끈끈한 접착제가 묻은 듯이 내 삶에 딱 달라붙었다. 그렇게 십수년을 내리 썼다.


문예창작과에 편입한 지 10년쯤 되었을 때의 일이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방과후 학교의 논술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담당 교사가 내가 쓴 자기소개서를 보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그는 내 자기소개서의 글이 너무 훌륭해서 이번엔 미달이 되더라도 꼭 논술 교실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누구나 보면 잘쓴다 할만한 글을 써낼 수 있게 된 것이. (물론 예외도 있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쓰라고 하면 구성에서 퀄리티가 확 떨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작가가 되는 길은 아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어딜가나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임에도, 글쓰기가 내 밥벌이가 되진 못했다.


그 때문에 올초에 글쓰기를 놓았다. 사실 글쓰기를 놓고 한두 달은 머릿속이 심플해지면서 정말 편안했다. 이대로라면 주욱 한 자도 안 쓰고 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문화센터 소설 교실에도 들어갔다. 문화센터란 내게 취미 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글쓰기가 취미가 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당황스러운 것은 글쓰기가 순수히 재미있어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오래된 질문이 계속되었다. 


도대체 왜 쓰는가? 무엇이 나를 글쓰기로 이끄는가?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에 따르면


그러다 내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는 책을 발견했다. 조지오웰의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 오래된 질문이니 언젠가 제목에 홀려 충동 구매했음이 분명한 책이었다. 열어보니 다양한 주제의 산문 중에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글이 눈에 띄었다. (나머지는 쓰는 것과 별 상관 없는 주제의 산문들이었다. 이런...) 그 글 속에서 그가 쓰게 된 여러가지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서 외로운 소년이었다던가) 그 중 조지오웰이 정리한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네 가지를 이곳에 옮겨본다.


1. 순전한 이기심.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은,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어린시절 자신을 푸대접한 어른들에게 앙갚음 하고 싶은 등등의 욕구를 말한다. 이게 동기가 아닌 척, 그것도 강력한 동기가 아닌 척하는 것은 허위다. 작가의 이런 특성은 과학자, 예술가, 정치인, 법조인, 군인, 성공한 사업가 등, 요컨데 최상층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특징이다. 사람들 절대다수는 그다지 이기적이지 않다. 대부분이 사람들은 나이 서른 남짓이 되면 개인적인 야심을 버리고 (많은 경우 자신이 한 개인이라는 자각조차 거의 버리는 게 보통이다) 주로 남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살 뿐이다. 그런가 하면 소수지만 끝까지 자기 삶을 살아보겠다는 재능 있고 고집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작가는 이 부류에 속한다. 나는 진지한 작가들이 대체로 언론인에 비해 돈에는 관심이 적어도 더 허영심이 많고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2. 미학적 열정.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어떤 소리가 다른 소리에 끼치는 영향, 훌륭한 산문의 견고함, 훌륭한 이야기의 리듬에서 찾는 기쁨이기도 하다. 자신이 체감한 바 나누고자 하는 욕구는 소중하며 차마 놓치고 싶지가 않다. 미학적 동기가 상당히 약한 작가들도 많긴 하지만, 팜플렛이나 교과서를 쓰는 저자라 해도 비실용적이지만 매력과 애정을 느끼는 낱말들과 문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글꼴이나 여백 같은 것들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는 수가 있다. 철도 안내책자 수준을 넘어선다면, 어떤 책도 미학적인 고려로부터 딱히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3. 역사적 충동.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를 말한다. 

4. 정치적 목적.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말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동기는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 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한겨례 출판 293~294) 


자기 삶을 살고자 하는 고집. 자신이 체감한 미학적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욕구. 이런 부분들이 공감이 가는 구절이었다. 그러나 그 산문에서 가장 공감가는 부분은 모든 작가의 "글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이다. 어떤 이유를 갖다댄다해도 하필이면 왜 굳이 글쓰기인가?의 답이 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지금 쓰는 이유


올해 두 번째 소설의 초고를 마무리하고 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사실 쓰기 시작해서 미완으로 '작가의 서랍'에 저장해 둔 것은 몇달 전이었다. 시작은 했으나 끝을 맺지 못하던 이 글의 끝은 어제 마무리한 내 소설의 초고에 관한 이야기다.


올해 쓴 첫 번째 소설을 문화센터에서 합평받았다. 사실 합평 전부터 소설이 너무 좋았다는 한 수강생 분의 개인톡을 받았다. 진심어린 찬사를 받아 본 게 얼마만인가 싶었다. 얼떨떨한 마음에 수업을 갔고, 물론 비평의 대상이 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잘 쓴 글이라는 반응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또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첫 소설을 쓰면서 느낀 점은 글쓰기가 완전한 취미가 되긴 글렀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되고자 한 시간 동안 단련된 집요함이나 진지함 같은 것이 도무지 가볍게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취업을 한 상태로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어 성에 차게 쓰지도 못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서가에 꽂힌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연암 평전> 몇 년 전 우연히 알게된 역사 속 흥미로운 인물과 연암 박지원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쓸 때 봤던 책이다. 문득 깨달았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다는 것. 당시 그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가공하기 위해서 입혔던 설탕을 벗겨내고 알맹이로 글을 써보자 싶었다.  글쓰기가 인생이었던 연암의 이야기를 통해서 지금 내가 쓰는 이유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내 초고가 그 핵심에 접근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내가 왜 쓰는지 그 밑바닥은 미스터리다. 

(조지오웰의 견해에 백퍼센트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 쓰는 이유는 알겠다. 쓰고 싶은 것이 남았다.

음... 그게 문제다. 기여코 다시 방황을 시작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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