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발레리나이자 현직 방송인(?), 유튜버, 의류 브랜드 대표인 윤혜진씨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발레리나의 삶이 '챕터1'이라면 지금의 삶은 '챕터2'라 생각한다." 어떤 인터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 이후 이어진 인생에 대한 그녀 나름의 통찰도 잊었지만, 인생에 챕터가 있는 것 같다는 그 말만큼은 잊혀지지 않았다. 올초 정말로 글쓰기를 접고 다른 삶을 살겠다 결심하면서 나는 그녀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그래, 다른 챕터로 나아가자. 미련 갖지 말자. 할 만큼 했잖아.
"글은 어떻게 쓰고 있어요?"
그분의 질문에 정신이 번쩍 났다. 지난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스토리 판매 플랫폼 '스토리움'에 올려둔 내 드라마 미니시리즈 대본과 기획안이 추천스토리에 뽑혔다. 나름 인정 받은 것이지만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라 나를 크게 흔들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거기서 주는 혜택은 다 받아보자 싶어서 컨설팅이라는 것을 받았다. 전직 방송사 피디이자 현직 제작사 피디인 그 분께서 내 작품의 컨설턴트가 되었다.
스토리에 대한 첫 조언을 듣고 나름 수정해서 다시 만난 자리. 그의 회사로 향하면서도 한 시간이면 충분히 끝나겠지 싶었다. 일하느라 글 쓸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서, 본격적인 수정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피드백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거기까지 불러낸 이유도 일 때문에 오직 오전에만 시간이 나는 나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스토리움의 컨설팅 절차상 안 만날 수도 없는 노릇일 테고.
그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내 글쓰기에 대한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들켰구나, 생각했다. 나름 표현을 골라 에둘러서 그러나 내용만큼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상 올해는 못 쓰고 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 쓰기를 지속할지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10년 넘게 쓰고 있어서 고민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내 말을 조용히 듣던 그가 말했다. 컨설팅 받는 작품을 소설로 써라, 영상 제작을 전제한 장르 소설로 써서 그런 류를 출판하는 회사를 통해서 책으로 내보는 것이 좋겠다, 희귀한 아이템이라 희소 가치가 있지만 제작비가 많이 드는 설정이고, 현재는 업계가 불황이라 편성이 어렵다. 그러나 2, 3년 뒤에 회복될 테니 소설로 스토리의 가치를 증명하며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 라고 말했다.
오래 전에 압구정의 한 사주 카페에서 신점을 본 적이 있다. 친구로부터 꽤 유명한 역술가를 소개받았다. 처음에 그는 내가 작가로 성공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 주변 상황이 바뀌어서 그에게 AS점을 보러 갔을 때 이런 말을 했다.
"평생 다른 직업을 가지고 꿈의 언저리를 맴도는 지망생의 팔자네요."
나는 순간 화가 울컥 치밀어서 "전에는 성공한다면서요."라고 쏘아붙였다.
이후로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역술가의 말처럼은 살지 않기 위해서 애써온 것 같다. 처음엔 있는 힘껏 꿈꾸는 방향으로 온 힘을 다했고, 나중에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또 달렸다. 어쩌면 기한을 정하고 뒤도 안 돌아보려 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에 글쓰기가 취미가 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문화센터 소설 교실에 등록을 했다. 일종에 나에 대한 실험이었다. 오랜만에 소설을 쓰고, 부모님뻘의 문우들과 합평하면서 가벼운 글쓰기에만 있는 감정이나 느낌 같은 것을 느꼈다. 일상에 숨구멍이 되어주는 청량함이랄까, 문장을 꼭꼭 눌러담는 재미, 완성해 나가는 희열감. 20대 초 스스로 왜 창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문득 떠올랐다.
12년 간 극본을 써왔는데 극본으로 뚜렷한 결과를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가능성 없는 길은 이만 접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2년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음을 느꼈다. 스토리움을 통해 컨설팅을 받으면서 특히나 그랬다. 1차 컨설팅 때 피디로부터 "대본의 리듬감이 좋다. 이 정도면 아주 잘 쓰시는 거다.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조금 놀랐다. 사실 30대 초반부터 어딜 가서 글을 보여주든 글 참 잘 쓴다 소리 들어왔지만, 업계 사람으로부터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본 칭찬을 듣게 된 것은 처음이어서다. 이 칭찬을 5년 전에만 들었어도 내 선택이 달라졌을까 생각했다. 같은 작품으로 웹툰, 웹소설의 제의를 받았을 때도 내심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놀랐다. 이 제의 또한 5년 전이었으면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12년 간의 결과로 너무 미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극본 한 자 쓰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내게 일어난 일들이라기엔 글쎄... 묘하고 아이러니한 타이밍의 농락 같달까. 극본 쓰는 중에는 내게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단 소설로 준비해보라는 피디의 말은 새로운 길처럼 느껴졌다. 이미 소설로 써보자는 제의를 받았던 터였고, 취미로 소설을 써볼까 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온힘을 다해 쓴 이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소설로 쓰며 다시 꿈의 궤도로 돌아가기 위한 칼을 갈아보라는 그 말이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지망생으로 10년이 넘어서 이 길에 대해 고민한다는 내게 굳이 다시 해보라는 그 피디의 안목을 당분간 믿어보고 싶었다.
정말로 압구정의 그 역술가 말처럼 나는 지망생의 팔자인 것일까?
문득 지난 1년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원하는 서울의 학군지에서 전임 강사로 취업해서 원하는 페이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꽤 안정적인 대형 학원이다. 그러나 강사로서는 고민만 더 깊어져간다.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미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 전에 퇴사할 의사를 밝혔다.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학원에서는 1년만이라도 더 있어 달라고 했다. 1년 간 더 잘해보자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했지만, 전보다 더 무거운 고민들이 다가온다. 그런 와중이라 더 고민이 된다. 평생 나를 믿으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사실 1년 동안 한국 드라마를 한 편도 보지 않았다. 시간상 조금은 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냥 보기가 싫었다. 드라마 보기를 너무 일처럼 해왔고 매우 지친 상태였다. 지금도 체력상 업무가 많아서 지친 상태다. 또다시 밸런스의 문제가 내게 주어졌다. 40대가 되면서 미루어 왔던 현실적 문제들을 스스로 짊어졌다. 금전적인 문제, 나잇값의 문제 등 전보다 과중한 현실의 무게를 견디면서 꿈꾸는 삶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