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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May 19. 2024

숨어서 깊이 숨 쉬는


배를 타고 작은 섬으로  향하는 날이다. 이틀간 필요한 소지품만 작은 가방에 담고 큰 짐은 차에 넣어 주차장에 남겨두었다. 늦은 오후에 작은 섬의 북쪽 부두에 도착했다. 오늘밤 지낼 숙소에 가기 위해 배에서 내려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수레에 몸을 실었다. 섬의 남쪽 끝까지, 가로 6km와 세로 9km 크기의 섬을 감싸고도는 비포장도로의 딱 절반만큼 거리다. 수레가 돌이 박힌 비포장 도로의 먼지 자욱한 흙길 위에서 덜컹거린다. 걸터앉은 철제 의자에서 튀어 오를 때마다 엉덩이와 머리를 번갈아 감쌌다. 시작과 끝이 어디든 영원히 흔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남쪽 해변에 도착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한다. 바다 너머로 본섬의 불빛이 보인다. 수레의 진동이 멈췄다. 내려선 땅이 여전히 흔들리는 것 같다. 짐과 사람을 내린 오토바이는 빈 수레를 끌고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졌다.


희고 높은 벽으로 꼭꼭 숨겨진 작은 집 앞에 섰다. 정면의 낡고 큰 나무 대문을 사이에 두고 작은 창문이 왼쪽에 세 개, 오른쪽에 두 개 있다. 묵직한 나무문의 손잡이를 두드렸다. 누군가 문틈으로 내다본다. 키 큰 여자가 미소 지으며 문을 열었다. 문 안의 네 벽으로 둘러싸인 집 마당에 커다란 코나르 나무 한 그루가 넓적한 잎사귀를 풍성하게 늘어뜨리고 있다. 대문 오른편에는 옥상과 연결된 나무 사다리가 있고 화장실과 방, 부엌이 이어진다. 그 맞은편에는 손님방 두 개가 나란히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별채는 집주인이 머무는 곳이다. 기둥 위로 발을 얹어 그늘을 드리운 안마당에는 동그랗게 몸을 말아 앉을 수 있는 그네 의자, 기다란 야외용 소파와 티 테이블이 있다. 주인을 따라 부엌 앞의 커다란 나무 탁자에 앉아 손님을 위해 준비한 따뜻한 차이를 마신다. 주인이 이 섬과 숙소에 대해 처음에는 영어로, 나중에는 이란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높낮이 변화 없이 쉴 새 없이 읊조리는 걸 보면 손님이 올 때마다 되풀이해서 들려주었을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니 물이 안 나올 수도 있다며 주의를 준다. 해마다 섬의 빗물과 지하수가 점점 줄어들어 최근에는 본섬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고 한다.


좁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 화장실은 넓고 천장이 높았으며 조그맣게 깨진 타일 조각으로 흰 벽을 장식했다. 수세식 변기 밸브를 내려보니 역시 물이 없다. 한쪽 통에 모아둔 물을 조금 떠서 손을 씻고 그 물을 변기에 부었다. 먼지가 쌓여 흐트러진 머리를 다시 묶으려고 거울 앞에 섰는데 내 눈썹만 보인다. 손을 씻을 때도 세면대가 팔을 올려야 할 만큼 높았다. 키가 큰 집주인에게는 딱 맞겠다. 테헤란에서 나고 자란 그녀는 농구선수였다. 그런데 국제 대회에 나갈 때도 모든 신체의 부분과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는 복장 규정을 아무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했다. 그게 괜찮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끝내 참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 멀리 간다.


탁자로 돌아가니 집주인의 얼굴이 그새 환해졌다. 알고 보니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테헤란의 같은 장소에서 각자의 연인과 자주 스치던 인연이었다. 함께 아는 친구들 이름을 떠올리며 반가움을 나누는 둘을 남겨두고 아나와 나는 오늘 머물 방으로 향했다. 하얗고 깨끗한 침대보 위에 씻지도 않고 누웠다. 물이 부족한 이곳에선 어쩔 수 없다.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도 양치질만 해야겠다. 물이 남으면 얼굴도 닦고. 아나는 옆에 앉아 테헤란의 아마드와 통화 중이다. 이 숙소는 따로 예약받지 않고 알음알음 소개받아 찾아오는 곳인데, 먼 곳에서 온 손님이 있다며 어젯밤에 집주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는 건 너무 외롭지 않을까?” 심각한 표정으로 아나가 물었다. ”친구도, 가족도, 아무도 없이, 머나먼 섬에서 혼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잠시 숨을 곳을 찾아 숨을 돌리는 편이 조금 덜 외롭고 덜 고통스러운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다정한 아나는 슬퍼할지도 모른다.

밖에서 주인이 방문을 두드린다. 이웃집에 부탁한 특별한 생선 요리가 도착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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