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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하 Mar 16. 2024

《오토파지: ‘먹기’의 파괴적 창조성》

큐레토리얼 실천으로서의 포용과 혁신

어떻게 생명사랑이 폭력사랑과 공존할 수 있는가? 
보호와 정복 사이의 기이한 연결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제인 베넷, 『생동하는 물질』




《오토파지: ‘먹기’의 파괴적 창조성》은 인체 내 생물학적 메커니즘인 '오토파지autophagy'라는 개념을 이론적 가설로 삼은 일종의 실험으로, 상위의 큐레이토리얼 프로젝트 《큐레이터 실천으로서의 포용과 혁신》의 일환으로 진행되었다. 이 상위 프로젝트는 한국과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7명의 독립 큐레이터가 주어진 다섯 가지 키워드(협력cooperative, 임파워링empowering, 공정fair, 개방open, 서포티브supportive) 중에서 하나의, 혹은 복수의 키워드를 선택하여 독립적으로 연구 혹은 기획를 선보이는 큐레토리얼 프로젝트이다. 나는 ‘임파워링’을 선택하였고, 이를 '오토파지'라는 개념과 결합하여 임파워링의 진정한 본질과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힘을 실어준다는 것의 전략으로써의 의미, 그리고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했다. 




권한을 부여하는 사람과 권한을 받는 사람 사이의 역학


‘오토파지’라는 이론을 설명하기 전에, 내가 선택한 키워드인 임파워(링)empower(-ing)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하려 한다. 이에 대한 정의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옥스퍼드 사전은 이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하도록) 권한을 부여하여 자신의 삶이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더 잘 통제[1]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 empower somebody (to do something) to give somebody more control over their own life or the situation they are in”고 기술하고 있으며,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 누군가에게 법적 권한을 승인 또는 위임하거나 부여하는 행위 to authorize or delegate or give legal power to someone."고 정의하고 있다. 임파워링은 권력을 통제하고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전략으로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특히 기업의 조직 경영론에서 많이 언급된다. 구체적으로, 조직경영론에서의 임파워링은 ”조직자원에 대한 형식적 권한의 소유 또는 통제”로 사용되거나  “주로 권한을 공유한다는 개념에 중점을 두는 것”[2]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임파워링 개념은 기업들이 자율성을 가진 개인의 권한을 증진시키고 주인의식을 함양하여 노동자들의 에너지 수준과 사기를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 기업들이 자율성을 가진 개인의 권한 증진과 주인의식 함양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는 전략적인 방식으로 임파워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면을 고려해보면,  "권한 및 자원을 공유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임파워링을 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3]

기존 시스템 내에서 권력, 권위, 자원을 공유한다는 개념은 과대망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생각이다. 임파워링의 정의는 누군가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것(힘을 실어주는 것)은 그 전제 조건에 권한을 부여하는 자(힘을 주는 자), 그리고 권한을 부여 받는 자(힘을 받는 자)라는 이분법적인 위계질서를 상정한다. 또한, 권한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타인의 권한을 박탈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는 연구 과정에서 앞서 기술된 조직경영론에서 말하는 자율성을 가진 개인의 권한 증진과 주인의식 함양이라는 낙관적인 접근은 다소 피하고자 했다. 오히려 이 키워드가 가진 내재적인 이슈를 분석하고 포용과 혁신이라는 대주제 아래 임파워링의 일반적인 방법을 뛰어넘거나 가로질러 임파워링이 도달하고자 하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 혹은 전략으로써 ‘오토파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석사 논문 「외래종과 주권(Invasive Species and Sovereignty)」을 작성하면서 임파워링이 지닌 내재적인 문제와 유사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 질문을 요약하자면, ‘권한을 주는 자와 받은 자의 이분법적인 위계질서, 타인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 더 나아가 타인의 죽음 ─ 그것이 적극적으로 다른 존재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든, 법적인 죽음이든, 국민으로서 성원권 부여해주지 않는 것이든, 혹은 적극적으로 살해되지 않아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정치적 위험에 놓인 잠재된 죽음 ─ 을 행하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즉, ‘어떤 이를 죽이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이는 왜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와 같은 질문을 해왔다. 이에 대한 질문은 나의 논문 심포지움의 심사 위원 중 한 명이었던 아예샤 하미드(Ayesha Hameed)로 부터 “왜 민족국가가 생물적 차원에서 주권을 확언해야 하는가?”이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논문에서 발전되며 일부 해결되었다. 

이러한 질문, 즉, ‘왜 민족국가가 생물적 차원에서 주권을 확언해야하는가?’에 대한 일부 해결된 답변은 논문[4]으로부터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제쳐 두고, 다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돌아간다. 민족국가의 주권이 영토라는 지리적인 경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계절에 따라서 이동하는 철새나, 조류에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 바람이나 물의 흐름에 따라 이동하는 씨앗처럼 하나의 ‘고향homeland’와 명확하게 연계되지 않은 종들은 어떠한가? 혹은 애초부터 ‘고향’, ‘제 자리’라는 것이 없는 존재들은 어떠한가? 혹은 ‘제 자리’라고 일컬어지는 ‘자리’에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경제적인 목적으로 이주당한 존재들은 어떠한가?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외래종’이라는 매개자(종)들을 통해 이러한 존재들의 복수의 역사를 서로 엮거나 풀며 그들의 주변을 살펴보아왔다. 이에 대한 연장선에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제 자리’에서 벗어나 더럽다고 여겨지는 외래종들을 메타포적으로 접근한다. 무니페리(Mooni Perry)의 <빈랑시스 檳榔西施: 챕터 2>에 등장하는 ‘빈랑’과 빈랑산업 종사자,  출라얀논 시리폰(Chulayarnnon Siriphol)의 <ANG 48>에서 보이는 반인반달팽이인  ‘앙수말린’과 , 알라 아부 아사드(Alaa Abu Asad)의 에세이에 등장하는 ‘호장근Japanese Knotweed’, 신재연(TJ Shin)의 에세이에서의 ‘민정’은 이러한 맥락에서 실험되는 일종의 또다른 하위 객체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리적 이동, 누군가에게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필연적으로 전제되는 위계질서 내에서의 위치지어지는 이들에 대한 실험이며, 동시에 이들을 위계질서로부터의 탈출자이자 또 다른 하나의 배치 모델assemblage의 행위자actor로 제안한다.




오토파지 그리고 먹고 먹히는 자기생성조직


이제 임파워링이 지닌 내재적인 문제점이 아닌, 임파워링의 근본 목적으로 돌아가본다. 즉, 이제 논의는 ‘누가 권한을 부여하는가’라는 문제보다 임파워링이라는 단어를 경유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인 개체의 자율성, 그리고 독립성의 문제로 돌아간다. 우리가 잠정적으로 생각했던 임파워링이 지닌 이분법적 위계가 아닌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각 개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 동시에 이 불협화음하는 끔찍한 동시대에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한 채 타인과 마주하며 살아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수 많은 의견들, 수 많은 문제와 불화들에서 생기는 간극, 봉합되지 않는 상처들. 우리는 여전히 분리되어 있고, 연결될 수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분리된 상태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며 동시에 자율적일 수 있는가? 나는 이에 대한 물음에 대한 일종의 전략 혹은 방법으로서 ‘오토파지’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오토파지(Autophagy, autophagocytosis)는 그리스어 auto-,"자신" phagein, "먹다"에서 유래하였으며,  자가소화작용라고 불리며 조절 과정에서 불필요하거나 기능하지 않는 세포 구성 성분을 자연적으로 분해하는 파괴 기제이다.[5]  칠레의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인 움베르또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와 프란시스코 바렐라 (Francisco Javier Varela García)는 ‘자기생성(Autopoiesis)'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는데 이들의 자기생성 조직에 대한 정의는 내가 후술하고자 하는 ‘오토파지’의 개념적 접근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그 개념을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움베르또 마투라나와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이론은 “생물은 무엇인가?”, “어떤 것이 살아있는 것인가?”[6]라는 질문에 대한 탐색에서 출발한다. 그들에 따르면 ”살아 있는 존재들은 자율적이고, 규정된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것들이 그들에게 속하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경계선이 있음”[7]을 바탕으로 한다고 말한다. 주권의 문제에서 그리고 임파워링의 문제에서 누군가를 죽이거나 잠재적인 죽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 환경에 던져놓는다고 말할 때 결국 ‘살아있음'을 말하는 것은 자율적이며 동시에 규정된 한계(세포막 등)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이는 자기 자신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특징을 제안하였으며 이런 뜻을 내포한 단어로 생물을 정의하는 조직을 자기생성조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8]

이들이 말하고 있는 자기생성조직 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생명체를 조직론적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생체 시스템 내의 자기 생성과 자기 유지를 위해 더 많은 구성요소를 생산하는 데 쓰이는 자체 구성요소 생산 등을 통해 조직구조를 유지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자율신경계는 자생적이고 스스로 창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생적이며 창조직인 생체 내의 매커니즘 중 하나인 ‘오토파지’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 때, 오토파지의 매커니즘에서 행해지는 ‘먹기’의 의미는 즉, 먹는 것은 세포와 조직 차원에서 자가포식과 자가포식 양쪽의 자생적이고 자기생성적인 과정을 지원하는 수단으로 이해될 수 있다.




‘먹기’ 전략으로써의 오토파지


‘먹는 것’은 음식을 먹고 영양을 섭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먹는 것은 인간 생물학의 근본적인 측면이며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인간은 모든 동식물과 마찬가지로 에너지와 영양분의 원천으로서 음식을 필요로 하며, 먹는 행위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먹는 것은 단지 생물학적인 필요로 해석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이며, 사람들이 먹는 방법과 그 행위의 의미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 믿음, 그리고 관행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음식 금기가 종종 특정 문화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과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주장했다. 이 개념은 음식 금기와 다른 형태의 음식 규제가 여성에게 영향을 미치고 성 불평등을 강화하며, 이러한 관행이 여성을 통제하고 예속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음식 금기와 다른 형태의 음식 규제가 종종 여성의 신체와 행동을 통제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과 권력 역학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된다고 주장했다.[9] 예를 들어,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엄격한 음식 금기와 식사 제한을 따를 것으로 예상될 수 있고, 만약 그들이 이러한 규칙들을 위반한다면 처벌을 받거나 오명을 쓸 수도 있다. 게다가, 음식 금기와 식사 제한은 여성의 생식력과 생식 건강을 통제하고 그들의 자율성과 대리권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먹는 것은 사회적, 문화적 규범과 관행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 먹는 행위는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주장하는 방식이며, 세상에서 자신의 입장을 협상하고 중재하는 방식이다. 먹는 행위는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오토파지(autophagy)' 와 '먹기'의 개념은 '임파워링'이라는 틀 안에서 정확히 어떻게 정교해질 수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오토파지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자기 자신’을 의미하는 auto-와 ‘먹다’를 의미하는 phagein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오토파지는 ‘자기를 먹기’를 의미하며, 자가소화작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불필요하거나 기능하지 않는 성분을 제거하는 것은 세포의 자연적이고 조절된 메커니즘이다. 앞서 논의한 바와 같이, 먹는 행위는 개인과 집단이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오토파지의 과정은 신체가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고 스스로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오토파지의 개념, 즉 세포가 자신의 세포 성분을 ‘먹거나’ 분해하는 과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먹는다’의 개념과 연장선을 그려 볼 수 있다. 

먼저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자신의 작용력을 발휘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오토파지의 과정에 관여함으로써, 세포는 그들 자신의 구성요소를 분해할 수 있고, 이러한 구성요소를 그들 자신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를 주장하고, 더 큰 유기체에서 자신의 위치를 협상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자기의 테크놀로지』에서 푸코는 “자기란 자기란 재귀대명사이며,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auto란 ‘동일성 the same’을 의미하며, 동시에 자기 정체성의 개념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 후자의 의미는, 질문의 초점을 ‘자기란 무엇인가?’에서 ‘내가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토대는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는다”고 말한다.[10] 이러한 맥락에서 오토파지는 자기 결정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토대이자, 일종의 방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토파지는 일종의 방법으로써, 세포 등의 물질들을 재활용하고 재사용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내부 구조를 ‘먹는다’는 것은 자기 능력과 자기 결정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유기체 내의 기존 권력구조와 사회규범에 도전하고 전복시키는 방식으로도 볼 수 있다.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오래되거나 손상된 성분들을 분해하고 재활용할 수 있게 해주고, 새롭고 건강한 성분들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방식으로,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유기체에 대해 ‘좋다’ 또는 ‘나쁘다’고 여겨지는 것과 유기체의 일부로서 ‘가치가 있다’ 또는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지시하는 유기체 내의 기존 권력 구조와 사회 규범에 도전하고 전복시킬 수 있게 한다. 오토파지의 과정은 세포가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하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세포가 유기체 내의 기존 권력구조와 사회규범에 도전하고 전복시키는 방식으로 '먹는다'는 개념과 관련될 수 있다. 오토파지의 과정에 관여함으로써, 세포는 그들 자신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할 수 있고, 그들 자신과 더 큰 유기체, 조직, 세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가능성과 대안을 만들 수 있다.




오토파지와 임파워링 사이의 연관성을 탐구하면서, 우리는 세포가 불필요하거나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구성 요소를 사용하여 먹고, 파괴하고, 재활용하고, 생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상처, 갈등, 불협화음을 포용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자기 결정의 방식, 그리고 권력구조와 사회규범에 도전하고 전복시키는 방식으로써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오토파지 전략을 수행하는 알라 아부 아사드, 무니 페리, TJ 신, 출라얀논 시리폴 등 네 명의 아티스트가 선보이는 작품은  자기 결정과 권력구조, 사회규범과 위계질서에 도전하며,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식민주의, 성차별 등의 문제와 함께 새로운 관점과 이해를 전개하는 수단으로, 진정한 임파워링을 향한 여정을 강조한다. 이들의 예술은 위계로부터의 또 다른 하나의 배치 모델(assemblage)의 행위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임파워링의 여정, 불을 켜지 않고도 밤을 건너는 신비한 반란과 풍요로운 삶을 창조하며 세상에 대한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길을 상상하도록 한다.




[1]  Conger, Jay A., and Rabindra N. Kanungo. “The Empowerment Process: Integrating Theory and Practice.” The 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3, no. 3 (1988): 471–82. https://doi.org/10.2307/258093. 473.

[2] Ibid, 473.

[3] Ibid, 473.

[4] Eunha Chang, “Invasive Species and Sovereignty:Japanese Knotweed in the United Kingdom through Cooking Sections” (Master’s dissertation., 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2021).

[5] Kobayashi S (2015). “Choose Delicately and Reuse Adequately: The Newly Revealed Process of Autophagy”. 《Biological & Pharmaceutical Bulletin》 38 (8): 1098–103. doi:10.1248/bpb.b15-00096. PMID 26235572.

[6] 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 『앎의 나무』, 갈무리, pp.49-64.

[7] Ibid.

[8] Ibid.

[9] Mary Douglas, Purity and Danger: An Analysis of Concept of Pollution and Taboo, Routledge Classics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5), 37.

[10] 미셸 푸코, 『자기의 테크놀로지』, 이희원 옮김, 서울: 동문선, pp.48-49. 




본 원고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제예술공동기금사업『2021-2022 한국-네덜란드 교류 협력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큐레토리얼 실천으로서의 포용과 혁신 : 한국, 네덜란드 큐레이터를 위한 5가지 전술'의 일환으로 진행된 큐레토리얼 프로젝트 《오토파지: ‘먹기’의 파괴적 창조성》의 큐레토리얼 스테이트먼트로 쓰여졌다. 영문 원고와 일부 작품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eautifulsou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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