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팀장들은 T여야 할 때 F가 되나
나는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관련 자료를 읽는 것은 꽤나 좋아한다. 일상에서 다양하고도 정형화된 성격 유형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인 것 같다. 친구나 가족 사이에선 늘 익숙한 성격들을 마주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또 직장에선 말이 다르다.
직장에 대한 낭만적인 착각을 간직한 백수로 살던 것이 벌써 반년 전이다. 이 브런치를 제대로 재정리할 새도 없이 갑자기 새 직장에 출근하게 됐고, 그 뒤로는 내 세계보다는 직장의 메타버스에 관심을 쏟으며 살았다. 다시금 직장인들을 마주치니 확실히 사회 초년생 시절과는 내 시선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중엔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적인 부분도 있었는데, 그 애매모호한 지점을 MBTI의 정의를 빌어 'T'와 'F'로 명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피드백할 때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우리는 많은 차이점을 목격한다. 헌데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좋은 관리자라면 피드백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나의 성격적 요소를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나의 성격에 따라 내 피드백 방식이 좌우되지 않도록 컨트롤해야 한다. "내가 T여서, 혹은 F여서 이 피드백에 이렇게 접근하고 있나?" 이런 자문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 팀장의 예시다. 그는 T여야 할 때 F가 되고, F여야 할 때 T가 되는 아주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업무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줄 때, "이러이러한 이유로 이 업무의 성과가 굉장히 좋네요! 잘하셨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내용을 "이 업무의 성과를 보니 내가 기분이 너무 좋네요!"와 같이 말하곤 한다. 나는 이걸 팀장의 '선택적 F'라고 표현한다. 업무의 성과는 사전에 정의된 기준에 기대어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된 평가가 올바른 피드백이 된다. 성격상 T들이 더 잘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업무 영역에서는 보통 이렇게 T 성격에게 조금 더 편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사업하기엔 I보다 E가 더 편하듯, 업무에 있어 T적인 면모는 크게 도움이 된다.
반대는 어떤가. 성과가 노력에 비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 팀장은 이런 때에만 갑자기 T로 돌변한다. "일단 정말 너무 고생하셨습니다."와 같은 피드백이 먼저 튀어나와야 할 때에 "정말 미안하지만, 확실히 할 건 확실히 해야지. 성과가 안 나온 건 맞아요"라고 정색하는 것이다. 왜인지 평소엔 없던 그 안의 T가 튀어나와 냉철하고 멋진 관리자 코스프레를 한다. 본래 업무를 잘했을 때보다 못했을 때에 더 그 이유를 파악하기 쉽다. 구성원이 성공했을 때보다 실패했을 때 관리자가 쓸데없이 더 냉철하고 객관적인 척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쉬울 때 T의 면모를 발휘하기 쉬우니 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이런 팀장이나 상사가 없는 곳이 있겠냐마는, 직장 생활에서 잦은 감정 노동의 주제이자 애매한 표현을 빚어내는 것이 바로 '피드백'이다. 특히 중요한 것이 중간 관리자들의 피드백이다. 구성원들의 의견 모두가 소중한 피드백들이지만, 포지션에 따라 그 피드백의 경중은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 상위 직급자나 팀장, PM 등의 피드백은 업무 지시로 여겨지기도 하고 그 방향을 결정하는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성격 때문에 업무의 방향이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물론 민주적이지 못한 처사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비합리적이다. 효율이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우리 팀장에게 "방금 거기에선 F가 아니라 T가 튀어나와야죠!"라고 피드백하면, 이 피드백을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서 수용해야 하는 이 T의 타이밍에 우리 팀장은 또 선택적 F를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피드백은 챗바퀴처럼 구르겠지.
직장, 게다가 MBTI 얘기에 그 어떤 솔루션이 있겠는가. 우리는 '해결 불가능한 인간사'라고 쓰고 'MBTI'라 읽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