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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ca Dec 21. 2024

일어나 버린 일은 항상 잘 된 일이네

직장인, 미국 변호사 준비 생존기




늦었지만 두 번째 바 시험도 아쉬운 결과를 맞이했다. 피곤하고 힘들었던 기억뿐인데 그간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결과를 원망할 수 없었다.


한동안 휴대폰을 끊고 인간관계를 정리했었다.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책상에서 쿠키나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들기 직전까지 요약 노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어떤 날은 눈이 빠질 것처럼 아파 헛구역질이 나왔다. 시험 후 목디스크가 생기고 손가락 인대가 늘어나 제대로 잠들지도 못했다. 허공만 응시하거나 자다 깨서 울기를 반복했다. 이 모든 걸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미칠 것 같았다.


점수를 보니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 객관식은 passing score에 들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감사했다. 그래, 어쩌면 언젠가 나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수고했어, 정말. 위로했다.


신을 믿지 않던 내가 매일 밤 기도를 했다. 신이 있다면 지난날의 지난한 시간들이 여기까지 오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알려 주시길. 견뎌낸 이 시간들이 비록 최고의 해답은 아니었을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었단 것을 알려주시기를. 때문에 자책하지 않게 해 주시기를. 신은 나의 이 기도를 들어주었다.


올해에 깨달은 것. 무조건 잘 될 것이란 낙관이 아닌 "일어나 버린 일은 항상 잘 된 일이네."라는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삶이 더 행복해진다. 무언가를 더 원해서, 더 노력하고 잘하려 할수록 나도 몰랐던 아쉬움과 실망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나쁜 일들은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그게 어렵다면 "이미 일어난 일은 항상 잘 된 일이네."라고 연기하는 거다. 억지스럽게 느껴져도 일단 의식하지 않는 거다. 문득 “결국 이게 더 잘 된 일이네"라는 순간이 온다.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굳이 이렇게까지? 싶은 과정이 필요하지만 요즘 들어 오직 이 순간을 위해 그 모든 걸 지나온 것만 같다.



발표일 시즌에 맞물려 뉴욕에 와야 했는데 출국 직전까지 누가 대신 가줬으면 할 정도로 싫었다. 그래, 결국 미국에 온 게 더 잘 된 일이네. 최면을 걸었다. 꿈꾸고 바랐던 일들을 눈에 담았다. 한국에 왔다. 간절하면 세상에 말해야 한다. 한 달 동안 에세이 답안지를 들고 피드백을 받으러 다녔다. 창피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준다는 사실. 여기저기서 도와준다. 기대치 않던 기회까지 찾아왔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꽤나 행복한 날들이다.


연말이 되니 감정이 오락가락한다. 끝은 있을까. 맛있는 음식. 술 한 잔. 내 사람들. 아쉬운 겨울이다. 차단하는 일상이 계속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기에 한 번만 더 버텨주면 안 될까라고 달래어 본다.


좋은 뉴스라기엔 그렇고 부끄럽지만 MPRE 점수가 나왔다. 이것마저 떨어지면 올해는 뭐 같을 뻔했는데 기쁘다. 나라도 대견하게 여겨야지.


내년엔 더 멋진 일상을 선물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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